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출간전, 도서 제목을 맞추는 이벤트에 당당하게 오답을 제출했다. 아니!! 어떻게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맞고 죽을 수가 있냐고... 그럼 당당하게 이런 제목을 쓸 수 있었을까?

부조리한 상황, 부조리한 트릭과 복선

하지만 이상하게 납득 가는 이야기!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시작부터 심리 미스터리 소설인가? 갸웃하게 된다. ‘ABC 살인사건’을 읽고 사람의 심리를 날것 그대로 본듯한 섬뜩함에 책 읽기를 잠시 멈추기도 했다. 주문같이 등장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죽이고 싶다.’는 문장은 어쩌면 타인의 행동에 가려져 자신의 호기심과 무차별적인 폭력이 용인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심지어 글을 읽는 나조차도 자살이 아닌 타살을 하는 상상을 해보았던가?라는 생각으로 나를 검토해보게 되기도 한다. 이후 이어지는 ‘사내 편애’는 조직 운영에 사람의 감정과 학연, 지연을 배제한 기계가 도입되면서 공정하다도 생각되었던 시스템에 의혹을 갖게 되는 단편이었는데 감정을 갖는 기계.. 영화로도 꽤 만들어져서 어느새 빠져들게 된다. 제목도 독특하지만 이건 말이 되나? 싶은 상황도 이상하게 납득이 된다.

스릴러라 하기엔 SF 적인 요소도 있고, 조금 고전적인 느낌도 들지만 글을 읽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트릭 속에 빠져들게 되고 함께 추리를 하다 보면 어!! 하고 뒷목을 잡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그러했는데... 두부에 너무 빠져 있어서 책표지 영상을 찍으며.... 두부 한 모를 희생시키려다 엄마한테 걸려서 내가 희생될 뻔... (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면 혼나요.) 스릴러가 반갑고 신나는 계절이 돌아왔다.

34p.

D 동네에서 이니셜 D인 사람이 연달아 살해된다.

지금이라면 D 동네의 D라는 인물만은 살인이 허가되기라도 한 듯, 면죄부라도 얻은 듯 편승범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모두 지금이라면 연쇄 묻지 마 살인에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혈안이 되어서 D 동네를 찾아다니며 필사적으로 D를 골라서 죽이고 있다. 그런 인간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 번쯤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녀석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

‘사람을 죽이고 싶다. 누구든 상관없다.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죽이고 싶다.’⠀⠀⠀⠀⠀⠀⠀⠀⠀⠀⠀⠀⠀⠀⠀

불특정 다수가 품은 저주와도 비슷한 어두운 상념이 도시의 밤, 깊숙한 어둠 속에서 분출되는 듯하다. ... 중략....

그건 그렇고 앞으로 D가 몇 명이나 더 살해될까. 편승범은 계속 나올 테고.....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불현듯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 참, 나도 도가야(D)의 단다(D)다...../#ABC살인

48~49p.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호소도 있었지만 상대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다는 이유로 그런 의견은 이내 흐지부지되었다. 기계에게 사생활을 보인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인간이 보는 것도 아닌데. 마더컴이 눈과 귀로 모은 정보는 당연히 인사에 반영되었으나 합리성을 우선시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알력으로 인한 무의미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 파벌 항쟁은 의미를 잃었고, 납득할 수 없는 연줄 인사도 사라졌으며, 얄팍한 정신론을 바탕으로 한 부조리한 상사의 질타도 없어졌다. /사내편애

76p.

파랗고 작은 램프가 가만히 이쪽을 향하고 있다.

“지원 번호 586번, 일어나세요.”

마더컴은 차분한 남성 합성음으로 말했다. 586은 내 번호다.

“네.”

나는 힘차게 일어났다.

“너, 불합격.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사내편애

190p.

