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집구석 내가 들어가나봐라
글쓰는 청소부 아지매와 모모남매 지음 / 베프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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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살기도 벅차니까 함께 살아보기로 한 가족이 있다.  부모님의 이혼, 은둔형 외톨이, 가난... 혼자라도 살아보려고 온갖 자기계발에 목을 맸지만, 모든 노력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나아갈 힘도 없어지만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혼자만의 노력으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위축되곤 했다.  매일 생활비 때문에 싸우던 부모님, 다른 부모님처럼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던 부모님, 난 그게 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난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님의 특성을 나에게서 지우려고 노력했다.  성공 비법을 소개하는 자기계발을 통해 나를 새롭게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나를 보는 시선 정도는 수정할 수 있어도 자신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다.  /p59

  가족의 시련은 긍정의 죽비소리 같다.  각자의 일상에 덮여 서로를 보지 못할 때, 따끔한 시련으로 서로의 존재를 깨닫게 하니 말이다.  이제는 '이쯤이면 시련이 올 때가 됐는데...'하고 예측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가족 문제를 긍정하기 시작했다.  긍정 말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련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도망가면 시련에게 잡아먹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마치 나의 불안함을 먹이 삼듯이 시련은 끝까지 따라와 더 커져간다....(중략)...그때는 정말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딱 그만큼 성장했다.  물론 시련을 잘 해결했을 때 이야기지만 말이다.  여기서 잘 해결해냈다는 것은 실패를 하더라도 그 일로 인해 내 영혼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시련이 와도 바늘구멍 같은 긍정을 찾으려고 또 노력할 것이다. /p70


  부모님의 이혼으로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글 쓰는 청소부 아지매, 장남으로 성장하면서 자신이 엄마와 동생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던 꿈야신, 은둔형 외톨이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 모모.  이 가족들이 함께 하기 위해 선택한 건 글쓰기였다.   글을 쓰다 보면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진심이 쓰이기도 한다.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고 현실감 있게 쓰셨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6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 20대 동생이 연습장에 쏟아낸 감정들을 읽고 서로의 글에 댓글을 달며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아직도 내가 중년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그런 가정형편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여자로써 중년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곤 한다.  아직도 딸, 아들을 결혼시켜야 되고 앞으로 열 개도 더 넘는 높은 산이 내 앞에 놓여 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 중년의 나이에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p104~105

  나는 단순히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는 착한 아들이 아니다.  엄마가 동기분들과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런 경험이 쌓여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책임감을 덜 느끼며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보는 자유를 느끼고 싶다.  언젠가는 가족에서 독립해야 할 때가 온다.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과 같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내가 함께 공부하면서 성장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p160


