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게 생존하기 - 거짓과 기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헛소리 까발리기의 기술
칼 벅스트롬.제빈 웨스트 지음, 박선령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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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통계학 서적을 읽은 이유는 데이터 분석 공부를 하면서 해석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프란 우리가 정리된 데이터를 쉽게 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만큼 해석의 오류를 범하기도 쉽고, 잘못된 데이터 해석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 차후 내가 관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부하는 동안에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는 눈이 필요했다.

 

이어서 읽은 똑똑하게 생존하기역시 같은 맥락에서 집은 책이다. 데이터 해석 오류는 지금과 같은 데이터 홍수 시대에 만연해 있다. 인위적이든 실수이든 데이터 해석 오류는 헛소리를 생산하는 계기가 된다. 가령, 불과 얼마 전에 불가리스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코로나는 심각한 사안이라 질병청이 발 빠르게 반박하여 헛소리가 널리 퍼지지 않았다. 이는 작은 해프닝일 뿐이다. 웹서핑을 하다 보면 별의별 헛소리를 목격하며 머리가 띵-해진다. 저자들은 이런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된 정보를 파악하여 대응하는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비판적 사고를 기르기에도 좋은 책이지만, 나는 혹여나 내가 데이터를 공부면서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쪽에 좀 더 집중했다. 이 부분들은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실생활에서 헛소리를 구분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헛소리의 세계

 

애매모호한 표현이라는 헛소리의 중요한 한 장르는 자기가 한 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문자적 의미와 함의의 차이를 이용한다. -p.31

 

인터넷에는 양질의 정보가 가득하다. 그만큼 헛소리 또한 사방에 널려 있다. 헛소리의 문제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자극적이며, 수습할 시간도 없이 삽시간에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커뮤니티 사이트에 가면 근거 없는 주장이나 악의적으로 편집한 글도 곧잘 목격한다. 소셜 미디어가 절정에 달한 지금은 전파의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공유하기 버튼은 우리를 친절한 헛소리 운반책으로 삼는다. 수습하려고 들 때는 이미 늦었다. 모두 진실 여부에는 관심이 없고, 다음 헛소리를 기다리거나 운반한다. 이를 두고 저자들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명문장을 인용한다. “거짓말은 날아가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헛소리는 거짓말의 일종으로, 상대방을 호도해 진실로 믿게 만들면서 발언자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언행이다. ‘내가 엄밀히 따졌을 때 사실이 아닌 말을 해서 상대방이 잘못된 결론을 내리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한다면 그게 바로 호도다(p.28)’ 여기에 함의를 차이를 이용해 책임 소재를 없앤다. ‘함의는 사람들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한 뒤 나중에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 여지를 대거 안겨준다(p.30).’

 

도대체 헛소리를 왜 하는 걸까? 기업이나 정치권에서는 대부분 의도가 명확하다. 그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보다 친숙한 이유는 상대에게 눈에 띄는 자신의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가벼운 예로, ‘17 1의 전설이나 군대 무용담’, ‘여행 모험담같은 것들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상대방에게 원하는 인상을 주고자 할 때는 그 얘기가 꼭 사실일 필요가 없다. 말하는 본인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하는 얘기는 흥미롭거나 인상적이거나 매력적이어야 한다(p.33).’ 혹은 자극적이거나.

 

헛소리 세계인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 세계에 일조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헛소리를 파헤치고 까발리는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 헛소리

 

2가지가 서로 연관성이 있으면 그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유발한다고 추론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 p.98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는 자주 헷갈리는 개념이다. 우리의 뇌는 어떤 패턴을 발견하면 곧이곧대로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연관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상관관계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관관계 역시 인과관계가 되려면 거칠 과정이 많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내포하지 않는 건 진리다. 전자를 보여주는 데이터에서 후자에 대한 가정으로 경솔하게 도약해서는 안 된다(p.104).’

 

미국의 한 조사에서 대학생들의 맥주 섭취량을 조사했다. 여성과 남성 모두 맥주가 제공되는 병의 크기가 커질수록 마시는 맥주의 양이 늘어났다. 연구원들은 병의 크기가 맥주 섭취량 증가의 원인이라고 발표했고, 이를 근거 삼아 학생들이 술을 적게 마시도록 피처를 금지해야 한다라는 규범적 주장도 등장했다. 그러나 맥주병의 크기와 섭취량은 상관관계였을 뿐, 인과관계가 아니었다. 단순히 맥주를 많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큰 병에 든 맥주를 주문한 것이었다(p.116).

