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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상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ㅣ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 요란뻑적지근한 광고와 촌스럽기 그지없는 표지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책이다.
아마 스웨덴에선 끗발 날린 책인 것 같은데, 물론 출판사 입장에서야 그 사실을 널리 널리 알리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절제의 미학이라는 것도 모르나. 웬갖 평을 다 갖다 붙여서 말을 길게길게길게길게길게 늘린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표지. 원서 표지도 저거라고 하긴 하는데, 정말 저 촌스러운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썼던 말인가. 딱 봐도 크리스티나 리치의 이미지를 도용한 저 이미지가?
게다가 80년대에나 썼을 법한 제목 서체는 뭥미? 보고 기겁했다.
내가 정말 제 돈 다 주고 사서 읽고 치를 떨었던 같은 출판사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표지 하나는 기똥차게 만들었더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거,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초반에 좀 지루하다는 말이 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해서인지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많고, 다들 한 집안 식구들이라 그런지 이름들이 비슷비슷해서 그 이름과 관계를 외우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반예르 일가는 작은 다리 하나로 이어진 섬에 일가가 모여서 살고 있는데 이 다리에서 차 사고가 일어난 날, 헨리크가 가장 아끼던 손녀딸이 사라진다. 섬과 육지를 잇는 것은 오로지 다리 하나이고 배는 모두 정박 중이던, 일종의 밀실 상태였다. 사고가 수습된 후 손녀가 사라진 것을 알고 경찰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수색에 나서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세월이 흐른다. 20여 년이 흐른 후에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손녀딸 실종사건을 파헤쳐줄 것을 부탁한다.
책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시점에서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미카엘이 재판에서 패하고 헨리크의 부탁을 받아들여 실종사건을 조사하는 과정,
리스베트가 헨리크의 의뢰로 미카엘의 뒷조사를 하고 나중에 미카엘의 요청을 받아 조사원으로 실종사건 조사에 투입되는 과정.
이후로는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재미있다.
상권과 하권의 60% 분량까지는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뒤다.
하권 뒷부분의 40% 정도가 왜 있는지 모르겠는 군더더기에 가깝다.
요령 있는 프로 작가라면 3~4쪽 분량으로 압축할 수 있는 내용이 200쪽 가까운 분량에 걸쳐 진행된다. 이것은 작가가 2개의 큰 줄기를 합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의 큰 흐름을 이루는 것은 하리에트 실종사건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헨리크는 두 사람을 끌어들이고, 사건을 조사하는 데 많은 부분이 할애된다. 또 다른 축은 미카엘이 재판에서 패소한 사건이다.
미카엘은 우연히 만난 친구의 말을 듣고 한 부패한 경영인 한스 베네르스트룀에 대해 알게 되고, 그에 대해 조사한 것을 잡지에 발표했다가 오히려 고소를 당한다.
자신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스 베네르스트룀에게 미카엘이 거꾸로 당한 것이다.
(미카엘이 당하게 되는 과정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집 <헤라클레스의 모헙> 중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 2가지 축은 초반에는 곳곳에서 겹치게 된다.
헨리크는 미카엘을 끌어들이기 위해 리스베트에게 한스 베네르스트룀에 대해 조사하게 했다가 취소하고, 그 후 잠시 리스베트는 독자적으로 한스 베네르스트룀에게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진행한다. 헨리크가 손녀 실종사건 수사를 맡기기 위해 내키지 않아 하는 미카엘을 끌어들이는 미끼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한스 베네르스트룀의 과거 부패의 증거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미카엘은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동안에도 과거의 일을 끝없이 되내이며, 그와 함께 잡지 '밀레니엄'을 운영하는 에리카 베르예르 역시 실종사건 수사따위 그만두고 한스 베네르스트룀에게 당한 수습을 하라고 채근한다.
그런데 1권 후반부터 실종사건 수사에 불이 붙으면서 책은 흥미진진해지는데 미카엘의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진전이 없다. 그러다 덜컥(정말 덜컥이다) 진실이 밝혀지더니만 헨리크는 비겁하게도 미카엘에게 제시했던 미끼-한스 베네르스트룀에 대한 정보-가 현재로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임을 고백한다.
여기까지가 2권 60% 되시겠다.
그 뒤는 한스 베네르스트룀 사건에 대한 건데 앞에도 말했다시피 왜 200쪽이 되어야 하는지 모를 내용이다. 작가가 기자 출신이어서 언론의 책임감과 투명성 확보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것은 알겠는데, 그런 것 치고도 너무 군더더기가 많다.
결정적으로 200쪽 분량이 미카엘이 부패 재벌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도 아니다. 증거는 어느새 미카엘에게 홀딱 빠진 리스베트가(상대는 20살이나 많은 아저씨라규, 이 아가씨야!) "옛날에 그놈 컴퓨터를 홀라당 해킹했더니 재미있는 게 이렇게나 많이 나오네요?" 요러면서 냉큼 안겨준다. 뭥미? 덕분에 미카엘은 손 안 대고 코 풀게 된다.
그럼 200페이지 분량은 뭘로 채워져 있느냐.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산장에 쳐박혀 연애질도 좀 해주시고, 미카엘은 밀레니엄에 숨어든 첩자도 잡아내고, 리스베트는 한스 베네르스트룀이 맘에 안 든다고 그놈 비밀계좌에 든 돈을 홀라당 빼먹는다. 한스 베네르스트룀의 몰락 과정 역시 들어 있다.
2가지 줄기가 적절히 조화만 이루어졌어도 <밀레니엄>은 지금보다 훨씬 긴박감 있고 재미있는 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2권 후반부가 너무 늘어져서 중간의 재미를 갉아먹고 있다.
몇 가지 문제를 더 말하고 싶지만 생략.
위에는 줄줄이 불평을 했지만 절대 재미없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꽤 재미있다.
부산 내려 가는 기차 안에서 읽기 시작해서 24시간 내에 2권을 다 읽었을 정도이다.
일단 사건 자체도 흥미진진하고 수사 과정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다만 마무리가 좀 부족한 것이 흠이랄까.
큰 감동은 없지만 재미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