  아버지와 이혼 과정이 힘들었던 엄마가 중년이 되고 '엄마'로서의 삶만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모 남매에게 엄마의 연애와 중년의 위기,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아이들과의 삶에 불안 등을 읽으며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준비된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지만,  가정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데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이젠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가족들에게도 '이놈의 집구석'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이 넷이나 되던 집이었으니 바람 잘 날 없었고, 조용해질만하면 또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서 빨리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시기가 나도 있었다.  다들 바쁘다는 핑계로 빠져나가기 바빴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족회의'라는 시간을 만들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날도 있었다.  2~3년? 정도 유지하다가 머리들이 커지면서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어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어서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이해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가족이 살아가는데 끝이라는 게 있을까?  그 시간들을 지나와 부모님은 칠순이 다 되어가시고 동생들과 나는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얼굴 붉히고 싸울 일은 없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든든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깝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오히려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버렸다.  이런 현실은 일상이 되고 스스로를 챙기기도 버거워서 가장 익숙하고 쉽게 대하는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풀기 쉽다.  가족을 위한다는 목적은 어느새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족쇄로 느껴지게 되고 분노의 대상이 된다....(중략)....감정만으로는 소모적이고 일회성일 확률이 높다.  가족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가족은 나와 함께 행복해질 필요가 있는 평등권을 가진 존재이다.  가족의 행복 평등권은 서로를 위해 주지 않으면 효력을 발하지 못한다.  다른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국가적, 시민적, 이웃 같은 평등 의식이다.  가족끼리 서로를 위할 때 가족은 평등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평등해질 필요가 있다....(중략)...가족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족 서로의 평등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관계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나부터 점검해봐야겠다.  /p170~171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가족이 어디 있을까.  엄마도 아버지도 사랑표현이 어색한 분들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스스로 벌어먹고 살면서 책임지는 일들을 경험하며 부모님의 어색한 사랑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 분 다 먹고 사느라 힘들어 사랑표현에 인색했지만 삶으로는 사랑을 표현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나도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보니 집에 들어와 가족과 대화하기 보단 혼자 쉬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는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노래가사처럼 이 세상에 내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태어날 수 있게 밑거름이 되어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턴 표현하지 못했던, 무언의 사랑을 이해할 때가 많아졌다.  서로 밉고 짐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가족은 어찌하지 못하는 정에 이끌리나 보다. /p246~247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우리집은 글렀어.' , '이놈의 집구석 내가 빨리 탈출하고 만다.' 등의 생각을 갖고 있는 해체되어 가는 가족들에게 때론 상처받고 짐으로 느껴질 지언정, 부대끼며 살아가는게 더 행복하다고 일독해보기를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이놈의 집구석 내가 들어가나봐라>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이놈의 집구석'이 가.족.으로 단단하게 뭉쳐가는 과정을 읽으며 책 읽기와 글쓰기로  글쓰는 청소부 아지매와 모모남매 의 가족에게도 '봄날'이 왔구나 웃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부모님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 -생텍쥐페리

/p287~288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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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가 가장 맛있다 - 시시콜콜하지만 매일 즐거운 드로잉 에세이
김세영 지음 / 지콜론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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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올 한 해도 다 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곤 한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무엇을 더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  드로잉에 대한 갈증을 짙게 가지고 있으면서 뭔가를 시도하다가도 채 10번을 넘기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11월이 되었다.  (사실 몇 주전까지 열심히 선 긋기를 하고 있었다. )  생각해보면 돈을 들이지 않고 뭔가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내일 하지 뭐...로 넘어가다 보면 한두 달이 금방이고, 한 해가 그냥 지나가 버리기도 하니까.  사실 일상에서 이러한 상태로 넘어가는 일은 꽤 많은 편이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큰 즐거움과 행운을 가진 날을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weekly happiness를 그린 후부터 나는 작지만 자주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다....(중략)... 예전엔 커피도 잘 못 마셨는데 지금은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의 따뜻한 라테가 어떤 위로를 주는지 안다.  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이 책은 <라떼가 가장 맛있다>라는 제목이다. /프롤로그

저자 김세영의 일상 드로잉은 힘들인 느낌이 들지 않아,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사람의 1년은 이렇게 지나갔구나...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사실 잘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끄적이다 만 페이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실 책에 대한 영상이나 정보보다 드로잉에 대한 영상을 더 많이 찾아보고 있었던지라 김세영 작가의 일상 드로잉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기도 했다.  그녀가 공유하는 행복한 순간들은 오브제 하나만 보더라도 그 의미가 충분히 전해지는 것 같아 따스한 마음이 들었던 책이었다.  사실 많은 글보다 일상에 관련한 드로잉이 가득해서 더 좋았다. 일상 속에 작은 행복들을 기억하고 문득 힘들 땐 노트를 넘겨보며 그 시간들을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행복해지지 않을까?  지금, 여기, 이 시간 충실하게 행복하기를....  남의 그림일기를 엿보는 듯했던 기분이 들어서 문득, 나도 그림일기를 써보고 싶어졌달까?  잘 그리지 못하는 그림이라도 조금씩 그려볼까?  라는 생각에 두근거리고 행복했던 책이었다.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것에도 나는 자주 행복해했다.

