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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소외집단 - 서양 중세사 총서 3
제프리 리처즈 지음 / 느티나무 / 1999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부제가 섹스. 일탈. 저주라고 되어 있다. 이 세 단어는 중세인들이 자신들과 다른 집단의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세의 소외는 산업혁명 이후 맑스가 언급한 소외와는 약간 다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중세는 장원중심의 세계였다. 장원은 어느 정도 자급자족의 체계를 이루고 있었고, 여기에 속한 자유민과 농노들은 영주의 보호 아래 있었다. 자유민들은 이동의 자유가 있었지만 자신들의 토지가 장원 내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고 떠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농노는 애초부터 영주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그곳을 떠난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장원경제하에서 그 공동체를 벗어난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중세 초기 가장 무서운 형벌은 공동체로부터 추방이었다. 추방을 당한 자들은 중세의 질서 속에서 제외된 것이기에 모든 것에서 예외로 인정되었다. 공동체로부터 격리된 상태가 바로 중세의 소외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집단은 공동체를 벗어나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중세는 서기 1000년을 기준으로 크게 술렁이게 된다. 이른바 천년왕국이 도래한다는 소문이 온 유럽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을 통제할 수 있었던 권력기관은 당시로서는교회가 유일하였다. 일반 세속권력이 교회의 역할을 대체한 것은 12세기에 들어와서였다. 그러기에 중세 천년의 시작에서 혼란을 수습할 권력은 교회였다. 바로 교회의 기준에 따라 중세시대의 소외집단이 분류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집단의 성격을 자세히보면 정치적인 성격을 띤 집단이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중세는 어찌보면 교회에 의한 윤리적인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윤리적인 면은 하나의 질서로 변하고 그 질서에서 벗어난자를 교회는 사회 밖으로 격리시켰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리되어야할 집단은 종교적인 부류와 성적인 부류로 대별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중세의 근간이었기 때문에 이를 위협하는 이단자와 마녀는 철저히 색출되어 처벌되었다. 이들은 종교를 부정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의 불에서 고통을 받아야할 죄인들이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못박은 죄를 저지른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의 희생양이었다. 이들은 중세 기독교 유럽에서 아무런 신분적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다른 부류와는 달리 자신들이 스스로 격리를 택하였다. 창녀와 동성애자들 특히 동성애자들은 저주를 받아야만 하는 무리들이었다. 이들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이는 신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나병환자가 소외집단에 포함된 것은 성서에 근거한 것이었다. 구약에 나타난 부정한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병은 신의 뜻을 거슬른 자에게 내려지는 징벌로 이해되었는데 이는 구약에서 모세의 동생인 미리암의 예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미셀 푸코가 관심을 기울인 권력이 어떻게 소외집단을 이용해 강화되는가를 보여준 것에 대한 중세적인 해설서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다양한 예를 통해 중세의 소외집단을 통해 교회권력과 국가권력이 강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여 지배체제를 공고히하기 위해 교회와 국가의 결합이 인간 자유에 대하여 어떤 구속을 가져오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소외집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외집단을 통해 정상적인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 가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법은 결코 어떤 특정집단만을 향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만들어진 법은 만민의 주위를 배회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