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러시아 문화
랴쁘체프 지음 / 계명대학교출판부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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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북방정책이 시들해져 갈 무렵 한국에서는 러시아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한국이 러시아를 보는 시각은 몰락한 부자, 혹은 은퇴한 왕년의 주먹을 보듯 측은한 시선이 주를 이루었다. 이때 러시아의 극우파 지도자였던 지리노프스키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읽게 되었다. 그의 요지는 간단했다. 지금의 러시아를 보지 말고 미래의 러시아를 보아 달라고, 그리고 지금의 한국민들의 시각이 러시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와 한국의 역사적인 배경도 언급하면서 두 나라 국민은 충분히 함께 국제사회에서 동료로서 친구로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물론 그는 글의 마지막에 경고도 잊지 않았다. <지금 러시아는 힘이 없지만 그래도 한국이 통일을 이루는데 충분히 방해는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우파 지도자였던 지리노프스키가 하고 싶었던 말은 마지막의 이 말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러시아란 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없었다.  당시 지리노프스키는 신문에 의하면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닌 광기의 정당 지도자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가 보낸온 논리 정연한 글은 약간 충격으로 다가왔다. 글만으로 판단할 때 그는 결코 광기의 지도자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아주 대단한 정당의 당수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를 히틀러와 유사한 광기를 가진 지도자라고 무시하는 세평과 논리정연한 글 사이의 간극은 러시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하였다.   

중세 러시아 문화를 읽으며 러시아를 다시 반추해 보았다.  한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읽어보는 것만큼 현명한 것은 없다고 느낀다. 러시아 중세의 문화사를 읽어보면 러시아가 역시 만만한 나라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의 중세는 11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장대한 시간이다. 이 시기는 우리의 역사에서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시간이다. 그 당시 우리의 역사와 비교해 가면서 이 책을 읽는 재미도 제법 솔솔하였다. 그들도 우리만큼 역사가 깊고 자신들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는 문화민족임이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상호존중적인 접근과 이해는 러시아를 우리의 아주 가까운 이웃으로 만들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화적 역사적 상호존중이 깨질 때 우리는 북방에 아주 적대적인 강대국을 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미치자 현재의 러시아와 우리의 관계를 유추해 볼 때 러시아란 나라가 다시 기지개를 펼 때 우리의 위치는 초라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를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이들을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북방정책 이후의 일이다. 아직 20년이 흐르지 않았다. 지금 경제적 협력이 미미한 러시아를 이해하는 방법은 문화와 역사로 접근하는 방식밖에는 없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이들 나라를 덩치만 큰 별볼일 없는 국가로 경시할지도 모른다. 상대를 모르고 무시하는 것은 자멸의 지름길일 뿐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는 인도와 브라질,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90년대 이후 러시아와 중국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두루 두루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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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5-2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불어닥치는 중국열풍을 보면 90년대의 맹목적인 러시아열풍을 보는 것 같아 좀 씁쓸합니다. 한국인의 얄팍함 때문에 말입니다.
어쨌든 러시아는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의 대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