월요일에는 길을 걷다가 본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눈인사를 했다.

화요일에는 맛있는 크림 커피를 마셨다.

수요일에는 기타 악보를 새로 뽑았다.

목요일에는 점심으로 먹은 우동이 꽤 맛있었다.

금요일에는 관심 가던 책을 완독했다.

주말에는 전시에서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보았다.

한 주의 행복을 떠올리고 한 페이지에 쓱쓱 한 가지씩 오브제를 그렸다.

우연한 행복의 시작이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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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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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사노 요코등 최고의 작가들이 사랑한 '소확행'정신의 선구자인 모리 마리의 국내 첫 산문집 <홍차와 장미의 나날> 을 읽게 되었다.  당대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슈퍼 엘리트인 아버지 모리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고, 어머니 시게는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마리의 작가 활동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사실 나는 어느 정도는 미치광이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반드시 내가 생각한 대로의 요리를 내가 생각한 대로 해서 먹지 않으면 아무래도 싫다는 것인데, 그 싫은 정도가 좀 병적일 정도로 심하다.  회를 간장에 담그는 정도에 대해서도, 무 간 것이나 여뀌를 뿌리는 정도에 대해서도 까다롭다.  무 간 것은 새빨개져서는 안 된다....(중략)....여기에 쓰인 대로 만들어봤을 때 내가 자랑한 것처럼 근사할지는 보장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주부였던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자고로 요리의 맛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며, 큰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정해버리면 오히려 재미없다. 두세 번 만들어보면 잘 되리라 생각한다. 요리의 맛은 봄이나 여름등 계절의 변화, 그날그날의 날씨 상태, 신선하거나 덥거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먹는 사람의 기분에도 변화가 있으므로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개,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융통성 없이 만들 수 없는 법이다. /p63~069 요리비망록 

일하는 틈틈이 직접 뭔가를 만들어 먹거나, 혼자서 혹은 친한 친구들을 불러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는 왁자지껄 떠들며 먹고, 또 먹으면서 떠드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성(이 말이 붙으면 왠지 콜레라는 티푸스가 연상되지만) 식도락가라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로는 나 역시 훌륭한 식도락가다.  넘치게 훌륭해서 훌륭함이 거스름돈을 내줄 정도다.  젊은 사람이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누가 노인이라 부를 때 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먹는 걸 좋아하기로는 여전히 아이 못지않다.  그런데 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요릿집에서도 내가 만든 요리가 더 맛있다고 느낀다.  단, 내가 가는 요릿집을 변호하자면 그 가게에서는 내 지갑 사정에 걸맞은 가격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버터를 넉넉히 집어넣을 수도 없고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안심이나 등심 같은 식재료를 쓸 수도 없다. /p188  침대 위에서 요리하기

 

  마리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도 없는 독자들을 위해 옮긴이의 서문에서 마리의 일생을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부유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결혼 이후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1903년 태어나 딸 사랑이 유명한 오가이의 딸로 자라면서 열여섯까지 무릎에 앉혔을 정도라고 하니 대단한 딸 사랑이 아닌가? 1921년 다마키와 결혼해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1923년 프랑스에서 귀국하는 동안 2명의 자녀를 낳고 살았지만 1927년 다마키와 이혼을 하면서 편지만 남겨두고 아이들은 두고 나온다.  훗날 "내게 인생이 두 개 있다면 하나는 집에 머물며 아이들과 지내기 위해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일생은 하나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삶을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건 싫다." 라고 고백했다. /p6  모성에 대한 관념이 지금보다 더 강요되었던 시대였을 텐데, 자신의 삶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마리, 훗날 재혼을 하지만 다시 이혼을 하게 되고 아버지 오가이의 저작권 수입도 끊기면서 어쩔 수 없이 직접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이혼으로 멀어졌던 자식들과도 재회하게 되는데 장남 자쿠와는 연인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나는 어지간히 나이를 먹었다.  여태껏 마음이 어른스러워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기보다 언제까지나 나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인 곤란한 인간인 것 같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듯 선종의 법력 높은 스님을 찾아간다 해도 안 될 것 같다. 만사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어리석고 평범한 인간이다.  쓸 수 있는 약은 없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 자신만 생각할 테지.  부모님께 사랑받기만 하고 보답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고작 네 살짜리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p229~230 파파에 대하여


