모든 '갑질'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함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 나눔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다
정동주 지음 / 한길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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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17세기)라는 시대와, 사대부의 철학(성리학)의 일면을 이해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장계향의 일생을 사건만 나열하여 연대기식으로 서술한 소설이 아니라 치밀한 인물 평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장계향 시대의 문화와 역사까지도 필요할 경우에는 매우 꼼꼼이 언급하고 지나간다.

따라서 중간중간 따로 설명하는 철학이나 문학 설명에서는 지루해지면서 흐름이 끊기는 면은 있는데 그건 정말 잠깐일 뿐, 이내 파란만장한 삶과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이 전개된다. 

다 읽고 난 지금에 와서는 곁가지 설명들이 오히려 저자의 성실함을 대변한다고 본다.

 

물론 나로서는 책에 나오는 철학이나 문학을 다 알아들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경당과 이시명의 학문적 문답을 읽으며 솔직히 무슨 얘긴지는 모르겠더라. 성리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만 알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의 적절한 가르침과 제자의 깨우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새삼 '나는 스승님께 무엇을 배웠고, 스승의 어떤 말씀을 지금 내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새길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승이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페이퍼에다 장계향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화를 인용했었는데 이것 말고도 적어둔 것이 많다.

몇 개 더 옮겨보자. <음식디미방>에 관련된 구절은 밑줄긋기로 삽입했다.

길고 번잡하지만 좋은 건 나누면 배가 된다 하니 아래에 애써 옮긴다.

 

 

(장계향 아버지 장흥효는) 한결같이 자신을 감추고 겸양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임천에 은거하여 세상일을 사절하였다. ‘敬’ 자를 자리 오른쪽에 크게 써놓고 스스로 敬堂이라 하였다. 매일 닭이 울면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관을 갖추고는 가묘에 절한 다음 물러나서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했다. 종일토록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서 좌우에 있는 책들을 머리 숙여 읽고 골똘하게 명상하였다. 생각으로 터득하지 못하면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으며, 와 닿는 것이 있으면 비록 한밤중이라도 불을 켜고 그것을 써두었다. 또 일찍이 책자를 만들어 자리 곁에다 두고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일이 적어두었는데, 날마다 점검하여 공부의 정도를 가늠하였다. (79-80)

 

(장흥효는 딸의 자질을 알아보고는) 그날부터 계향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딸이라 하여 『예기』와 『소학』 등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로 가사노동에만 국한해 교육시키고 싶지 않았다. 계향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지식을 모두 가르치고 싶었다. 계향은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했고 그만큼 자신감이 커져갔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은 매우 든든한 심리적 의지처가 되었다. 정신적·심리적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자기 존재의 인정은 여유와 포용을 키우고 넉넉한 품성을 성숙시키는 근원적 힘이 되는 것이다. (117)

 

(『예기』 중에서) 樂은 같음을 위함이요, 禮는 다름을 위함이다. 같다는 것은 서로 친하게 하고, 다르다는 것은 서로 공경하게 한다. 악이 심하면 질서가 없어지고, 예가 극에 달하면 이질감을 낳는다. 그러므로 적당히 사용하여 인정에 맞게 하고, 예의로서 몸에 붙게 하는 것이 예와 악의 효용이다. 예의가 지켜지면 귀천의 구별이 명확해지고, 악으로 같게 하면 아래위가 서로 친하게 된다. (220-221)

 

(『예기』 계속) 현자는 사람에 대해서 친해져도 공경함을 잃지 않으며, 두려워하나 사랑하며, 사랑하나 그의 악함을 알며, 미워하나 그의 선함을 알며, 재물을 쌓아서는 흩어 쓸 줄 알며, 편안한 곳을 편안하게 여기지만 옮겨야 할 때에는 능히 옮길 줄 안다.
재물에 대하여는 구차하게 욕심내지 않으며, 어려움을 당하여 구차하게 모면하려 들지 않으며, 싸워 이기려 하지 않으며, 자기 몫을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으며, 의심스러운 일에 대하여 자신이 바로 잡아 결정을 내리려고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개진할 뿐 자신의 견해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223)

 

