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야기 (리커버 특별판)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청소년 소설이라 작년에 사놓고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다. 원래는 모모를 읽으려고 했는데, 어디 갔는지 없어져서 끝없는 이야기로 손을 옮겼다. 아무래도 청소년 소설이니 유치할 것으로 여겼다. 후딱 읽어 치워버리자는 마음이 독서 동기의 90퍼센트는 차지했으리라. 그러나 내 생각은 역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도대체 무슨 책들을 읽었던 것일까. 왜 도서관을 뒤지지 않았을까. 어째서 상상을 몽상과 망상으로 구분해야 하는 지금의 나이에 이 책을 만난 것일까!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었다. 왠지 어린 시절을 날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상으로만 맛보던 내용이 이렇게 소설로 존재했었다니. 예전 나니아 연대기이후 다시 느끼는 안타까움이었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환상 세계의 아이 아트레유가 어린 여왕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한 여행을 하는 이야기이고, 2부는 바스티안이 환상 세계에 들어가 자아를 찾는 여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주인공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는 책과 이야기 짓기를 좋아했다. 현실이 싫기 때문이었다. 학교 아이들과 교사는 통통한 외모와 소심한 성격인 그를 괴롭혔고, 아빠는 엄마를 잃은 후 자신에게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비 오는 어느 날, 그는 학교를 가다 말고 고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훔쳐 도망쳤다. 제목은 끝없는 이야기, 두 마리의 흰 뱀과 검은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문양이 그려진 책이었다. 바스티안이 선택했다기보다 책에 선택받은 느낌이었다. 서점으로부터 도망친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이미 지각한 김에 바스티안은 교실 대신 인적이 드문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바스티안은 학교 일과, 아빠를 잊은 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환상 세계의 여왕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그녀의 세계가 위협당하고 있었다. ‘()’가 퍼지면서 세계 곳곳을 존재하지 않았던 곳으로 만들었다. 온갖 종족의 의사들이 그녀를 치료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측근 카이론에게 명령했다, 풀의 바다에 사는 초록 피부 일족 아트레유가 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것이니 아우린(여왕의 권한)’을 건네주라고. 아트레유는 바스티안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소년이었다. 카이론은 어린 아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염려했다. “() 여왕은 아무도 모르는 어떤 것을 찾아오라고 미지의 세계로 널 보내는 거다. 누구도 너를 도와줄 수 없고, 누구도 너에게 충고해 줄 수 없으며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넌 임무를 받아들일 건지 아닌지 당장 결정해야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p.68)”

 

