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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평점 :
이과 지식은 문외한인 터라 내 의견을 개진하기 쑥스러워 철저한 감상문으로 대신한다. 이 글은 내 추억을 되짚는 잡설이다.
과학을 언제 포기했던가. 수학보다 늦게 포기했으니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닌가 싶다. 내 기억에 문‧이과로 분반하기 전이어서 한 과목짜리 과학 수업을 들었다. 수능과 연계하여 과학이란 과목은 크게 네 가지로 분할된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나의 인식은 이랬다.
생물 – 호르몬을 외우는 암기 과목
화학 – 주기율표와 화학식을 외우는 암기 과목
지구과학 – 다양한 돌을 외우는 암기 과목
물리 – 물건 미는 힘이 몇 줄인가를 왜 구해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계산 과목 like 수학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어 생물, 화학, 지구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교과서의 목차는 물리가 제일 앞에, 나머지는 뒤에 있었다. 계산에 매우 약한 나는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고, 과감하게 과학을 포기했다.
분반을 정할 시기가 도래했을 때 이과를 살짝 고민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과학을 사랑했고, 워낙 실험 등을 좋아했기에 배우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는 전설적인 물리 교사가 2학년에 존재했다. ‘제물포’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였다. 무슨 뜻이냐면, ‘제(쟤) 때문에 물리 포기’라는 뜻이다. 항상 당구 큐대를 들고 다녔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그걸로 허벅지를 때렸다. 가르치기도 더럽게 못 가르치는 전형적인 꼰대 교사였다. 계산에 약하고 교사는 거지 같으니 나의 포기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약 10년 동안 내 인생에서 과학은 없는 존재였다.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년 전, 다시 독서에 열을 올리면서부터였다. 『떨림과 울림』도 그즈음에 구매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계발이나 인문서에 관심이 더 커서 쉽게 펼쳐 보지 않았다. 2년을 묵힌 지금에야 마음에 여유가 생겨 살살 읽어 보았다.
김상욱 교수는 기초 물리학을 쉽게 풀어썼다.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해 나 같은 과학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알았으면 하는 부분과 몰라도 되는 부분의 경계를 명확히 해주어서 괜히 이해가 가지도 않는 내용을 붙잡고 끙끙거릴 필요가 없었다.
물리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대상은 쿼크가 존재하는 극도로 작은 세상에서 은하와 우주라는 거대한 규모에 걸쳐져 있다. 지금 우리는 단지 몇 개의 법칙으로 이런 모든 규모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자, 물리에 대한 흥미가 생겨나지 않는가? - p.34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을 암기 취급했다.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고 이해가 안 가면 외우라는 식이었다. 학생의 수준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똑똑한 놈들은 알아들을 것이고, 멍청한 놈들은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수업은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관료의 모습이었다. 이런 교사 아래에서 과연 어떤 흥미가 생겨나겠는가.
얼굴 보고 가르친 교사는 흥미를 떨궜지만, TV로만 봤던 저자는 과학 문외한의 흥미를 돋웠다. 단순히 물리란 ‘F=ma’나 ‘거리=속력×시간’ 따위만 계산하는 과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학문의 근간인 셈이었다.
물리학의 지향점은 실로 다양했다. 우주의 탄생, 시공간의 개념, 입자의 최소 단위, 생물 탄생의 근거, DNA 등등 모든 과학 분야는 물리에서 세분화했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물리,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을 분리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양성자, 중성자 등 물질을 이루는 모든 기본입자뿐 아니라,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원자도 전자와 같은 이중성을 갖는다. 이중성은 자연의 본질인 것 같다. 여기서는 질문이 존재를 결정한다. 보어(닐스 보어, 1922년 노벨물리학상)는 이중성의 이런 특성을 ‘상보성’이라고 불렀다. - p.135
이 책은 ‘폴리매스’를 더욱 이해하게 만드는 교량 역할도 했다. 빛이 파동이자 입자이듯이 폴리매스도 한 사람이 다중성을 가지는 것이다. 어느 학문 하나 허투루 취급할 까닭이 없다. 문과생이라고 해서 이과적 계산을 멀리해서는 안 되고, 이과생이라고 해서 문과적 사고력이 없어선 안 된다. 예술 하는 과학자, 과학 하는 예술가가 더 나은 업적을 이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대는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인 사람만이 살아남는 사회로 흘러가고 있다. 정말이지, 나는 ‘문송합니다’를 벗어나 교양으로나마 과학 서적을 꾸준히 읽어야만 한다. 내 꿈이 ‘폴리매스’인 이상 말이다.
응축된 한 점이 터지면서 우주가 시작되었다. 빅뱅이 일어난 것이다. 셀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가 탄생하고 인류가 진화했다. 지구에는 다양한 생물 종이 있고, 그중 인간은 70억 명에 이르렀다. 70억 명 중 나는 과학을 포기한 학생이었다. ‘제물포’는 가르치기를 포기한 교사였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듯이 나의 가능성은 빅뱅 이래 팽창하고 있다. 사회는 문과와 이과를 나눴지만, 자연은 빛에 파동과 입자를 동시에 담았다.
우리는 예외 없이 자연에 속하고, 자연은 우주에 속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이지도 않는 사회가 정한 분반 개념을 내가 평생 따를 필요가 있을까? 인간에게는 빛처럼 문과와 이과의 성질이 모두 담겨 있다. 사회의 강제를 벗어난 지금, 나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을 좀 더 가까이하고 싶다.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은 읽는 내내 과학적 흥미가 일깨워지며 ‘떨리게’ 만들고, 덮고 나서는 여운으로 감정이 ‘울리게’ 만들었다. 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하찮은 글쟁이라 전달하지 못해 아쉽다. 과학이 마냥 어렵게만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