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는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써진 지 몇십 년이 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대가족이 모인 저택에서 사건이 주로 발생한다던가 하는-은 분명히 있지만 소설 대부분을 관통하는 인간심리에 대한 관찰과 묘사는 그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심리를 꿰뚫고 있는 작품들이기에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여전히 매력적이고 또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읽는 맛이 있는 작품들이 많다. 티눈약을 팔아 엄청난 부를 쌓아올린 노인이 갑자기 사망한다. 원래도 지병이 있어 의사에게 2~3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고 최근에 아끼던 아들이 사고로 죽는 바람에 삶의 의욕을 잃었기에 모두 그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그의 죽음에 의문을 표한 것은 몇십 년 전에 가족과 의절하고 가난한 화가와 결혼했던 그이 누이다. 다소 멍청하고 눈치가 없어 항상 불편한 진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버릇이 있던 노부인은 가족 모두가 모인 장례식장에서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다. "그렇지만 오빠는 살해된 거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말한 노부인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후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유언장을 공개했고 고인의 오랜 벗이었던 노변호사는 그녀의 죽음에 불안함을 느낀다. 왜 그녀는 살해당했을까. 혹시 언제나 그렇듯 그녀가 불편한 진실을 말했기에 범인에게 살해된 걸까? 변호사는 에르큘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포와로는 범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 속으로 뛰어든다. 안타깝게도 예전에 이미 읽었던 작품이라 초반을 읽다가 범인을 기억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묘사되는 인물들이 다양한 개성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번역되고 있다. 추리소설 팬으로써 참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아쉬운 것은 요즘 나오는 책들 중에는 이렇게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도 좋은 책이 드물다는 거다. 말초적인 재미나 흡입력 흥미진진한 전개를 갖춘 책들은 많지만 이렇게 생각할거리를 주는 책은 많지 않다. 이런 명작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늘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