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 동물양식
E.V.뻬레보드치꼬바 지음 / 학연문화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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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에게 약간은 생소한 스키타이 문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현재 스키타이 문명에 대한 연구는 구 소련-러시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그 이유는 스키타이족의 활동영역이 천산북로 이북의 초원지대를 따라 펼쳐지는 유라시아 초원지대로 구 소련의 정치적 영역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90년대 이전까지는 구소련의 방대한 스키타이에 대한 연구성과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불균형은 국사 시간에 동물문양장식의 대구-허리띠 버클-를 공부하면서도 그 모양의 시원에 대해서는 막연히 스키타이 양식이라고 배웠다. 이때 스키타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거의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불균형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지식의 체계적이지 못한 토대의 잃어버린 고리를 메꾸어주는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특희 동물양식을 전공한 저자는 스키타이 동물 문양의 연구를 통해 유목민과 농경민의 유기적인 교류를 유물의 형태분석론이란 방식을 통해 근연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하나의 원래적 형태가 각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어떻게 공통적인 면을 유지하면서 그 지역의 독자성이 가미되어 가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서 유물의 상관성을 통해 문화와 문명의 전파경로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론인 것이다. 이러한 연구방식은 한국의 사학계가 직면하고 있는 일본 사학계의 아전인수식 유물해석을 반박하는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작업이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에게 소원했던 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했던 스키타이 유목민의 유물을 조명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귀중한 책이다. 스키타이와 우리와의 관계를 규명하다 보면 고대사의 많은 부분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을 보면서 러시아의 고고학적 기초가 굉장히 탄탄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직관보다는 사실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고고학의 전통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방법론은 감성적이며 격정적인 우리가 가져야 할 또 다른 하나의 품성이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나만의 부질없는 감상일까.....


부기: 책의 제목은 스키타이 동물 양식 인데 여기서는 스키다이로 나와 있다. 어느쪽의 실수 인지는 모르지만 조속히 고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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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제 50문 50답
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지음, 김현숙 옮김 / 혜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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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이란 용어는 참으로 오묘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도교에서 언급되는 천.지.인의 3황 가운데 하나로 세상을 주제하는 천황. 인황. 지황 가운데 하나의 명칭이다. 이로 미루어볼 때 천황이란 단어는 왕이나 대왕처럼 어떤 권력적인 요소보다는 천자와 같이 불가촉적인 종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서기를 읽어보면 王-기미-이 大王-오오기미-으로 바뀌고 다시 이것이 天皇-텐노-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천황이란 칭호가 성립되는 시기는 40대인 天武 大海人-텐무 오아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신라.백제.고구려의 정립시대가 끝나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때부터 왜국은 자신들의 국호를 일본이라 하고 왕의 명칭을 천황으로 바꾸면서 독립적인 국가로 나간다는 사실은 의미심상하다고 하겠다.


