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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는, 말하자면, ‘저자거리 정치학’이다. 그는 ‘저자’에서 놀며, ‘저자판’의 언어로, ‘저자판’같은 정치를 까대고 희롱한다. 이것은 그의 언어가 부박하다는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저자거리 언어가 뛰어난 정치학자의 그것보다 현실정치를 분석하고 바라보는데 더 유효하다는 의미다. 저자의 언어이기에 대중들은 그의 말을 더 쉽게 알아듣고, 더 빨리 이해한다. 그리고 이 저자판 같은 정치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도 금새 알아 먹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김어준에 와서 비로소 한국의 정치비평은 대중의 언어로 하강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출근버스 안에서, 사무실 책상위에서 낄낄대고 읽으면서, 역설적으로 한국의 정치학자들이, 정치인들과 정치부 기자들이 얼마나 한국정치와 대중의 정치감각에 대해 무지한가를 새삼 깨달았다.
김어준은 본인 스스로 ‘노빠’임을 표나게 드러내는데, ‘멋진 사내’라는 그의 평가는, 노무현의 언어와 삶이 분칠된 언어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홍준표에 대한 그의 평가와 친밀함도 이런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홍반장의 경박함과 좌충우돌을 비판할 수 있을 지언정, 그에게는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질박한 자기 언어와 삶이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를 빌리지 않고”, ‘정치공학’에 휘둘리지 않는 김어준의 시각에서 나온다. 저자로 내려오니, 저자판 같은 정치가 보이고, 그 저자판에서 드물게 빛나는 정치인들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첫머리에 있는 조국에 대한 평가(와 조국이 간과하고 있는 바), 문재인 대망론, 박근혜와 오세훈에 대한 진단이 빛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한국정치를 말하는 정치학자들은 지역과 이념, 세대의 균열구조를 말하고, 정당정치에 관한 이론을 거론하겠지만, 그것은 많은 경우 이론이라는 ‘보편의 언어’로 위장된 정파적 언어인 경우가 많다. 마치 보편적 지식인인양 고상하게 우아 떨며 말하는 일급 학자들이 기실은 폴리페서거나 유력 정치인의 가방모찌에 불과한 사례를 숱하게 봐 왔다. 그러느니 차라리 김어준처럼 “쌩까고” 지지의 이유와 근거를 적나라하게 밝히는 게 낫다. 김어준의 나꼼수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고상 우아 죄다 벗어던지고 편향성을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저자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계몽된 대중’들은 계산과 공학에 능한 한국정치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것 같다.
이 책을 정말 제대로 읽어야할 사람들은 진보신당 당원들이다. 정치적 선명성을 내세운다고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하긴 어렵다는 김어준의 충고는 두고두고 곱씹어야할 과제일 것이다. 노빠들의 노무현 지지에 대해 ‘정치적 광신’이라 매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 아니, 민노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대중들에게 그만한 ‘감동’을 준 진보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다. 감동 없는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 ‘논리’ 이전에, 신자유주의라는 알듯 모를 듯한 ‘추상’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력과 사람이 없다는 것을 되돌아봐야 한다. 적어도 이 책에서 김어준이 지적하는 문제들은 전적으로 옳다.
박근혜의 정치학이 아버지에 대한 ‘제사와 효도’ 차원이라는 지적은 김어준다운 유쾌한 통찰이다. 마음 같아서는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을,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함께 한국정치를 이해하고 바꾸기 위한 대중을 위한 정치교과서로 평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