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역사
이영희 지음 / 조선일보사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를 볼 때마다 <역사는 상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국의 국수주의적 사관에 입각한 일본을 보는 시각은 우리의 문화전달이라는 기본적인 사건을 떠나 일본이 한국이라는 등식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발상은 한일양국의 역사정립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발상은 해를 끼칠 뿐이다. 한가지 비슷한 예로 중국과 국교가 재개되면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을 관광하였다. 한국인들은 휴전선을 이용한 길이 막혀있기 때문에 중국측의 만주를 경유하여 백두산을 관광하였다. 이때 한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천편일률적인 말이 <이 땅은 우리 땅이었는데...>였다한다. 이것은 중국측이 역사 문제에 있어서 방어적인 입장에서 공격적인 입장으로 전환하게 하는 아주 작은 사건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싯점에서 그 작은 파문은 고구려사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는 과거를 현재에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인 것이다. 우리들이 만주를 보는 시각은 옛날의 우리땅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그 영역이 우리의 역사에서 멀어져갔는가를 생각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반성이 없다면 그 땅을 영유했던 기억 혹은 사실마저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상에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놓여져 있는 것이다.

한일의 관계는 중세 유럽의 프랑스와 잉글랜드와의 관계와 너무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왕의 신하인 노르망디공이 잉글랜드를 점령하고 그 땅의 왕이 됨으로서 잉글랜드 왕은 프랑스왕의 신하인 동시에 점령지의 왕이란 기묘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잉글랜드 왕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했고, 몸 속에 프랑스피가 흐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대의 프랑스인들은 영국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역사학자들도 영국의 역사를 프랑스의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일의 역사적 관계에서도 이런 점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확대해석하여 일본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라는 등식을 주장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언어적인 측면에서 한일관계를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기본적인 전제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일본어가 백제어와 고구려어 그리고 신라어라는 고대 한반도의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은 영어의 단어에 프랑스어, 노르만어, 캘트어 등등이 섞여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언어적 분석이 역사적 사실과 동거관계에 들어갈때 거기서 태어나는 역사는 사생아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언어적인 것을 가지고 일본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라는 주장은 어찌보면 좀 무리가 있는 발상이라 하겠다. 오히려 이 언어적인 측면만을 더욱더 깊게 파고들어가 고대 한국어와 일본어의 상관관계를 더욱더 철저하게 규명하는것이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사실 이령희 교수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한일고대사의 문제는 일본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만큼 이령희 교수가 한일고대사의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렸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기에 언어학자들이 일본어는 한국어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변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령희교수가 해석했던 만엽집의 일부 내용은 수긍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고민이 엿보인다 하겠다. 그래서일까 미즈노 šœ페이 교수가 한일관계를 해치는 책의 첫머리에 이령희 교수의 이 책을 올려놓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언어이고 역사는 역사인 것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언어적 측면에서 상상의 역사로 넘어가는 바로 그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오히려 순수하게 언어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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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2-2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정말 백두산과 고구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국수주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력 점령을 비난하는지 원.

조선인 2005-02-2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더 이상 보관함이 늘어나면 안 되는데 부들부들 떨다가 품절이라는 문구에 안도해야 할 지, 울상을 지어야 할 지 갈피가 안 잡히네요.

dohyosae 2005-02-2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아이님,
조선인님,
어제 하루 종일 컴바이러스와 싸우느라 답글을 달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령희씨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분은 오래전에 영화검열을 담당하는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이런 상상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숨은아이 2005-02-2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영화 검열... 그런데 바이러스는 잘 잡으셨나요?

dohyosae 2005-02-2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잘 처리됐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