결혼하기 전까지 음식이라곤 만들어보지 않았고, 결혼해서도 주방에 마리가 발을 디딜 틈은 없었지만 부유한 어린 시절을 지내오면서 음식에 대한 미각은 열렸던 것 같다.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와 추억, 그리고 이후 혼자 살게 되면서도 음식을 탐닉하고 즐기는 마리의 생을 지탱하게 해주고 반짝이게 해주는 건 아니었을까?  마리의 인생 전반을 본다면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집가기 전까지의 생할까지가 인생의 피크였을 것이다.  이후에 두 번의 이혼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마리의 글을 읽을 수 있었을까?  마리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 읽었다면, 요리들을 알고 읽었더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았지만.... 철이 없어 보일지언정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았던 마리의 글은 자신의 행복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듯했다. 



 보티첼리의 장미 찻잔은 연홍색 꽃잎에 푸른빛이 감도는 연두색 잎사귀가 달린 장미가 흩뿌려진 홍차 찻잔인데, 그 꽃이 옛날 이탈리아 미술관에서 본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하늘과 바다 위로 흩날리는 장미를 빼닮은 데다 잎사귀 색 역시 그 그림의 하늘이나 바다색처럼 푸르스름해서 그렇게 이름 붙인 찻잔이다.  침대 곁에 그 찻잔과 두꺼운 유리로 된 밀크 용기, 네슬레의 무당연유 캔, 은(진짜 은이다)으로 된 숟가락이 놓여 있는데, 소설을 쓰는 것이나 써지지 않는다는 괴로움에 지치면 물을 끓여서 립턴 티백으로 홍차를 만든다.  프리먼 크로포츠 같은 영국인의 추리소설을 읽다가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 또 마시고 싶어져서 물을 끓인다.  차를 마시는 내 눈에 침대 헤드보드 위 빈 베르무트 병에 꽂아둔 빨간 장미, 파르스름한 코카콜라병, 짙은 파랑색 병에 꽂아둔 진홍색 장미와 하얀 꽃, 연홍색 꽃 등이 비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 <술과 장미의 나날>이 아니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인 셈이다.  /p266~267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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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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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기다리게 되는 작가의 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누구와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수많은 날들을 책에 기대어 지나와 보기도 했기에 그녀가 혼자 그은 밑줄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작가로서 그녀가 읽고, 지내온 시간들을 담은 글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책을 읽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어 죽겠는데, 쉬고 싶은데, 자꾸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웠습니다.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충고만 하는 사람도 원망스러웠어요. 그때의 저에게는 충고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막막하고 답답한 시간이었어요.
그때 제 손을 잡아준 건 책이었습니다. 좋아했던 사람이 제 곁을 떠났고,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지만, 책만은 외로운 저의 곁에 끝까지 남아줬어요. 지친 날, 침대로 기어가 스탠드를 켜면 머리맡의 책이 제게 속삭였습니다.
‘자. 이제 혼자 책 읽을 시간이야.’/p6

이사하면서 책장의 책들을 꽤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8칸 책장과 장식장, 방 한켠에 들여놓은 책장까지 책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출간되는 책들, 관심 가는 책들을 읽기에도 바빠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그 당시의 마음뿐이었는데 최근 2,3년 전부터 읽었던 책을 소장할 책과 가지고 있지 않을 책으로 분류하고 소장하고 있는 책들 중에서 재독을 하는 책들도 한 두 권씩 늘고 있기도 하다.  읽다보면  놀랍게도 그 당시의 마음과 다시 읽는 감상은 크게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하다.  아마도 책을 읽는 시기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시작 글에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를 보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그녀의 글을 좋아하기로 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휘청여서 어찌하지 못했던 시기, 우연히 읽게 된 이 시는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 되어준 글이기도 했다.  휘청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현실을 바로 보고 그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던 건 , 지나온 시간들을 함께 해준 책 들이었다.