천무 이후 일본 역사를 보면 천황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으로 등장할 뿐이다. 이때부터 역사의 주인공은 무력을 앞세운 소가-蘇我-씨,후지하라-藤原-씨, 다이라-平-씨,호조-北條-씨, 아시카가-足利-씨등이 권력을 장악한다. 이렇게 되면서 천황은 정치적 실권자에서 밀려나 일본이란 나라의 상징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초기 일본을 방문한 신숙주가 기록한 해동제국기에도 당시의 무가 지도자인 아시카가씨를 일본의 왕으로 기록하고 외교문서의 수령인으로도 천황이 아니라 무가정권의 지도자를 기입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천황의 존재는 양국에서 공히 무시해도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러한 천황의 존재가 급부상한 것은 명치-메이지-유신 이후 존왕파에 의해 급조된 천황관 때문이다. 당시 존왕파들은 蘭學-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학문-을 통해 근대적 의미의 서유럽 국가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영토,국기,국가,국왕이란 상징체계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웠던 것이다. 이 서구적 체제에 맞추어 존황파들은 이제 천황은 일본이란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의 상징으로서 거기에 걸맞는 의식체계가 필요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즉 천황의 성역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정치는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지향한 일본에게 커다란 불행으로 다가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제국의 실패는 일본의 존왕파들이 영국의 왕실을 대영제국과 인도를 지배하는 지도자로만 인식을 했지 어떻게해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명치유신 이전의 천황의 모습-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이 가장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지향하던 자국에 걸맞는 모습인지를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정치적 근거가 없던 일본의 지도자들-영국의 지도층이 귀족인 반면 이들은 하급 무사출신이었다- 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천황제를 옹호하면서 획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허울뿐인 제도였다. 이 제도의 취약함은 후에 2.26사건이나 5.15사건에서 보듯 군부가 의회를 무력화시켰을 때 이를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천황의 말 한마디였다. 이는 의회 자체가 천황제의 장식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말 그대로 무력하게 패배하였다. 그리고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다시 이전의 정치 질서로 돌아가게되었다. 즉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천황을 정치에서 분리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천황을 정치의 중심으로 이동시키려는 일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일본의 장래에 어떤 모습을 제공하게 될까? 일본이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켜 패배한다면 그때는 일본이란 나라와 함께 천황제도 영원히 종말을 고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일본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집필을 했다고 하지만 행간에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일본적인 시각은 불현하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소감의 결론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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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만 친일파재판사
마스이 아스이치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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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아시아 각국은 일시에 하나의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 점령기간 동안 그들에게 협력했던 자신들의 동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였다. 서구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던 동남아시아에서는 친일파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과 협력하여 서구제국과 투쟁한 사람들이 후일 정권을 잡음으로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즉 동남아시아에서 친일문제는 식민지 독립문제와 얽혀 평가를 유보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점령기간이 길었던 한국과 오랜 기간 전쟁을 치뤄왔던 중국에서는 친일문제에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본의 지배가 가장 길었던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친일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이한 길을 가게 되었다. 북은 친일파를 말 그대로 완전히 숙청하면서 이를 체제를 확고히 하는데 이용하였다. 공산주의를 표방한 북에서는 친일로 자본을 축적한 이들을 체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결코 포용할 수 없었다. 이 결과 북에서 숙청된 친일파들과 자본주의자들이 남으로 내려와 북의 공산주의를 가장 반대하는 집단으로 변모하면서 이후 한국 정치에 커다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실제로 남쪽의 친일파들은 북에서 내려운 이들과 연대하여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반공주의자로 변신함으로서 한국전쟁 이후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런 왜곡된 현대사로 인해 한국에서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는 민족주의자처럼 보이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모순은 현재까지 극복되지 못하고 대립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화 영웅본색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범죄집단의 범법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덜 범죄적인 자를 응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역시 친일파 문제는 계륵과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대립이 일제의 패망으로 소강상태에서 점차 갈등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기였다. 즉 국민당과 공산당은 산적한 문제기 있음에도 친일파처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한 것은 대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민심을 차지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중국에서는 친일파-한간이라고 부른다-를 민족 정기를 회복할 차원에서 처단할 수 있었다. 중국의 친일파 대부분은  일본이 남경을 점령했을 때 세운 꼭두각시 정부인 남경정부에 협력했거나 만주제국에 협력했던 사람들이었다.  즉 이들은 국민당이나 공산당 양쪽에서 매력을 느낄 이유가 없는 부류들이었다. 어찌보면 중국의 친일파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입장에서보면 배반자였던 것이다. 이 결과 중국의 한간 재판은 1946년 4월부터 1948년 9월까지 진행되었다.

이 책은 한간 재판에 대한 연대기적인 기록이 아니라 개개인의 재판에 관한 기록이다. 그 기록도 한간 개개인에 대한 신상정보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뒤에 붙어있는 인명부록표를 보면서 읽어가면 좋을듯싶다. 이 책은 한간의 재판기록과 신문기록을 발췌하거나 기록한 것이기에 한간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기록에 나타난 한간들의 변명을 읽다보면 이들  각각 역시  나름대로의 조국관과 정치관 그리고 철학관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재판정에서 당당하게 그 시대의 상황에서 민족에게 봉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의 처신이 국가를 위한 최선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애국.애족이란 용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것은 개개인이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에 대한 사랑은 조건이 없는 영원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간과 친일의 공통점은 자신의 영리를 애국과 애족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홍등가를 찾아가면서 이로인해 대다수의 여성이 보호되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범죄의 집단에서 허우적 거리는 조폭일 뿐이다. 한간과 친일파 역시 어떠한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있어도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역사의 기록은 서릿발처럼 날카롭고 냉정해야함을 느꼈다. 역사의 기록은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무미건조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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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의 중국사
이나미 리츠코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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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타이페이에서 <곽의동>이란 반체제 작가가 <백양>이란 필명으로 <추악한 중국인>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중국 우월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한 이 책은 중화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중화권의 종주국인 중화민국에서만은 이 책의 내용이 너무 과격하다 하여 판금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당 간부들에게 회람하여 읽게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은 80년대 당시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란 사건을 두고 고민하던 대만과 중국에서 <중국인,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심도있게 숙고하게한 책이었다.