 

책에서 비판하는 또 다른 예는 나에게 조금 충격적이었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실험인 마시멜로 이야기이다. 4살 아이에게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간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는 만족지연 실험이었다.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만족지연 능력이 있는 아이들이 더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였다. 마시멜로 실험은 어릴 때의 만족지연 능력이 추후 학업 및 직업에서 높은 성취도를 이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저자들은 만족지연 능력이 이후 성공을 야기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한 연구팀이 표본을 늘려 마시멜로 연구를 복제하려고 했으나 원본 연구의 결과는 일부만 발견되었고, 만족지연 능력과 학업 성취도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듯한 요인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였다(p.120).’

 

,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안정감을 많이 느끼고 어른에 대해 높은 신뢰가 있으므로 지시하는 바를 잘 따랐고, 마시멜로 역시 자주 맛보았을 테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을 터였다. 학업 성취를 알 수 있는 청소년기에는 특히 부모의 부가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만족을 늦추는 능력과 학업 성취는 모두 부모가 가진 부의 결과물인 것이다(p.121).’ 유명한 실험이라고 해서 완벽한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실험도 뒤늦게 헛소리로 판명될 수 있다.

 

위 두 가지 예는 해석의 실수에 기인한 것이지 악의는 없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상관관계를 허위로 속여 악용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타일러 비겐이라는 작가는 재밌는 사례로 증기에 의한 살인 사건미스 아메리카의 나이를 비교했다. 두 그래프는 아주 비슷한 흐름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인위적으로 편집한 결과물이다. 기간을 늘리면 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이 증명된다. 이런 식으로 허위 상관관계를 만들어 우리를 농락할 수도 있다. 무섭지 않은가. 당하지 않으려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명확히 파악하는 눈과 사고력을 키워야 한다.

 

데이터 시각화 헛소리

 

정확한 데이터를 사용하더라도 디자이너는 그 데이터가 주는 느낌을 조작할 수 있다. - p.233

 

나는 데이터 시각화에도 관심이 많다. 분석한 결과가 보기도 좋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헛소리가 들어올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데이터 시각화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충분히 조작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속이지 않고서라도 말이다.

 

미학도 중요하지만, 데이터 그래픽은 눈길을 끄는 장식이 아니라 데이터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 원칙에 위배되는 그래프를 오리라고 한다(p.236).’ ‘오리는 우리의 시야를 빼앗아 데이터 해석을 대충하게 만든다. 데이터가 정확하더라도 그래프의 길이 차를 크게 만들면 유의미하지 않은 차이도 유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 아니면 의미 없이 디자인을 사용하여 명료성을 제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벤다이어그램을 차용했어도 겹치는 부위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왜 그런지 설명되지 않는다면 속 빈 강정인 시각화다. 보기에 예쁘다고 떡 모양 점토를 먹을 수는 없다.

 

혹은 축의 크기를 이용해 그래픽을 조작할 수 있다. 스티븐 헤이워드라는 사람이 지구 온난화 증거가 없다며 하나의 그래프를 게시했다. 지구의 평균 온도 변화 그래프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아주 미세한 온도 변화로, 지구 온난화는 음모론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지구의 평균 온도는 주식 차트처럼 변동성이 크지 않다. , Y축의 범위를 좁혀야 정상적인 지구의 평균 온도 변화를 알 수 있다.

 

X축을 조작해서 우리를 호도할 수도 있다. 간단한 방법으로, 누군가 주식 차트를 보여주면서 작년 3월만 보여줬다고 하자. 그러면 주식은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입하기 꺼려진다. 그러나 10년 치를 본다면 아마 그런 걱정은 사그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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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분만 정리했다. 물론 이 정도로 헛소리에 대응하기란 불가능하다. 헛소리하기는 쉽지만 반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헛소리하는 사람은 증거나 논리, 사실관계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저지르면 그만이다. 반면, 반박하는 사람은 그에 반하는 증거들을 일일이 수집하고 분석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헛소리에 대등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헛소리는 상대해야 하므로 헛소리 알아채기 연습은 꼭 필요하다. 책의 후반부에 헛소리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질의 절차를 소개한다. 헛소리 같은 것을 발견했을 때 참고하면 좋겠다.

 

아주 간단한 진단 방법으로 저자들은 이 원칙을 제시한다.

 

어떤 주장이 너무 좋거나 나빠서 도저히 사실일 것 같지 않다면 아마 그 생각이 맞을 것이다. - p.391

 

이 원칙을 기본으로 헛소리에 대응하자. 생각 없이 살다간 헛소리에 당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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