장계향은 (남편 이시명에게) 다시 질문했다. 아무리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삶이 있을 것이며, 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서 퇴계의 경우를 말했다. 인격적 하늘에 경배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격을 닦는 것이 修身이고, 明德으로 백성을 새롭게 함으로써 편안함과 행복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 治人의 궁극적 꿈이다. 아무리 수신과 명덕을 강조하더라도 결국 자신을 닦고 다스리는 修己에서 시작되어야 옳은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시명은 깜짝 놀랐다. 스승(장인 장흥효)한테서 독서가 좀 있었다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정작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혼인한 지 불과 몇 달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이시명이 느끼는 것은 아내가 나이 어린 여자가 아니라 이시명이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유학자 같다는 것이었다.
“퇴계 선생도 수기치인의 도리를 잊은 적은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을 다스리기 위한 몸 닦기란 결국 정치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까. 퇴계 선생은 그런 정치를 통해서는 치국도 평천하도 한갓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학 정치의 꿈이 그래서 안타깝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철저하게 깨달아서 지혜로 바꾸는 修己와 爲己之學 으로 救聖成仁함이 끝내는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데 더 좋은 공부라고 들었습니다. 바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자신의 내면 아니겠습니까. 하오니 부디 안을 살피는 데 더 분발하셨으면 싶습니다.” (306-307)

 

장계향은 충효당으로 와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몇 가지 원칙을 정하여 노비들과 심부름을 하는 사라들에게 거듭 일러주었다. 얻으러 온 사람은 누구든지 빈손으로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들의 자존심을 다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 작은 것이나마 도움 받는 이들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신감을 키워 돌아가도록 진심어린 말과 행동을 하도록 가르쳤다. 얻으러 온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내준다고 여기지 말고, 기꺼이 나눈다고 여기면 더 좋다는 것을 알았다. 나눈다는 것은 소유의 탐욕에 갇혀 사는 독선의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또한 기꺼이 나눔은 나누는 것만큼 깨끗하고 존경받는 기쁨이며, 무한한 영혼의 성장을 돕는 것임도 거듭 느꼈다.
나누는 일은 자유를 알게 하며, 세상을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도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세상을 살맛나게 하는 것이었다. (326-327)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성인 군자의 길을 가자고 시아버지 운악에게 건의)
운악은 물었다.
“수기지학하여 구인성성하는 것 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도를 열어가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냐?”
“성인의 도는 세상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데 그 궁극이 있는 것이지, 도를 닦는 한 개인의 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라 욕심이라 배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문이 私慾을 여윈 義仁을 행할 수 있겠느냐?”
“베푸는 일을 상례常禮로 하고, 그 내용을 더 성실하게 갖추어야 할 줄 압니다.”
“더 자세하게 말해보거라.”
“우리가 매일 끼니를 거르지 않듯이 저들에게도 먹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예절을 지켜서 주며, 먹는 것에 그치지 말고 입고 신는 것도 챙겨주며, 병든 이한테는 약을 주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은 머물러 살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정녕 어진 마음에서 우러난다면 이 또한 충효당의 광영이 아니겠습니까.” (336-337)

 

병 들어 누워 있는 독거 노인의 경우 장계향이 직접 죽을 끓여서 갖다주라고 심부름을 시키되, 반드시 다 먹는 것을 보고 오라는 당부를 했다. 양식이며 사는 형편을 알아오도록 시키기도 했다. 삼베로 적삼을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보내는 집도 있었다. 이웃에 사는 외로운 이와 나누고 돌봐주는 일은 재물이 많이 축나는 일은 아니지만, 정성을 더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어서 재물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가난에 빠진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가진 자들이 거들먹거리면서 교만을 떠는 일이다. 가진 자와 그런 자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모두가 가진 자가 될 수 없고 모두가 가난한 사람이 되지 않는 한, 그것은 고통 그 자체이다. 인간의 사회는 그런 고통의 현장인지도 모른다. 나눔은 그래서 인류 최초의 소망이고, 인류 최후의 소망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눔’은 ‘仁’의 실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360-361)

 

… 장계향은 자식들에게 인간의 고뇌에 대하여 말했다. 사람마다 걱정 없는 사람은 없고 인간으로 생겨난 이상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왜 걱정이 생기는지 설명했다.
인간은 정신적·물질적 존재로서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고뇌가 생기는 것이다. 두 존재는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관계를 지속하는데 그것을 인간의 삶이라 부른다. 그것이 인간이며 삶의 본질이다.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선과 악·도덕규범·윤리 그리고 이런 것을 총괄하는 상위 개념으로서의 하늘을 늘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이를테면 죽음·불행·천재지변·생로병사 같은 것 때문이다.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지속적인 포만감과 편리함 그리고 소유와 상실의 방어에 대해서 집착하려 한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행위를 통해서만 삶의 정당성을 영위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예가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예를 유지해가는 방법이 敬이라 할 수 있다. (432-433)

