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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제의와 문학 - 신화상징총서
시몬느 비에른느 / 문학동네 / 1996년 8월
평점 :
품절
유대인들의 축일 가운데 파스카Pascha축제가 있다. 이 파스카는 영어로 번역할 때 Pass Over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 하겠다. 이 파스카는 통과의 축제이다. 구약에 보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낼 때 이집트의 파라오가 반대하자 10가지 시련을 이집트에 내린다. 이때 마지막 재앙으로 이집트 전국에 있는 맏이는 사람이나 짐승 모두 죽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들은 자신의 집 상인방에 양의 피를 발라 놓아 그 재앙을 피해간다. 이 통과의 의례를 통해 이집트의 이스라엘 인들은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통과제의는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기독교의 세례의식 역시 물을 통과함으로서 과거의 나를 씻어버리고 미래의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즉 통과는 기존의 방식으로 살아왔던 과거의 자신을 새로운 자신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종교적 의미인 메타노이아-회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통과제의를 의미하는 단어의 어근인 telos는 인도유럽어 queles에서 온 것으로, 이 어근의 의미는 밭갈이를 할 때 처음 반의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을 마치고 뒤로 돌아서는 바로 그 장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는 절이나 성당에 가면 입구에 洗心臺와 聖水盤을 볼 수 있다. 그 물로 마음을 씻고, 죄를 씻으면 속세의 장소에서 성의 장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통과는 성과 속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테세우스는 라비린토스에서 실타래를 가지고 그 어둠의 자궁을 통과한다. 그가 그 어둠의 미로를 통과함으로서 그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된다. 즉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영웅으로.
통과제의는 종교뿐만 아니라 비밀종교의 결사단체에 이르기까지 무수하게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무수한 존재들이 벌이는 통과제의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이다.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나는 육체적으로는 동일한 인물일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나인 것이다. 바로 그 구분점이 통과제의인 것이다.
전혀 다른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통과제의이다. 저자는 문학에서의 통과제의적 문학의 첫 주요 작품을 미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또는 태평양의 끝>이란 작품으로 보고 있다. 시몬느 비에른느에게 태평양 상의 섬이 바로 신화의 끝이 되는 것이다. 이 섬에서 과거의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황금 당나귀>에서 루키우스가 인간에서 당나귀로 변하는 그 순간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는데 바로 그 점이 현실과 신화의 접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언제 어디서 어떤 경우에도 통과제의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낡은 자신의 허물을 벗고 자신의 존재를 쇄신하려는 욕구가 바로 통과제의의 시발점이란 사실이다. 통과제의는 존재론적인 위치변화를 통해 인간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신비적이건 현실적이건 자신의 삶의 무게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타협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는 존재론적인 방어기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족 : 문학동네의 <신화상징총서>가 처음 4권이 나왔을 때 그것을 모두 구입하였다. 그리고 그 네 권 이외에 M. 마페졸리의 <디오니소스의 그림자> , E. 모랭의 <영화와 상상력>, M. 엘리아데의 <야금술과 연금술>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간>, C. G. 융의 <황금꽃의 비밀>, G. 귀스도르프의 <신화와 형이상학>, G. 뒤랑의 <신화적 형상들과 작품의 얼굴>, G. 바슐라르의 <대지와 휴식의 몽상>, Y. 본느프와/ A. 베갱의 <성배를 찾아서>가 뒤따라 나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1996년에 이 책이 나온 뒤에 엘리아데의 <야금술과 연금술>이 <대장장이와 연금술사>로 본느프와의 <성배를 찾아서>가 <성배의 탐색>으로 나왔을 뿐이다. 나머지는 언제나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