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쓸쓸한 사냥꾼>과 동시에 <이와 손톱>을 출간하다니, 북스피어는 참 똑똑한 출판사다.
고전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야 <이와 손톱>이 언제 나오든 상관 없었겠지만
나처럼 고전에 일자무식한 독자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을 읽고 난 후 이 책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딱맞춰 <쓸쓸한 사냥꾼>의 뒷날개에 <이와 손톱>의 광고까지 실어주는 센스라니.
어느 책이 먼저 계약이 되었는지, 실제 출간 계획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명한 선택이었다.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이와 손톱>은 추리소설에 익숙한 현대 독자들에게는 그리 충격적인 결말을 선사하지 못한다.
책을 읽다보면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이것은 이 책뿐 아니라 추리소설의 거의 모든 고전, 또는 출간일이 오래 된 책들에 공통된 부분이다.
이미 여러 트릭에 익숙한 현대 독자들의 눈에 이 소설의 형식은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다.
그러나, <이와 손톱>은 분명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고전의 힘'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루와 탤리가 우연히 만나 조심스레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와
법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재판 과정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그 가운데 긴장감이 고조되고 이미 결말은 눈에 보이지만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은 욕망 역시 커져간다.
이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힘이고 저자의 역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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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8-03-2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 밸린저 책이 더 나온다니 더 좋죠^^

보석 2008-03-24 15:03   좋아요 0 | URL
기대됩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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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는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써진 지 몇십 년이 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대가족이 모인 저택에서 사건이 주로 발생한다던가 하는-은 분명히 있지만
소설 대부분을 관통하는 인간심리에 대한 관찰과 묘사는 그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심리를 꿰뚫고 있는 작품들이기에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여전히 매력적이고
또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읽는 맛이 있는 작품들이 많다.

티눈약을 팔아 엄청난 부를 쌓아올린 노인이 갑자기 사망한다.
원래도 지병이 있어 의사에게 2~3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고
최근에 아끼던 아들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삶의 의욕을 잃었기에 모두 그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그의 죽음에 의문을 표한 것은 몇십 년 전에 가족과 의절하고 가난한 화가와 결혼했던 그이 누이다.
다소 멍청하고 눈치가 없어 항상 불편한 진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버릇이 있던 노부인은
가족 모두가 모인 장례식장에서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다.
"그렇지만 오빠는 살해된 거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말한 노부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후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유언장을 공개했고 고인의 오랜 벗이었던 노변호사는 그녀의 죽음에 불안함을 느낀다.
왜 그녀는 살해당했을까.
혹시 언제나 그렇듯 그녀가 불편한 진실을 말했기에 범인에게 살해된 걸까?
변호사는 에르큘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포와로는 범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뛰어든다.

안타깝게도 예전에 이미 읽었던 작품이라 초반을 읽다가 범인을 기억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묘사되는 인물들이 다양한 개성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번역되고 있다.
추리소설 팬으로써 참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요즘 나오는 책들 중에는 이렇게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책이 드물다는 거다.
말초적인 재미나 흡입력 흥미진진한 전개를 갖춘 책들은 많지만
이렇게 생각할거리를 주는 책은 많지 않다.
이런 명작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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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그린다 -하
카야타 스나코 지음, 한가영 옮김, 오키야 마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왕녀 그린다>는 이미 완결된 <델피니아 전기>의 전신이다.
저자는 처음에 <왕녀 그린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다 출판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중단했고
2년 후 다른 출판사에서 <델피니아 전기>라는 제목으로 심기일전하여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 완결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저자 서문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왕녀 그린다>와 <델피니아 전기>는 같은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인공인 리나 월, 셰라, 이븐, 샤미안, 발로 등이 똑같이 등장하는데다 배경이나 스토리도 비슷하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고 몇 명의 인물들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18권으로 완결된 <델피니아 전기>를 다 읽은데다
이어지는 <스칼렛위저드> <새벽의 천사들>에 외전까지 모두 읽은 내가,
굳이 <왕녀 그린다>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한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들면 다른 작품들까지 모~두 찾아 읽는 것이 올바른(?) 팬심이겠지만
일부러 같은 작품을-그것도 미완의-찾아서 읽을 마음은 생기지 않아서 출간 소식을 듣고도 오래도록 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는데 델피니아에는 없는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말에 솔깃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읽고 난 지금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카야타 스나코의 열렬한 팬이라면 <왕녀 그린다>도 구입해 읽어볼 만하다.
그렇지 않다면, 구매는 좀더 생각한 후 결정할 일이다.

**구매할 경우 장점:
+두 작품의 미묘한 차이-예를 들어 델피니아에서는 리에게 드레스를 입히는 데 폴라의 눈물작전이 필요했지만 이 책에서는 이븐과 샤미안 두 사람이 협공으로 리를 이겨서 드레스를 입히는 소원을 이룬다. 즉 이 책의 리가 델피니아의 리보다 조금 더 인간적(?)이고 여성적(?)이고 부드럽다. 반대로 셰라는 이 책에서 좀더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월의 경우 이 책에서의 존재감은 델피니아와 비교해 거의 안습 수준이다-를 비교해보는 소소한 즐거움은 누릴 수 있다.
+작가와 삽화가의 발전사를 느낄 수 있다.