우리에게는 마음을 뜻하는 말이 몇 개나 될까요?
마음속 풍경을 비출 수 있는 유리 같은 말을, 당신은 몇 개나 가지고 있나요? 시인은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다면 유리 같은 건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말해요.
보여주면서 동시에 가리는 것. 그것이 유리의 성질입니다. 특유의 성질 때문에 유리로 된 용기는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사용되죠. 약병, 화장품 용기, 물병과 술병들.... 어쩌면 유리는 삶의 아이러니를 재밌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말하고 싶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 가까이하고 싶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p18~19


아직 오래된 고전들을 깊이 있게 읽지 못하고, 문장이 잘 읽어지지 않는 책들은 읽다 덮어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에세이를 읽고 애정작가도 생기고 애정하는 책들도 늘어나고 있는건,  아마도 내 삶의 빈 공간들을 다른 이들의 일상을 읽으며 조금씩 채워보고자 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책 속에서 밑줄 그으며 건져올린 문장들을 읽으며 책 속의 책들을 건지기도 했다.  책과 영화, 일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읽으며 책과 영화의 리스트들도 차곡차곡 담아보기도 했다.  책표지의 여유로움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와닿기 시작해 글을 읽지 않고 책 속의 일러스트들부터 넘겨봐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이내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한동안 눈에 잘띄는 곳에 두고 간간히 꺼내 읽게 될 책으로 살포시 꽂아둔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온갖 군데서 돈을 최대한 짜내고 분초를 다투면서까지 시간을 빈틈없이 쓰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멈추는 것'인지도 몰라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절박한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이니까요.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  이건 옳은 질문이 아니었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것이 옳은 질문이었습니다.

그건 바로 나와 지금 이 순간이 냅고 있는 관계에 대한 질문이었어요.  과거의 나와 끊임없이 경쟁하는 현재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내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상신호를 감지하고 멈출 줄 아는 것.

좋은 신호를 얻기 위해 2분을 기다릴 줄 아는 것.

어쩌면 그 2분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p200~201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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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독신 아니에요, 지금은 강아지랑 살고 있어요 - 견생전반전 하나와 인생후반전 도도 씨의 괜찮은 일상
도도 시즈코 지음, 김수현 옮김 / 빌리버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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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사는 독신들이 꽤 늘고 있는 요즘이다.  꽤 오래전, 우리 집에도 반려견들이 계속 있어왔다.  마당이 있던 집에 살던 시절엔 집 안이 아닌 마당에 개를 키웠었고,  마당이 없는 집에 살면서 집 안에서 푸들을 키웠는데, 실내에서 키우던 푸들이 계단 오르내리는 걸 배우더니 잠깐 문을 열어놓은 사이 집을 나가 두 달이 넘게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그때 마음의 상처가 커서 다시는 개는 키우지 않겠다고 했는데....



냉장고를 식재료로 꽉 채워 넣지 않는 삶은 묘하게 숨 쉴 틈을 주었다.  답답함이 없었다....(중략).... '자신의 일은 가능한 한 스스로 한다'를 모토로 하고 있지만, 타인에게 맡겨 좋은 일은 타인에게 해달라고 해도 괜찮다는 마음의 변화.  그 끝에 자리한 건 어쩌면 '요양원'에서의 생활일까.  이런 식으로 사람은 원래 자기 위치를 조금씩 바꾸면서, 깨닫고 나면 '노년의 삶'이라는 것에 미끄러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023~024 

"하나 짱, 살아간다는 건 원치 않는 것도 견디는 일이야." /p035


최근 매장 주차장 한켠에 ‘똘순이’라는 10개월 된 믹스 대형견을 반려견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조카가 우리도 강아지를 키우자고 간절히 바라왔는데, 아마도 똘순이는 우리 가족이 되려고 했었나 보다.  오자마자 낯가림도 없이 가족들을 다 잘 따르는데, 신기하게도 낯선 사람을 보곤 제법 짖기도 한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놀아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아는지 참 즐기는 것 같은 표정이기도 한 귀여운 우리 가족! 똘순양. 



