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히틀러
막스 피카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히틀러의 추종자와 우리들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만약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히틀러의 추종자와 절대로 유사하지 않다고 답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약간은 그런 성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할 것이고, 아주 극소수는 침묵으로 일관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사실 히틀러만큼 현대사의 인물 가운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강제수용소를 만들고, 인종청소를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집단학살을 명령한 사람으로서 히틀러는 언제나 거론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히틀러보다 더 잔악한 행위를 한 사람들도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히틀러에게 모든 것을 덮씌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히틀러가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히틀러가 두려운 이유는 추종자가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히틀러는 존재하기 위해서 추종자가 있어야만 했다. 그 추종자들의 모습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히틀러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체험한 인간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피카르트는 히틀러 시대를 '맥락이 없음Zusammenhangslosigkeit'이라는 읽기도 어려운 독일어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앞과 뒤가 연결되지 않는 다는 의미이다. 국가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으로 변질되고, 집단의 애국심이 개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변질되는 제3제국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이 '맥락이 없음'이란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은 이런 '맥락이 없음'이라는 사실에 왜 쉽게 현혹되는가. 그것은 기억을 상실하고 순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상호 통교를 해야만하는 언어는 체제의 구호로 전락하고 개인의 한마디가 아무런 검증없이 진리로 대체되면서 집단은 쉽게 '맥락이 없는'사회를 용인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독재자는 이런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호기로 이용을 하는데 그 새로운 질서는 상징체계가 아닌 기호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저자는 나치의 갈고리십자가-하이켄크로이츠-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이켄크로이츠는 상징의 정반대이다. 그건 명령이다. 쇳조각으로 굳어진 지도자의 고함이다"라고 보았다. 피카르트의 시각으로 보자면 예수의 상징인 십자가는 '구원'이지만, 나치의 상징은 갈고리십자가는 '공허함'으로 보았던 것이다. 상징이 의미를 상실했다면 그것은 어쩌면 '짠 맛을 상실한 소금'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우리 안의 히틀러를 경계하는 것은 '내면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외적 조건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의 이런 주장은 책의 뒷부분에서 피카소의 추상미술과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을 비판하는 데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책이 1946년에 출판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지식인들이 본 추상미술과 실존철학의 이해도를 알 수 있다. 당시 지식인들에게 이 미술과 철학은 경박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미술과 철학은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외적 조건을 창출하여 현대 예술과 철학의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삶을 길게 보면서 끈기를 가지고 바라본다면 진정한 역사의 연속성 속에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연속성은 과거를 사랑할 때 과거는 현재를 만나며 미래를 향해 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즉 역사의 일관성 속에 우리를 위치시킬 때 히틀러와 같은 괴물을 우리 자신 속에서 몰아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 속에 히틀러가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공동체를 예로 든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회,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관계는 짜증과 환멸로 바뀌고, 상대를 향해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며 소리를 지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내 안의 히틀러' 혹은 '우리 안의 히틀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은 '정말로 우리는 히틀러를 극복했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히틀러를 기다리는 증오의 사회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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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9-2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고만 하는 사회,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관계는 짜증과 환멸로 바뀌고, 상대를 향해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며 소리를 지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내 안의 히틀러' 혹은 '우리 안의 히틀러'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네요.점점 정글화되어 가는... 사회적 갈등과 그에 대한 대처가 히스테릭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니 결국 야수적 폭력성이 배양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