 

(빈민구제 하다가 집안 식구들도 힘들다는 원망이 있자 장계향이)
“알고 있다. 하지만 저토록 난감한 처지에 몰려 있는 저들을 어찌 외면하고 우리 식구 살자고 문 닫고 돌아앉아서 목구멍에 죽물 넘길 수 있겠느냐. 저들이 살아남지 못하면 이 세상인들 어찌 무사하겠느냐. 종내는 나라도 망하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우린들 어찌 살아남겠느냐. 설령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찌 사람 사는 도리이겠느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차등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저렇게 고통 받으면서도 서로 작당하여 패거리를 지어서 가진 자의 집을 공격하고 불을 지르거나 더 큰 덩어리로 작당하여 죽창이며 농사짓는 연장을 들고 반역을 시도하지 않고 저렇게 견디는 것은 저들 안에 들어 있는 ‘仁’을 믿고서 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저들이 차마 거기까지는 하지 못하는 마음이 ‘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렇다면 우리의 ‘인’은 어떤 것이냐. 나 살자고 저들을 외면하는 것이 ‘인’이냐. 아니다. 그것은 ‘인’이 아니다. 사악한 欲일 뿐이다. 저들을 가련하게 여기지는 못하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아라. 다 하늘이 내린 목숨이고, 저들 안에는 우리와 똑같은 天理가 들어 있느니라. 다만 가련케 여겨 나누고 또 나누고, 또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인’이니라.” (536-537)

 

 

장계향은 『중용』 제4장의 ‘인막불욕음식야 선능지미야’(人莫不欲飮食也鮮能知味也)의 핵심철학을 담고 있는 ‘음식’과 맛을 안다는 ‘지미’를 하나의 독립된 문장으로 조립했다. ‘飮食知味’라는 새로운 말을 만든 것이다. ‘지미’는 ‘예민한 미각으로 맛을 잘 아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중에서 임금이 먹을 음식을 미리 맛을 보는 일을 ‘지미하다’라고 말한다. (521)

1670년 나이 73세 여름에 완성된 『음식디미방』에서 장계향은 맨 먼저 자신이 책으로 써서 남기려는 음식들의 모든 재료가 조선 땅에서 나는 것들임을 생각했다. 풀잎·뿌리·줄기·잎·꽃과 열매는 조선의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햇볕과 비·바람·이슬·눈·서리·달빛을 받고 자란다. 계곡 물소리, 산짐승 울음소리, 풀벌레 울음소리를 듣고 자란다. 이웃한 모든 것들이 조선의 밤낮과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먹고 자란다. 따라서 그 이름은 언문으로 부르고, 적는 것이 마당하다고 결론지었다. 것모밀(겉모밀)·녹도(녹두)·개아미(개미)·고두밥·중발·토장(토장국)·녹도다화(녹두수제비)·상화(밀가루로 만든 만두)·석이편(석이버섯떡)·수교애(물만두) 등 17세기 조선의 중세언어는 물론 한문으로 표기되어온 고유명사들까지 한글로 표기하기로 했다. 언문에 깃든 절제된 아름다움과 도덕적 용기가 내포된 조선문화의 정체성이 음식으로 만들어져, 정치의 이상세계와 음식이 지닌 인류학적인 의미가 절묘하게 조화될 수 있었다. (523)

『음식디미방』을 언문으로 적어야 하는 이유는 더 있었다. 음식의 재료 모두가 조선의 산과 들, 물에서 나는 것들이며 토지·종자·거름, 농사짓는 사람 모두가 조선의 것이므로 당연히 언문이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조선 사람이며 조선의 여성이고,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려 조선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여성·아내·딸·며느리·어머니도 모두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다. 음식 만드는 방법도 옛적부터 조선 어머니들 마음에서 우러나 손끝으로 다듬고 만들어져 정성과 예의로 차려져 먹고 살아온 것들이다. 조선의 마음이며, 조선의 정신이고, 조선의 혼이 담긴 것이 조선의 음식이므로 언문 외의 그 어떤 문자로도 씌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음식 담는 그릇도 조선 사기장이 빚었고 그릇 만드는 데 드는 흙과 물, 장작도 조선 땅이 품어 키우고 낸 것이므로 당연히 언문이어야 옳은 것이다.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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