내가 읽고 즐긴 에세이나 평전, 소설에 대해 쓰는 것이 작가들에게 민폐가 되거나 유쾌하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나이가 되면 책을 읽고 재미있었다고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전혀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세상의 수많은 예순한 살은 이제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것인가.  읽는다 해도 전문적인 문헌이나 읽는 것인가.  책을 읽고도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건 정말이지 괴롭고, 그래서 결국 이 지면을 빌려서 평상시의 근심을 떨쳐버리고 말았다.  서평에는 걸맞지 않은 서툰 코멘트도 있는 게 정말 죄송하지만.  /p049~050 

"그래도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  이 나이가 돼서, 내 인생이 이런 것이었나,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인가 하고." /p081


똘순이가 우리에게 오고 한 달이 조금 넘었을 즈음 소설가 이자 에세이스트인 도도 시즈코의 <저 독신 아니에요, 지금은 강아지랑 살고 있어요>는 예순한 살에 새 가족이 된 하나와 일상과 이전에 함께 했던 반려견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남편도 자녀도 없이 오롯하게 강아지와 살아가는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주인과 다른게 하나는 산책을 심각하게도 싫어하는 강아지.  그 강아지와 산책을 하기 위해 많은 준비물을 챙기고, 안고 산책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하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은 그녀에게 이제 한살이 좀 넘은 하나는 그녀의 삶에 마지막 반려견일지도 모른다.  하나가 싫어하는 건 억지로 시키려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하나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녀는 가끔 생각하곤 한다.  자신이 하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잘 보내주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시즈코씨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의 일상과 하나의 모습, 그리고 서점을 거닐며 책을 고르는 그녀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다.  그녀의 필력이 꽤 내 취향?


칠순이 다 되어가시는 부모님은 아직도 일을 하신다.  자신들의 노후를 아직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는데, 도도 시즈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너무 연세가 들어 저물어가는 분위기의 글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조금 더 활기 차도 좋을 것 같은데... 한편 강아지와 둘이 살아가는 삶이 뭐 그리 활기찰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년쯤 후의 나?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시즈코씨의 일상을 보며 강아지가 없었다면 그녀의 인생은 삭막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이야기 한다.  "누군가는 예순한 살의 나이에 강아지 한 마리와 사는 나를 안쓰럽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와 함께 산책을 하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확실한 행복의 순간이 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나만의 행복한 순간을 지나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시즈코씨와 반려견 도도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글은, "나에게 있어 행복한 순간은?" 을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기도 했다.    충실하고 완전하다는 기분을 시즈코씨의 나이 즈음이면 나도 알 수 있을까?



20대나 30대에는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이런 대화가 싫었다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이웃 사람들과 길에 서서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예순한 살의 내가, 나는 좋다.  드디어 온전해졌다.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완전하게 생활하고 있다, 라는 기분이 든다.  /p115


60대가 되어보니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그저 자연스럽게 눈앞의 오늘 일에만 머리가 움직이게 된 것이다. 

포기라고 하는 귀찮은 파도타기를 하지 않아도 벌써 포기하고 있는, 힘이 빠져 있는 내가 있었다.

그런 것이었나.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었구나.

나이를 먹는 것은 이런 것이었나.

그때부터 나의 기분은 밝아졌다.

하나라고 이름 붙인 개의 체중 3.4킬로그램이, 지금의 내 행복의 총량이다. /에필로그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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