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직업 잔혹사 - 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
토니 로빈슨.데이비드 윌콕 지음, 신두석 옮김 / 한숲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은 "영국 민중사"를 떠올리게 한다. 시대적 구분이라든가, 역사에서 그리 조명을 받지 못한 기층민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국 민중사의 저자인 J.F.C. 해리슨은 왜 민중의 역사를 기술했는가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있다. "역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이 세계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또한 말미에 "우리는 여러 시대에 걸친 최악의 직업들을 담당한 그 모든 얼굴 없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세계를 형성시킨 주인공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결국 "불량직업 잔혹사"는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형성시킨 것에 대한 보고서인 셈이다.

이 책은 유럽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잉글랜드라는 섬에 국한시키고 있다. 바로 이 고립된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오히려 불량직업의 가혹함을 전달하는데 더 효과적이란 점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은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그 가혹한 삶의 형태를 읽다보면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유럽사에 대한 단순한 평가를 일시적으로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들에게 가려져있던 유럽사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가혹함을 잉글랜드라는 섬에 한정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열악한 직업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나와있는 직업들은 한결같이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3D직업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런 직업은 자신이 선택하였다기 보다는 삶의 무게에 의해 강요되었던 것이다. 직업선택에 있어서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기층민중들은 오로지 하루의 빵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들이 빵을 얻기 위해 한 생존의 행위는 개별적으로 볼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것이 집단적인 의미로 반전될 때 엄청난 위업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잉글랜드의 철도노동자의 삶은 이런 반전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역사의 원동력이 된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삶은 고단했고 고달펐던 것이다.

사실 역사에서 주인공과 조연은 판이한 대접을 받는다. 한 예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명의 부하들은 데르모필레에서 수 만의 페르시아군과 접전을 벌여 모두 전사하였다. 하지만 당시 그곳에는 이들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이 거느리고 있던 900명의 하인들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역사에서는 300명의 결사대로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1200명의 군사들-이 가운데 900명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명령에 의해 남겨졌다는 점이다-이 페르시아군에 맞서 싸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무도 900명의 하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역사의 소외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그들에 관한 기록은 빈약하기 짝이없다.  

이 책은 사회의 기층민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각 시대의 낭만적인 환상을 깨뜨리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영화나 소설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화면이나 지면을 통해 묘사되는 삶의 방식은 우리들에게 이런 환상을 심어준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즐거움과 슬픔을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의 우리들 만큼 문명적 혜택을 받지 못했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다면 이런 단순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가장 가혹한 직업이라도 ?책의 가장 손쉬운 직업보다 덜 가혹할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과학적 사고로 평가하면서 바라볼 때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브리튼에는 과거의 생활을 그대로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현대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완벽하게 과거의 모습-의.식.주를 그 당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결해야만 한다-으로 들어가 생활한다고 한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큰 의미를 체험-이들 역시 완벽하게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참고 버티는 것이다-하지만 소수는 적응하지 못해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나온다고 한다. 이들 실패자들의 대부분은 그 시대의 삶은 현대보다는 조금 더 가혹한 것, 혹은 야외에서의 거친 캠핑 정도로 생각했고 자신들이 행하는 하나 하나의 행위가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이것은 현대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우리들이 그 시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을 만큼 시간과 소양을 가졌다는 것은 당신의 삶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만큼 힘겹지 않다는 뜻이라는 것이 거의 자명하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런 말을 고맙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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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5-10-17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엄청난 제목이군요. 음, 체험프로그램까지. 우리에게 그들은 무얼 원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