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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ㅣ 대원동서문화총서 11
테오도르 H.가스터 / 대원사 / 1990년 8월
평점 :
품절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보면 이집트를 방문한 저자가 신들의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변형해서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그리스의 무슨신과 같고, 저것은 그리스의 어떤 신과 같다라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헤로도투스는 자신들의 신들 역시 이집트의 신들과 전혀 역사적으로 대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아무리 그래도 그리스의 신이 이집트와 소아시아 혹은 저 멀리 바빌로니아에서 유래된 것임은 그 자신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를 중심으로하는 서양의 고대 문명권은 신화적으로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의문은 당연히 성서에도 적용되었고, 성서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의 설화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설형문자 무더기 속에서 노아의 홍수와 유사한 이야기가 발굴됨으로서 성서의 이야기 역시 고대 중근동의 신화체계속에서 발전해온 것임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그 신화를 유일신의 신앙체계로 흡수하였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다신교의 신앙체계 속으로 흡수하였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가나안의 신화들을 비교해보면 이 지역이 서로 빈번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성서에는 바빌로니아지역에서 발생한 바알Baal신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확실히 바알의 특징은 가나안 지역의 이스라엘이 신봉하는 신보다는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잠재해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이 바알은 고대중근동을 석권한 신이었다. 다만 이스라엘만이 이 바알의 공세에서 힘겹게 자신들을 지켰을 뿐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거의 이 바알에게 넘어갈 뻔 했었다. 성서에서 가장 악독한 왕으로 묘사되는 아합왕은 아내를 레바논지역의 이교도를 선택하였고, 아내와 함께온 바알신앙은 이스라엘을 쑥밭으로 만들뻔하였다(예언자 엘리야의 이야기 참조).
이 바알의 신앙은 페니키아를 통해 그들의 식민지로도 확대되었다. 로마와 포에니 전쟁을 일으킨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 역시 그의 이름에 바알Baal의 축소형인 발Bal이 붙어있는 것만 봐도 이 신의 위력이 어느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읽는다면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배경으로 이해해야하는 역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서구 유럽이 자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배경이 얼마나 자기들 중심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뒤세이아보다 1천년에서 2천년 앞선 내용이라는 것에 굳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신화와 역사의 세계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연속적이기라기 보다는 단층적인 것이기에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때라도 그 사건이 반복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