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기술과 사회변화 - 등자와 쟁기가 바꾼 유럽역사
린 화이트 주니어 지음, 강일휴 옮김 / 지식의풍경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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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의 시니컬한 극작가 볼테르의 '역사란 죽은자가 역사가를 속이는 것'이란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중세라는 시대를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중세 역사 기록의 대부분이 글을 아는 소수의 성직자-정확하게 말하면 수도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기록에는 당연히 성직자들이 바라본 세계를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기록을 통해 중세의 다양한 사건과 인물을 만나지만 그것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성직자라는 여과장치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라는 점이다. 중세란 참으로 이상한 세계인 것이다. 기사들은 정작 자신을 위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오직 성직자들의 목소리만이 중세의 대부분을 관통하고 있다. 중세 말이 되어서야 상인, 제조업자, 기술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기술하기 시작했고, 농민은 가장 늦게 자신들의 모습을 글로 기록하였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중세를 지배한 목소리는 성직자들을 통해 본 가상의 소리였다.

그렇다면 수도자들이 기록한 중세의 중요한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교회사를 중심으로 중세를 바라볼 때 중요한 사건은 피핀, 샤를마뉴, 십자군운동과 같은 교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역사적 순서를 밟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피핀과 샤를마뉴의 군사적 원동력이 되었던 기사계급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적 측면의 역사-등자-는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사적으로 볼 때 등자가 일반화되어서야 비로서 말이 완벽한 전투기계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 등자가 없는 말은 전투의 보조수단으로만 이용되었을 뿐이다.  등자의 등장은 말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었고, 말을 가진 자는 좀더 많은 권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결과 등자는 편리함이란 기능적인 측면을 떠나 사회계급의 분화라는 정치, 경제적인 의미로 확대재생산되었던 것이다.

쟁기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남유럽과 북유럽의 상이한 지형으로 로마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던 가벼운 쟁기가 북부유럽에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좀더 무거운 쟁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무거운 쟁기를 끌기 위해 소와 말이란 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들 가축에게 쟁기를 끌게하기 위해서는 마구의 개량이 필요하였다. 결국 무거운 쟁기를 사용하기 위해 시작된 기술적 개량의 역사는 쉽게 말하면 부르조아지의 탄생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는 점이다. 무거운 쟁기를 끌기 위해서는 굳이 둠즈데이 북을 펼칠 필요도 없다. 무거운 쟁기는 보통 4마리 혹은 8마리의 말이 필요하였다. 이는 일반 농민들이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쟁기를 가진 자는 그 마을의 유력자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이들은 농사용 말과 전투용 말을 소유하는 계급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그 지역의 지배계급-기사-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쟁기뿐만이 아니라 물레방아와 맷돌까지도 자신들의 소유로 함으로서 한 지역의 경제적인 실권을 장악하고 결국에는 정치적인 지배자의 위치에 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등자와 쟁기로 일어선 계급은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무식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글을 제대로 쓸 줄 몰랐고 예의라는 것도 알지 못하는 집단이었다. 이들은 수도자들의 눈으로 볼 때 힘을 가진 야만인과 거의 진배없었다. 그러기에 수도자들의 기록에서 이들은 로마시대 이래 유지되어 왔던 화려한 문명을 깍아먹는 집단으로 매도되기 일수였다. 이 결과 중세의 무지와 야만이라는 신화가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자들을 통해 확산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수도자들의 이런 고정되고 편협한 시각은 전반적으로 중세의 시스템이 로마와 근대 사이에 끼어 있는 조악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근대주의자들 역시 반종교적인 입장에서 이를 마음껏 활용하였기 때문에 중세는 암흑의 시대로 혹은 등을 돌려야할 시대로 매도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세는 종교의 시대였기에 가능한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상의 측면이라는 점이다. 종교적 상상은 신에 대한 환시-아빌라의 데레사, 갈멜산의 요한, 빙겐의 힐데가르트, 피오레의 요아킴 등등-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천년왕국과 수많은 이단(?)-과 경제적측면에서 활발하게 작동하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종교, 사회적인 측면의 중세적 상상력은 어느 정도 알 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의 상상력은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막연히 삼포제로 알고 있는 중세의 농업방식이라든가 수평식 물레방아가 어떻게 수직식으로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물레방아의 이용은 중세의 가장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 이 물레방아를 이용함으로서 중세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력과 축력을 배제한 동력을 얻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 물레방아는 중세인들의 창안품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세인들은 기존의 물레방아를 자신들에게 맞게끔 끊임없이 변형시켰다. 이로인해 중세인들은 인력과 축력이 배제된 새로운 동력원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로저 베이컨의 글로 장식되어 있다. '단 한 사람이 거대한 배이 키를 잡고, 여러 사람이 노를 젓는 배보다 빨리 달리 수 있는 기계가 가능할 것이다. 가축을 사용하지 않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마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이나 바다 밑으로 다니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로저 베이컨은 이런 상상을 1260년에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중세 기술자들의 자신감이기도 했다.

즉 등자로 시작되어 물레방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학적 발전은 중세인들이 결코 종교적 상상력 속에서만 칩거하고 있지 않았다는 생생한 증거이면서 인간의 사고는 결코 붙잡아맬 수 있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蛇足: 이 책을 읽으려면 무려 반이 넘는 각주各註와 씨름해야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 무수한 각주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등자와 쟁기, 물레방아라는 단순한 것이 어떻게 중세를 변화시킨 원동력이 되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울러 서양의 역사학회의 저력을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단순한 것에 대해 이렇게 엄청난 논문이 작성되었다는 그 자체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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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6-05-0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날씨가 마냥 화창합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오.

인간아 2006-05-0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도 훌쩍 지나 여름에야 뵙습니다. 내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푸르른 소식이라 반갑습니다.

dohyosae 2006-05-0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마님도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기를, 감사합니다.
운빈현님 언제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