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죽음 1~2 세트 - 전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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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은 지 얼마 안 지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을 읽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공교롭게도 둘 다 죽음을 주제로 삼고 있다. 전자가 죽음이라는 현상을 다룬 다소 무거운 느낌의 에세이라면, 후자는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죽음을 심각하지 않게 풀어낸 소설이다. 원제는 DEPUIS L’AU-DELÀ어떻게 읽는지는 모르겠지만검색을 해보니 대략 저세상으로쯤 되는 것 같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죽은 후에 이러면 어떨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고정관념 내려놓기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신도, 귀신도, 천국, 지옥, 극락, 영혼 등등. 아주 강력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책을 접하니, 처음 읽을 때는 몰입이 잘 안 됐다. 신선하긴 한데 뭔가 내 취향이 아닌 느낌? 찝찝한 마음에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도입부의 글을 다시 만나 밑줄을 긋고 나서야 , 내가 너무 실용서처럼 읽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상상하고, 꿈꾸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멋진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 1권 도입부

 

소설은 일단 상상력의 산물이고,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소설로써 즐길 수 없다. 현실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소설의 허구성을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와 사후 세계관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그 부분을 놓쳤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작가의 도입부 글은 길잃은 나의 집중력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후의 독서는 몰입하여 아주 신나게 읽어내렸다.

 

누가 날 죽였지?

 

누가 날 죽였지?- p.15, 1

 

강렬한 첫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대중에게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가브리엘 웰즈는 새 소설의 시작으로 쓸 첫 문장을 얻었다는 즐거움에 눈을 뜬다. 그러나 즐거움은 여기까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자신의 주치의에게로 향한다. 그 병원에서 만난 뤼시 필리피니라는 영매에게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첫 문장은 죽은 추리소설 작가가 풀어낼 사건으로 변한다. 가브리엘은 뤼시에게 자신의 사인을 파헤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수사 도중 큰일을 겪은 뤼시가 포기를 선언하자, 가브리엘은 하나를 제안한다. 뤼시의 잃어버린 연인을 죽은 자신이 찾아줄 테니 수사를 중단하지 말아달라고. 둘은 모종의 계약 관계로 서로가 맡은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여러 인물을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만나면서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진실에 닿게 되는데…….

 

스포일러는 예의가 아니므로 여기까지가 줄거리로 적당할 듯 싶다.

 

작가의 문학관

 

책이라면 으레 따분한 줄 알았는데 글자와 단어, 문장의 경계를 뛰어넘자 머릿속에 영화 스크린이 펼쳐지더니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평행 세계로 들어간 기분이었죠. 등장인물의 목소리, 바람 소리, 차 소리, 총소리, 천둥소리가 귀에 들렸어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냄새가 맡아졌어요.당신의 이야기에 써진 그대로 느껴졌어요. 문 닫을 시간이라며 교도관이 다가오길래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군요. 그동안 쉬지 않고 책을 읽었던 것예요. 배가 난파되고 나서 널빤지에 매달려 바다에 떠 있는 사람처럼 나는 당신이 창조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부여잡고 있었던 거죠. - p.98, 1by 뤼시 필리피니

 

소설을 보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작가의 가치관을 엿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주장은 작가가 가지고 있거나 반박하거나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작가인 만큼 글쓰기나 독서,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웰즈는 글쓰기를 이렇게 바라본다.

 

그에게 소설은 문인들의 직업어로 <인시피트>라 불리는 첫 문장과, 이것이 닦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지막 문장인 <엑스플리시트>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결정되면 플롯을 작동시키는 시계 장치를 구상하는 일만 남는다. 독자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서서히 자신의 삶을 잊고 주인공의 삶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장치. - p.17, 1

 

누가 되었든 글을 쓴다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첫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둘 명분이므로 중요하고, 마지막 문장은 글에 대한 여운과 완성도를 결정하므로 중요하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소설의 중심축이 되고, 중간 내용은 그 안에서 얽혀든다. , 내용이 산으로 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서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 경험으로는그리 길지 않지만시작과 결말을 미리 떠올려두면 작성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반대로 일단 써보자식으로 쓰면 먼 길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어쨌든 처음과 결말이라는 중심축을 정해두고 쓰는 편이 더 수월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작가의 가치관은 문학성이다.

 

()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문학의 다양성이에요. 그 자체로 나쁜 문학 장르가 있는 게 아니라, 장르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을 뿐이에요.- p.40, 2

 

나는 장르문학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판타지나 추리, 라이트 노벨 등 내가 한때 좋아했던 것들을 멀리하면서부터 생긴 편견이었다. 단순하게 내가 안 본다고, 내가 싫다고 안 좋게 바라본 것이다. 언제나 고전만 옳으며 고전만 읽어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문제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는 점. 이해력 미달의 고전독서로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져 독서의 재미를 내려놓기까지 했었다.

 

「〈이해는 각자의 몫이라는 게 제 철학이에요.- p.299, 2

 

웰즈의 말처럼 좋은 책이 나오려면 일단 다양성이 지켜져야 한다. 쓰는 것은 작가의 몫이요,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도입부에서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면 장르불문 나쁜 책은 아니지 않을까. 아마도 작가는 나처럼 문학으로 편 가르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나의 편협한 문학관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계속 고민하게 되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좋은 문학, 나쁜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면 독서 역시 좋은 독서, 나쁜 독서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작가로서는 문학성의 다양성을, 독자로서는 독서의 다양성을 지키는 게 일단은 정도(正道)인 듯싶다.

 

살아 있는 자의 삶은 소중한 것

 

지난 서평 중 정유정의 진이, 지니에서 나는 일단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누구든 만날 기회가 있고, 무엇이든 할 기회가 있고, 어디든 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나오는 사후 세계관으로 상상한다면 역시 살아 있을 때 행복할 기회가 많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영혼 상태는 물질세계에 존재하지만 관여할 수는 없고, 환생하자니 원했던 삶이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이므로 큰 의미가 생기기 않는다. 특별한 영매를 만나 죽은 후에도 가브리엘처럼 생전의 삶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니…… 죽고 나서 심심하지 않으려면 살아 있을 때 많이 즐겁고 행복해야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독서가 자리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인정했지만 소설은 거의 안 읽었다. 가지고 있던 편견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역시 살아 있음으로 인해 내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만드는 그의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다작가의 소설을 접할 때마다 하는 다짐인 그의 소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를 또 다짐해본다. (내가 살아 있고, 계속 다짐하다 보면 언젠가는 읽겠지.) 동시에 마지막 문장도 되새긴다.

 

나는 왜 태어났지?- p.313, 2

 

P.S 물론 삶도 죽음도 케바케이니 각자의 가치관으로 살고 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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