이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어느 가게 주인이 점원에게 가게에서 나가 서쪽으로 가면 첫번째 다리에서 수박을 팔고 있을 테니 거기서 수박을 두 덩어리만 사오게라고 말하였다. 점원은 서쪽으로 걸어갔으나 다리도 볼 수 없었고 수박을 팔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빈 손으로 돌아와서 주인에게 동쪽에는 수박을 팔고 있는 곳이 있었으나 서쪽에는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은 점원을 바라보며 그럼 어째서 너는 동쪽으로 가지 않았느냐고 말하면서 바보자식이라고 욕하였다. 점원은 주인님께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주인은 다시 바보자식이라고 욕을 하였지만 속으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점원이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점원이 동쪽에서 수박을 사왔다면 주인은 자네는 정말 똑똑하이라고 말하겠지만 속으로는 이놈은 신용할 수 없어. 이놈은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하면서 그 점원을 내쫒든지 아니면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이 책을 장황하게 인용한 것은 배신자의 중국사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배신자들의 역사는 <몸을 굽혀 세상을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언제나 마음 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러한 처세관은 치국이나 평천하와는 상관없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굴절되는 것이 보통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무 생각없이 상대의 말을 따르면서 속에서는 다른 마음이 자라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인의 추악한 모습이며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속을 알 수없는 중국인의 성격을  대륙적 기질이라고 추켜세우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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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의 교류
長澤和俊 지음, 민병훈 옮김 / 민족문화사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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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학자 長澤和俊-나가사와 가즈토시-이 쓴 동서문화의 교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다. 동북아 3국-한.중.일-은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어디인가에 대해서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 중국은 長安-지금의 西安-을 종착지로 생각하는 반면에 한국은 통일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최종 종착지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일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은 나라의 수도인 平城京-헤이죠코-를 최종 기착지로 설정하고 있다.


일본 학자의 이러한 주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학자적 양심을 거부하는 역사의 왜곡일까 아니면 국수주의적인 확대해석일까?


이 책에서는 실크로드를 천산북로와 남로, 그리고 광저우에서 말라카해협을 지나 스리랑카-홍해-알렉산드리아를 거치는 남해로 3곳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길은 로마와 장안을 연결하며 장안에서 일본으로 실크로드의 문물이 유입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근거는 정창원콜랙션-일본말로는 쇼쇼인이라고 불리우는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의 이름. 여기에 보관된 유물의 대부분은 백제와 통일신라에서 일본으로 보낸 물품이며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접 보낸 물품은 소수이다-을 근거로 하여 자국이 동북아 실크로드의 최종 기착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해야할 것은 정창원의 물품은 일본이 만든 것이 아니며, 일본이 실크로드를 통해 직접 교역한 것이 아니고 백제나 통일신라-특히 장보고 선단-와의 교류를 통해 간접 수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경유하였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렇게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스타트랙의 공간이동과 같은 황당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고대사를 공유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중국과 특히 한국으로부터 시혜를 받은 일본이 고대에 대해서 <만약에?>라는 사실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정이 사실로 둔갑하고, 그것이 공공연하게 세계에 공인될 때 한국의 역사적 입지는 점점 좁아지게 될 것이다. 이 말이 허황되다면 왜 일본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의 상한 연대를 올려잡으려 집착하는지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일본의 이러한 노력은 도카이무라-동해촌-유적 조작으로 일거에 일본의 선사시대 고고학이 몰락함으로서 허공에 뜨고 말았지만 그것은 선사. 고대사에서 한국의 흔적과 심지어는 중국의 흔적을 지워 없애려는 일본 학계의 끈질긴 작업의 결과인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작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인의 本音-혼네-을 책을 통해서 알게되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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