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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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답사기에는 설명에만 머물지 않는 나름의 서사가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책들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정보로만 가득찬 여행지 참고서를 읽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가끔은 이야기들이 약간 지나치다는 인상이 들기도 하나 이 정도는 답사를 나서는 사람들의 흔한 '답뽕'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로고스도 필요하지만 적절한 파토스가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답사라는 게 사실 그렇다. 얼마간 지적인 허영도 충족될 뿐더러 남들이 밟아보지 못했던 곳으로 간다는 우월감도, 또 그곳에 가지 않고는 누릴 수 없는 고유하거나 주관적인 심상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답사기 또는 여행기의 미덕은 정보의 완벽한 전달에 있지 않다. 하서주랑-돈황-막고굴-실크로드의 관문(양관과 옥문관)에 이르는 여정을 실감나게 설명하면서 적절한 읽을거리 소개와 저자 특유의 만담을 섞어가며 서술한 이 두 권의 답사기는 그런 면에서 매우 훌륭한 여행기이다.

 

문화유산의 이해와 감상은 지식 습득에 머무는 것이 아닌, 그것이 지닌 맥락과 의미, 더 나아가 유적 주변의 분위기와 유물을 둘러싼 아우라마저 깨닫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답사는 아는 것을 확인하는 지각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 고유의 촉각적 실체를 탐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술의 근본은 물질에 있기 때문에 물질과 공간을 떠나서는 망상이나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유홍준의 답사기들은 그런 실체(또는 허상?)에 대한 로망을 아주 잘 부추기는 최고의 '잇템'이다.

유물과 유적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은 거들 뿐이다. 어쩌면 아주 얇고도 넓은 견문욕의 과시 또는 인문학적 파쇼라고 깎아내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왜 우리가 그의 시각에 의존해서 답사를 해야할까, 뭘 꼭 알아야 답사가 가능한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과연 참인가, 라는 의심을 나는 항상 떨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떠나 편견 없는 눈으로 유물을 바라보고 벌거벗은 몸으로 유적지를 걷는 것은 틀린 건가. 답사기에 적힌 경로와 유적지를 따라가며 영혼 없이 떠도는 좀비가 될 바에야 이 책들을 과감하게 치워버려야 한다. 책에서 읽은 게 아니면 감동을 못하는 그런 멍청한 답사는 유 교수도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들은 정독보다는 속독을 권한다. 참 잘 읽히게 썼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문장을 음미할 필요는 없다. 답사지의 배경지식과 개요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이만큼 유용한 책들도 없다. 나부터도 섬서성과 감숙성, 맥적산과 막고굴의 정확한 위치, 하서주랑의 의미, '도보자(盜寶者)' 오렐스타인과 폴펠리오, 오타니, 랭던워너 말고도 저 유명한 장대천이 돈황막고굴의 벽화를 모사했었다는 사실과 상서홍, 한락연이라는 돈황 수호자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소득이 있었다. 

수많은 답사지 관계 저술들을 섭렵하여 알려주는 저자의 성실함도 새삼 인정해야겠다. 애써 찾아 읽지 않으면 그걸 어떻게 다 알겠는가.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현 상태에서 이 중국 답사기 2은 하서주랑과 돈황, 그리고 실크로드 약탈사를 일반인 수준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가 된 셈이다.

영민한 감과 촉으로 독자의 지식욕과 지루함 사이의 밀당을 이만큼 잘 조절하면서 글쓸 수 있는 저자도 드물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그의 필력과 너스레에 부러움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화유산에 관한 아주 친절하고 열정적인 안내자라는 인상이 먼저 드는 것이 당연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나, 이젠 그 옛날의 흑백사진과 고리타분한 편집은 사라지고 올 컬러도판에 좋은 제본을 갖춘 책이 되었다. 답사기 모든 편들을 비교해 보지 못했지만 이번 중국 답사기 표지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양장본)으로 꽤 두껍게 나왔다. 그렇다고 뻣뻣한 하드커버는 아니어서 책을 한 손으로 쥐고 표지를 뒤로 넘기면 둥글게 말린다. 혹 답뽕에 취해 돈황까지 가서 들고 다니며 읽어도 헐거나 찢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답사기의 주독자는 전공자가 아닐 것이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돈황과 실크로드의 답사가 여전히 로망인 이들(물론 좀비가 아닌 주체적 답사자)에게 자기가 접한 유익한 정보들을 생생히 기록하여 그것을 여행의 길라잡이로 삼거나 간접경험이 되도록 했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듯싶다.

 

배경지식은 여행이나 답사를 더욱 풍요롭고 재미있게 한다. 그러나 그 지식과 간접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시선과 해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눈이 바라보는 곳이 저자가 보는 곳과 다를 수 있고, 내 발로 걷는 땅과 내 손이 닿는 유물도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 남의 눈을 따라 배우는 게 아니다. 자기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내가 갈 곳의 여행기나 답사기는 잘 읽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돈황과, 막고굴과, 실크로드는 그저 로망일 뿐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간접경험만으로 일단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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