**단점:
+어차피 다 아는 이야기의 옛 모습을 일부러 돈 주고 사서 읽어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요즘 책값이 좀 비싸야지)
+나시아스가 없다! 대신 카밀 왕자와 나시아스와 약간(?) 비슷한 이미지의 사로마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2권짜리 미완의 글이다.
+인물 묘사는 델피니아가 더 뛰어나다. 2년이라는 시간이 작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델피니아의 인물들이 이 책의 인물들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개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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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집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평점 :
품절


"살인자들이란 어떤 사람이냐-사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아주 좋은 친구들도 많단다."
그 말에 내가 좀 놀란 얼굴을 했나 보다.
"그래. 정말이란다. 정말 어떤 살인자들은 너나 나처럼-아니면 방금 나간 로저 레오니데스처럼 아주 멀쩡한 사람들이지. 사실 살인이란 범죄 중에서는 아마추어에 속하는 범죄란다. 그들은 어찌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거나 또는 돈이나 여자가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다거나 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거야. 그럴 때면 대부분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잘 듣는 브레이크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말을 듣지 않게 되지. 하지만 아이들이란 욕망을 주저없이 행동으로 옮긴단다. 그 한 예로 만일 고양이 때문에 화가 났을 경우 어린애들은 '죽일 테야' 하면서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고, 그 다음에는 또 그 고양이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슬퍼하지. 하지만 대개의 어린애들은 우선 자기가 한 짓이 옳지 않다는 것, 즉 그런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단계에 이른 다음에야 그러한 짓이 나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어린애 상태 그대로 그냥 있게 되는 경우도 있어. 그런 사람들은 살인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느끼지는' 못하지.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살인자들이 진정으로 뉘우치는 법이 없단다. 그리고 그것이 카인의 특징이기도 하지. 살인자들은 일반적으로 좀 구분되는 종류의 인간이야. 특이하게 '다른' 인간들이거든-살인이란 잘못이지-하지만 그들에게는 잘못이라고 여겨지질 않아. 왜냐하면 그들에겐 그것이 필요한 행위로 여겨졌으니까."

"네가 원하는 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좋은 일가족 가운데서 살인마를 집어낼 수 있는 보편적인 표식 같은 거 아니겠니?"
"예, 바로 그런 겁니다."
"하지마 그런 그런 보편적인 공통분모가 과연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채 말을 멈추었다. "만약 있다면 나로선 그것이 허영심이라고 말하고 싶구나."

돈이 많고 괴팍하지만 가족들에게만은 한없는 애정을 쏟아붓던 노인이 갑작스러운 죽음.
비뚤어진 집에 보여 있는 일가족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나는 저 위에 발췌한 다소 긴 글을 애거서 크리스티가 살인자에게 내린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쓴 모든 시리즈는 저 정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리소설로도 재미가 있지만 인간 심리에 대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깊은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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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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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서문화사에서 출간된 <나인 테일러스>와 <의혹>을 읽고 피터 윔지 경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시공사에서 피터 윔지 경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을 낸다는 것을 알고 기대에 부풀어 구입했다.

이 책에서 윔지 경은 평범한 남자의 집에서 발가벗은 중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는 기묘한 사건과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가 말없이 사라진 두 사건에 동시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찰의 시선을 피해 친구와 충실한 하인인 번터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지만 단순히 추리소설의 재미만으로 말하자면 <시체는 누구?>는 그렇게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1923년에 쓰여진 작품인 만큼 이미 온갖 트릭에 단련된 독자들은 쉽게 범인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시리즈 첫 번째이니 만큼 '피터 윔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점이다.
<시체는 누구?>가 아니라 <피터 윔지는 누구?>인 것이다.
부유한 공작가의 둘째 아들이자 고지식한 형과, 반대로 매우 재기발랄하고 활기찬 어머니가 있고
사진 찍기와 현상이 취미인 하인 번터, 친구인 경찰(이름 까먹었다;)와 함께 그를 적대시하는 경찰 서그를 피해 사건을 해결하는 귀족 탐정.
고서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 각종 경매에 참가하고 언제나 멋부리는 것을 잊지 않는 멋쟁이지만
전쟁에서 겪은 참혹한 일 때문에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면모도 있다.
추리소설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지만 피터 윔지라는 매력적인 탐정을 소개한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다시 <나인 테일러스>와 <의혹>을 읽는다면 분명 또다른 느낌일 것이다.
출간 예정인 피터 윔지 경의 다른 시리즈들의 빠른 출간을 기대한다.

추천하고 싶은 사람: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기존에 출간된 피터 윔지 경 시리즈를 읽은 사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사람: 템포 빠른 현대 추리소설'만'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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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체는 누구?
    from 잠보니스틱스 2008-03-09 21:36 
    원제: Whose Body?저자: 도로시 리 세이어즈출판사: 시공사평범한 건축가의 집 욕조에서 신원불명의 중년남자가 알몸의 시체로 발견된다. 남겨진 단서는 금테 코안경과 사슬 뿐. 소문난 애서가이자 범죄수사가 취미인 명문귀족의 아들 피터 윔지 경은 즉각 수사에 착수한다. 경찰은 같은 날 실종된 유태인 사업가가 문제의 시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하지만 조사 결과 시체는 사라진 사업가와 전혀 별개의 인물로 밝혀진다. 파고들면 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