위대한 사냥꾼을 꿈꾸던 아트레유는 생각보다 큰 모험임을 깨닫고 용감하게 대탐험을 나섰다. 아끼는 말 아르탁스를 슬픔의 늪에서 잃었어도, 늙고도늙은 모를라를 마주했어도, 행운의 용 푸후르를 구하고 끔찍한 위그라물에게 물렸어도, ‘우유랄라를 만나는 과정이 험난했어도, 불량배의 마을에서 그를 죽이려는 그모르크가 다리를 물어 놓지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푸후르와 함께 여정을 마쳤다. 여왕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여왕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인물이 필요했다. 구원자는 환상 세계 사람이 아닌 현실 세계 사람이었고, 그가 환상 세계로 넘어와야만 이 세계를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였다. 그가 여왕의 새 이름을 부르면 넘어올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린 여왕은 방랑산의 노인의 도움을 받아 바스티안이 부름에 응하도록 만들었다. 바스티안은 어린 여왕에게 달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 이름을 외치자 바스티안은 환상 세계로 이동했다. 어린 여왕은 그에게 환상 세계 주인의 권한인 아우린을 넘겨주며 소원을 빌도록 했다. 그의 소원이 곧 환상 세계의 재탄생이었다. 달아이는 바스티안에게 환상 세계를 맡긴 후 종적을 감췄다. 그는 이제 혼자서 세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소원을 빌어 통통하던 외모는 매끈하고 잘생긴 모습으로 변했다. 용감하고 강한 힘을 원하자 그렇게 되었다. 대가로 현실 세계의 기억을 잃었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바스티안은 밤의 숲 페를린과 다채로운 죽음 그라오그라만이 있는 일곱 빛깔의 사막을 시작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라오그라만의 존재 이유를 알려준 감사의 표시로 받은 마법의 검 지칸다를 받았다. 마법의 검은 스스로 뽑히면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그를 지켜주지만, 억지로 뽑으면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했다. 천 개의 문을 지나 아마르간트에 도착한 바스티안은 도시에서 아트레유를 만났다. 아트레유는 아마르간트에서 대회를 열어 구원자를 찾을 용사를 뽑는 중이었다. 신분을 숨긴 바스티안이 대회에서 우승을 거뒀고, 아트레유는 본능적으로 그가 구원자임을 알았다. 둘은 실제로 처음 봤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훤칠한 외모와 강한 힘, 두려움 없는 용기를 가진 바스티안은 이제 환상 세계에 명예로운 자로 불리고 싶었다. 그는 소원을 사용하여 음유시인인 아마르간트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가득 담긴 도서관을 만들어주었고, 대회에서 바스티안에게 당해 좌절한 휜레크를 위해 용을 만들어 공주를 구하게 해주었으며, 못생긴 외모로 항상 흐느끼는 아하라이 족을 항상 웃는 슐라무펜으로 바꿔주었다. 모든 결과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바스티안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럴수록 그는 현실 세계의 기억을 잃어갔다. 그것을 눈치챈 이들은 아트레유와 푸후르뿐이었다.

 

바스티안의 소원은 마녀 크사이데를 만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크사이데는 그에게 속삭여 환상 세계의 황제로 자리할 것을 유혹했다. 아트레유는 바스티안에게 진실된 말을 하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바스티안은 아트레유를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며 함부로 말했다. 결국 아트레유와 푸후르는 떠났고, 바스티안은 자신을 따르는 환상 세계 종족들을 이끌고 세계의 중심인 상아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황제가 되려는 대관식을 치르려는데, 아트레유가 여러 환상 세계 종족을 연합해 반란을 일으켰다. 한때 깊은 우정을 나눴던 둘은 서로에게 칼을 겨눴다. 억지로 빼든 지칸다는 아트레유를 찔러 부상을 입혔다. 푸후르가 재빨리 아트레유를 데리고 도망치자 분노에 휩싸인 바스티안은 그들을 추적했다.

 

추적하던 도중 맞닥뜨린 마을에서 바스티안은 진실을 깨달았다. 마을의 이름은 늙은 황제들의 도시, 과거 환상 세계에 왔으나 마구잡이로 소원을 빌다 자아를 잃어버린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멍청한 행동을 하며 살아갔다. 아트레유는 이런 미래로부터 바스티안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소원을 빌어 마을을 빠져나오긴 했으나 그는 또다시 기억을 대가로 지불했다.

 

바스티안은 여러 날을 걸었다. 조화롭긴 하지만 사랑이 없는 도시 위스칼을 지나 변화하는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아이우올라 부인이 살았다. 그녀는 바스티안을 기쁘게 맞이하면서 조급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기억을 잊어버려 걱정하는 바스티안에게 아이우올라 부인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그저 변하는 거(p.628)”라며 위로했다.

 

바스티안은 마지막 소원을 사용해 (대가로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었다.) 변화의 집을 벗어나 그림들의 광산에 도착했다. ‘요르라는 광부가 지키는 광산에서 바스티안은 생명의 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생명의 물은 현실 세계로 향하는 길이며 스스로 찾지 않는 이상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곳이다. 바스티안은 다양한 기억들이 묻혀 있는 광산에서 요르를 도와 자신이 찾는 그림을 캐냈다. 가운을 입은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얼음에 갇혀 있었다. 남자는 바스티안의 꿈속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바스티안은 그 그림이 자신을 생명의 물로 이끌어줄 열쇠임을 깨닫고 광산을 떠났다.

