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기가 좋은 이유 -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ㅣ B의 순간
김선아 지음 / 미호 / 2019년 4월
평점 :

좋은 곳은
몇 번을 가도 좋다.
어떤 공간에는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
국내에도 멋진 공간, 가보고 싶은 공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버려진 건물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이 멋진 카페로 변신하기도 하고, 이동 수단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콘테이너를 공터에 구성해서 쇼핑몰을 구성하기도 한다. 뜯어내고 새로 만드는 게 인테리어라고 생각했는데,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의 골조를 살려 공간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sns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멋지고 훌륭한 공간들을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러한 공간을, 장소를, 건축물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출판사 마호의 취향 에세이 시리즈 B순간(취향은 발견하는 것이다) 라인으로 출간된 『여기가 좋은 이유』는 사진 찍는 건축가 김선아가 그동안 다니며 공강과 건축물을 보고 느끼고 쓴 공간 독후감이다. 공간과 건축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알려주고 싶은 다정한 마음이 보이는 글을 읽으며 가보았던 공간을, 가고 싶었던 공간을, 새로운 공간을 사진과 글로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건축가인 저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공간은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보고 느낄 수 있었고 다음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 부분은 꼭 자세히 보아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명이 없는 그저 공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찾으며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공간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그러한 공간을 이야기하는 다정한 시선들도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좋아 보이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김선아 건축가가 찾아낸 취향의 공간에 대한 에세이들... 이보다 다정한 글이 있을까? 햇살 좋은 5월, 문득 어느 곳이라도 잠시 앉아있다 오고 싶어지는 글이었다.
#여기가좋은이유 #김선아 #미호
#에세이
025p.
천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붙어야 한다. 조명뿐 아니라 에어컨, 스프링클러와 화재감지기, 환풍기, 때로 필요하다면 CCTV까지도 천장에 붙는다. 여러 기능을 가진 설비들이 지나다니는 천장 속은 상상이상으로 복잡하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아무 것도 붙지 않은 깨끗한 면의 천장을 꿈꾸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중략)... 어니언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그래서 천장이다. 어니언으로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건 사실 천장이었다. 흰색면이 가로지른 천장에 입을 떡 벌렸다. 밤에는 불이 들어왔고,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이 재료의 이름은 바리솔, 조명의 일종이다. 흰 바리솔로 천장을 모두 뒤덮고 나니 공간은 더욱 강력해졌다. 사진이 마이너스의 예술이듯 건축도 무언가를 덜어낼 때 더욱 뚜렷해진다.
026~027p.
말하자면, 건축과 가구는 형제 같은 사이가 아닐까. 건축이 큰 형이라면, 가구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동생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구분되지만 결국 한 공간에 놓이는 가족과도 같은 사이. 사람의 움직임과 크기에 기반하여 형태와 쓰임새가 정해진다는 점에서 핏줄은 하나지만 다른 성격을 가진다. 건축은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가구는 이동성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073p.
건축물 하나가 치밀한 기획을 거쳐 세밀하게 조율되어 완성되는 과정을 무엇과 비유할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발표 PPT자료를 만드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력과 시간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잠깐 한눈을 팔고 딴생각을 하면 자꾸 사족이 달리고, 말하는 방향이 달라지고,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가 PPT안에 들어가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서 만들어야 한다. 건축 또한 같다.
101p.
리모델링(remodeling)이라는 것이 그렇다.
리사이클링(recycling)이라고도 부르고,
리제너레이션(regeneration)이라고도 한다. 건물을 다시 바꿔 쓰겠다는 것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원판 불변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원래의 공간이 어느 정도 흥미롭지 않다면, 오래된 건물로 리모델링을 시도한다 해도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에르처럼 리모델링을 기가 막히게 하고 싶다면, 시 하나를 추천해줄 수 있겠다. 오래 보는 것이 정답이다. 공간이 눈 감아도 훤히 보이도록 익숙한 사람만이 가장 훌륭하게 다시 쓸 수 있을 테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꿔 버리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계절이 지나가면 가지치기를 하듯 공간의 요소를 더하거나 빼면서 바꾼다면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85p.
건축은 어찌 보면 언제나 경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너와 내 땅을 나누고, 분리하고, 구분한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내 땅 안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나눠서 사용한다. 어딘가는 거실로, 주방으로, 서재로. 도면은 결국 경계를 만드는 벽들의 설명서와 다름없다. 어떻게 나누고, 서로의 영역을 어떤 식으로 구분하고 막아 내는지에 대한 지침서.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