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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 블레이즈 3 - 베로니카의 폭풍
카야타 스나코 지음, 박용국 옮김, 스즈키 리카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밸런타인 경은 쏘아보는 듯한 눈길을 루에게 향하고는 짓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에드워드는 어디 있지?"
"자세한 위치까지는 알 수 없어. 알 수 있는 건, 그 애가 살아 있다는 것, 그거뿐이야."
댄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아니, 넌 알 수 있을 텐데."
밸런타인 경 앞이었지만 댄은 주저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그 비상식적인 소년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렇다면 다 알고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지금까지 넌 보이지 않는 걸 수없이 봐왔어. 실종된 우주선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거야."
루가 꺼낸 것은 즐겨 쓰던 카드였다.
점술사들이 애용하는 도구의 하나다. 각 장마다 그림과 숫자가 그려져 있는 그 카드를 상자에서 꺼낸 루는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가지고 있다 보면 점을 치고 싶을 지도 모르잖아."
댄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루를 바라보았다.
"점칠 생각이 없다는 말이냐?"
"웬일로 눈치가 빠른 걸. 제대로 짚었어."
"어째서? 제임스만 사라진 게 아냐. 그 소년과 셰라도 <로빈슨>에 타고 있었다고!"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당신은 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로빈슨>이 어디 있는지를 가르쳐주십시오."
젊은 남자, 라 종족의 데몬은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선장님,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에겐 그 질문에 대답할 권한이 없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다소의 융통성을 발휘해주십시오. 그 소년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당신들 입장에서도 반갑지 않을 텐데."
<중략>
데몬은 느끼한 동작으로 인사를 한번 하고,
"하지만 좀 아니꼬운 점이 있는데 말이죠, 당신은 꼭 자신이 아쉬울 때에만 저를 찾으시는군요. 저희의 존재를 비과학적이라고, 그런 건 못 믿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지 않으셨던가요?"
내가 이 시리즈 중 제일 싫어하는 인물이 바로 '댄'이다.
(그 아들인 '제임스'도 싫지만 그쪽은 아직 어리니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작가는 이 댄을 상식에서 벗어난 괴물들이 드글거리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정상(?)에 가까운 인물로 설정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단순히 속 좁고 비겁하며 나이 헛먹은 중년일 뿐이다.
위의 일화들은 그런 댄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크래시 블레이즈]의 3번째 이야기 '베로니카의 폭퐁'은 재판 광경에서 시작된다.
인권침해 혐의로 기소된 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와 셰라, 제임스를 포함해 몇몇 학교에서 모인 12명의 학생들은 방학 동안
체험학습을 위해 '베로니카'라는 행성에 가기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사람이 없는 행성이었다.
학생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태웠던 우주선이 사라진 일로 난리가 난다.
그 난리통에 위와 같은 대화가 오간다.
평소 루 보기를 벌레 보듯 하던 댄은 뻔뻔스럽게 루에게 자신의 아들이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한다.
그것도 정중한 부탁도 아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아들 이야기는 쏙 빼고 리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한마디로 재수없다.
지루했던 1권을 지나 2권은 꽤 재미있었는데 3권은 다시 지루하다.
정확하게 말해 작가의 억지가 너무 심하다.
[델피니아 전기]에서도 요 앞의 1권에서도 눈치 보는 척은 하지만 능력을 마음대로 쓰던 루가
새삼 여기서는 리가 있는 곳을 점치는 간단한 것조차 규정 위반이라 못하겠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 수많은 규정 위반은 괜찮고 이게 왜 안 되는 걸까?
물론 한권 내내 무인행성에 떨어진 12명의 아이들이 리의 다소 난폭한 지도로
살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루가 하루만에 위치를 찾아내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니..-_-;;
일본에는 이미 11권까지 나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에도 나올 듯하니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느긋하게 기다리면 다 읽을 수 있겠지만,
이 시리즈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