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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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쓴 <내 젊은 날의 숲>을 한 달 째 가방에 넣고 다니다 이제야 겨우 다 읽었다. 서사의 골격이 그리 튼실하지 않은 그의 소설은 띄엄띄엄 읽어도 좋고, 중간에 서사의 흐름을 까먹어도 읽기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김훈은 더 이상 장편소설을 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말하자면 그는, 드넓은 채마밭을 어떤 기계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호미 한 자루로 일구고 있는 가난한 농부다. 그에게 어울리는 경작지는 뒤꼍의 작은 텃밭이지 너른 들판이 아니다. 생래적으로 단편의 호흡인, 단편의 문장을 가진 그가 부실한 서사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문장의 힘만으로 장편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걸 읽어내는 독자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김훈이 고유의 문장을 만들어낸 보기 드문 소설가인 것은 분명하다. 나로서는 저 먼 옛날의 <문학기행>으로부터 이 소설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문장을 오랫동안 보아 온 셈인데, 이젠 좀 지겹다. 이 ‘지겨움’은 그의 문장이 실어나르는 ‘숙명적 현실주의’(라고 명명하고 싶다.)라 할만한 김훈식의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는 정밀한 관찰력과 세심한 독해력으로 풍경의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이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아니 본래 풍경의 안쪽으로 스미고자 하는 관찰자의 시도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허무적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안으로 스미지도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지도 못할 때, 그에게 남은 길은 이 엄정한 우주만물의 질서를 숙명적으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길 외에는 없다. 그는 가진 것이 닳고 닳은 한자루 호미 밖에 없으므로, 뙤약볕에도, 눈보라에도 제 목숨의 연명을 위하여 땅을 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안쓰럽다기보다는 엄중한 삶의 리얼리즘이므로, 차라리 엄숙하다.

김훈이 “사내의 할 일이란 모름지기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라고 말할 때, 혹자는 그의 남근주의를 탓하고 성별분업의 차별적 질서를 옹호한다라며 비난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자연의 질서”로 인식하는 김훈에게는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한 개별자가 운명적으로 감당해 내야할 삶의 몫은 그날 하루 식구들의 입으로 넘어갈 ‘밥’을 만드는 일이며, 그 밥을 목으로 넘길 때의 비릿한 질감을 맛볼 때, 그 삶의 리얼리즘은 추상성에서 벗어나 구체적 일상성이 된다. 자신에게 부과된 목숨의 값을 맨 몸으로 버텨내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김훈식의 인생론. 어떤 초월의 의지에도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며, 거짓 선지자들의 목소리에도 현혹되지 않는 이런 시각. 개발바닥의 굳은 살을 만지며, 그 개가 맨발로 버텨왔을 삶의 리얼리즘에 경의를 표하는 것. 이런 인식은 수긍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동어반복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세속적 트임의 각성도 던져주지 못하며, 아유, 정말 지겹다. <내 젊은 날의 숲> 어딜 펴도 이런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김훈식의 문장과 만난다.

“강은 자유사행으로 남류했다. 강이 지평선을 넘어올 때, 먼 상류쪽에 저녁 햇살이 닿으면 강은 수면위로 붉은 노을을 이끌고 저무는 고원을 건너왔다. 강은 비무장 지대를 빠져나오면서 서쪽으로 굽이쳤고, 그 굽이의 언저리에서 일어서는 산맥을 따라서 동부전선은 잇달린 봉우리들을 넘어갔다.” “두루미들은 갑자기 외마다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두루미들의 비명소리는 탁했고, 속이 비어서 들판의 저쪽 가장자리에까지 닿았다. 가까이서 울부짖는 두루미 소리도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것들은 작은 불결이나 훼손도 묵과하지 않았다.” “그 닮은 꼴 부자의 결핍은 생명으로 태어난 것들의 근원적인 결핍이어서, 본래부터 결핍속에서 태어나서 거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그 결핍에 젖어서 살수는 있지만, 그것을 감지할 수는 없었고, 그들 부자의 결핍은 그 결핍을 인식하는 능력조차 결여된 결핍이었다.”

이런 식의 밀도가 높은 문장들이 겹겹이 쌓인 한권의 소설을 읽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다. 그건 <자전거 여행>이거나 <내가 읽은 책과 세상>과 같은 김훈의 다른 에세이보다 더 버겁게 읽힌다. 이미 산문에서 충분히 말해진 담론을 굳이 소설로 반복해야 하나.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 <남한산성>이 그나마 읽히는 까닭은, 이들 소설에는 ‘서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서사는 김훈이 만들어낸 게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 김훈의 빈곤한 서사적 상상력을 대신했을 뿐이다. 이 소설에서 그나마 읽을 만 했던 것은 그의 세심한 주의력과 관찰력이 ‘풍경’을 향할 때다. 자등령 언저리의 숲을 묘사하거나, 휴전선 부근의 풍경을 말할 때 김훈의 문장은 시적으로 빛난다. 시적이므로, 시간성은 실종되어 없고, 그러니 시간성을 원리로 하는 서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원래 그는 소설가라기보다는 외부의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개별자의 ‘상처’를 더듬어나가던 에세이스트가 아니었던가. 그가 풍경을 바라보고, 짧은 김훈식 문장으로 써내려갈 때, 풍경과 더불어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도드라지지 않고 풍경과 더불어 있다. 김훈에게 ‘인간’은 오롯한 존재가 아니라, 저 자연적 질서가 만들어낸 풍경의 일부이면서 풍경 그 자체이기도 하므로.

<내 젊은 날의 숲>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김훈도 이런 책을 써서 가계에 보탬을 도모할 만큼 궁핍하지도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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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1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배~안녕하세요 심혜리입니다~ 잘 지내시죠?
김훈의 이 책은 저도 읽으면서 '김훈의 바운더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지만, 소설 속의 여주인공과 어쩐지 겹쳐지는 점들(스물 아홉, 아빠의 죽음, 방황..)들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좀 애틋하게 읽었습니다.
참,, 며칠전에 아빠 1주기에 맞춰 창비에서 유고시집이 나와서요,, 선배께도 한권 드리고 싶은데.. 조만간 만나게 되면 드릴게요.ㅎㅎ 곧 뵈어요~^^

모든사이 2011-02-12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 혜리씨. 원래 책 리뷰라는 건 칭찬과 주례사로 이뤄져야 마땅한데 이런 식으로 쓰니 잘 알지도 못하는 김훈선생께 미안하네..ㅎㅎ 심호택 선생의 시집이라니, 나야 고맙지 아주..더구나 '따님'이 주는 책이니..

프리즘 2011-09-2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밀도가 높은 문장들이 겹겹이 쌓인 한권의 소설"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점점 정형화되어가는 김훈님의 글이 조금은 안타까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