 

소중한 그림을 조심히 들고 이동했다. 그러나 자신이 존재를 바꿔주었던 슐라무펜이 등장해 장난치는 바람에 바스티안의 희망은 산산조각나버렸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때, 아트레유가 행운의 용 푸후르를 타고 나타났다. 바스티안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우린을 풀어 그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우린의 빛이 너무 눈부셔 그들 모두 눈을 감았다. 다시 떴더니 그들은 이미 거대한 공간에 서 있었다. 서로의 꼬리를 문 흰 뱀과 검은 뱀이 지키는 생명의 물이었다. 바스티안은 아트레유와 푸후르의 도움으로 무사히 생명의 물을 통과했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바스티안은 사실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 역시 아빠를 사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코레안더 씨에게 훔친 책을 사과하러 갔을 때 그 책은 서점의 소유물이 아닌 바스티안에게만 주어진 이야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바스티안이라면 많은 사람들을 환상 세계로 이끌 수 있을 거라는 사실까지도.

 

줄이고 줄인 줄거리지만, 거의 700쪽에 달하는 소설이어서 굉장히 길어졌다. 긴 이야기인 만큼 미하엘 엔데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무수히 많다. 가령, 환상 세계 여행자가 등장해 어린 여왕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어야만 환상 세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현실 세계가 상상력을 거부한 채 정해진 답을 강요했기에 여행자는 나타나질 않았다. 동시에 환상 세계가 파괴의 제물이 되면 될수록 인간 세상으로 퍼지는 거짓의 물결은 점점 커지고 바로 그 때문에 사람이 환상 세계로 올 가능성은 매 순간 점점 희박해졌다(p.232).’ 상상력이 죽은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을 지루하게 여기며 절망에 휩싸인 채 우울하게 살아간다. 미하엘 엔데는 그런 인간들에게 자유로운 상상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환상 세계는 모든 것이 말이 안 되며 모든 것이 타당하다. 상상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내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더 즐거웠을까. 지금의 나이에도 즐거운 독서였지만, 나도 모르게 논리와 합리성을 따지려고 들었다. 상상력에 늦은 나이는 없어도 이미 판단하는 기준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더 늦기 전에 좋은 소설을 접했으니 아직 어린 시절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추천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육적인 상징성에서도 빛을 발한다. 바스티안은 평범한 것보다는 한 계단 아래에 있는 소년이다. 자기 앞가림에 의욕이 없고, 행동에 책임도 없다. 그가 환상 세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교훈을 얻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 있는 몇몇 인물의 상징을 따져볼 수 있다. ‘아트레유책임감’, ‘푸후르행운’, ‘크사이데욕망’, ‘아이우올라 부인시간’, ‘요르무의식으로 볼 수 있다. 바스티안이 책임감과 행운을 만났을 때는 승승장구했으나 함부로 대했을 때는 쇠락했다. 쇠락의 길에는 한없이 커진 욕망이 자리했다. 다친 아트레유와 푸후르를 쫓으면서 욕망과 멀어지자 곧 바스티안은 공허해졌다. 공허한 마음은 변화의 집에서 시간이 치유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바스티안의 소중한 기억은 무의식의 광산에 묻혀 있었다. 그가 조심스레 무의식을 건들자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을 곁들이면 소설은 재미를 잃는다. 학교 다닐 때 많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어디까지나 감상문을 쓰는 입장에서 책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해석일 따름이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 위의 요소 함양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완독한다면 독서에 대한 자신감도 뿜뿜 샘솟을 것이 분명하다. 일단 내 사촌 동생에게 추천해봐야겠다.

 

읽을 책이 넘쳐도 다음 읽을 책은 기약해야 한다. 언젠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도 읽어볼 예정이다. 집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서 중고로 구매했다. 과연 이 책만큼 임팩트가 있을지 궁금하다. 추천은 여기저기서 많이 받기는 했었는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끝없는 이야기의 구성은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하다. 하나를 재밌게 읽었다면 다른 하나도 취향에 맞으리라고 감히 확신한다. 후자는 1000쪽이 넘으니 독서 자신감을 위해서라면 도전해보자.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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