박사는 시신 주변을 둘러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 시신 주변에 흩어진 것에 절로 눈길이 간다. 두부다. 두부가 사방으로 쏟아져 있다.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진 두부 파편. 그것은 시신의 머리 주변을 중심으로 쏟아져 있었다. 딱 두부 한 모 정도의 양이려나. 이 실험실에는 사람을 때릴 만한 모난 물건이 하나도 없다. 그 와중에 두부가 들어 있던 작은 알루미늄 냄비가 시체의 발밑에 뒹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시체는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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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민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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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리미 도미히코가 소설가로 데뷔한 2003년 이후, 14년에 걸쳐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글과 개인적인 일기와 에세이, 자신의 작품과 영화 이야기 저자가 쓴 ‘거의 모든 글’을 한 권에 수록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에세이 전집’ <사람이 귀엽게 보이는 높이>의 분량은 꽤 묵직한 편이다.

저자의 글을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출간되었던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이 이 작가의 작품! 읽으면서도 꽤 유쾌하고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싶었는데 소설을 잘 쓰는 작가의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까? 게다 자신의 책을 자기 전에 읽어야 할 책으로 소개한다. 본인이! 그만큼 다양한 장르를 이야기하고 있어 목차를 보고 읽어보고 싶은 페이지를 읽다 잠이 들어도 된다는 거겠지?

제1장 도미히코 씨, 독서하다

제2장 도미히코 씨, 좋아하는 것을 말하다

제3장 도미히코 씨, 자신의 작품을 논하다

제4장 도미히코 씨, 빈둥거리다

제5장 도미히코 씨, 일상을 그리다

제6장 특별기고

제7장 공전하는 소설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렇게나 두꺼운 걸까? 수줍은듯하면서도 유쾌하고, 능청스럽다가도 소설가라는 날카로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조금 더 읽어보고 읽었다면 공감하기도 했겠지만, 한편 자신의 작품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도미히코 씨를 보며 이 작가 패기! 하고 작품이 궁금해지는 글이기도 했다. 글 한 편 한 편이 길지 않은 편이라 짬짬이 조금씩 읽기에 적당한 책이었는데, 읽다가 베고 잠들기에도 좋았던 책이기도 했다. (정말 읽다 잠들기 좋은 책! ) 직접 체험을 2주 정도 했더니... 어느새 완독을,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책이었다. ‘이 책 어때요?’ 도미히코 씨가 글을 ‘맛’에 비유한 것처럼 표현하자면 ‘다양한 뷔페를 맛보았다.’는 기분? 때론 절대 취향이기도 했고, 이건.... 싶은 글도 있었으니까...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짧은 호흡의 다양한 주제의 글을 담고 있어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었다.

13~14p.

고서 축제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꼽자면,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색 바랜 책들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데다 한 권 한 권 모두 몹시 유서 깊어 보인다. 눈을 감고 마음이 가는 대로 책을 골라잡았다 치자. 그것이 무엇이든 첫 페이지를 열어 읽기 시작한 순간, 내 인생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명저처럼 보인다. 이 책을 사두면 뭔가 나답지 않은 불굴의 명작을 쓸 계기가 될지도 모르리라. 불굴의 명작을 쓰기엔 어울리지 않는 소심한 영혼을 폭로하면서 불필요한 초조함만 점점 쌓아가는 것이다.

아아, 이 책도 저 책도 모두 사야 하지 않을까?

아아, 하지만 이 책도 저 책도 모두 꼭 사야 할까?

117p.

나는 글을 쓸 때 구체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써 내려간다. 구성을 더 가다듬으려고 해도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아이디어나 현란한 이미지, 기발하고 참신한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무지하게 평범한 사람이다. 소설의 출발점이 되는 메모들도 평범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재미난 것은 대부분 글을 쓰는 도중에 나온다.

126p.

물론 전권을 다 사지 않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어쩌다 보니 5권만 사게 되었다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무라지는 않겠다. 만화를 1권도 아니고 5권부터 사다니, 이 얼마나 간이 큰 사람이란 말인가! 또 얼마나 너그러운 사람인가! 우리가 꼭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일본 전 국민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만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다섯 권 전부를 모으는 즐거움을 모른 채 생을 마무리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149p.

생각해보면 ‘여행’은 비일상으로 떠나는 일이다. 그리고 ‘밤’은 일상과 비일상이 혼탁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에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자칫 비일상 속에 기묘한 모습으로 일상이 나타나지는 않을지?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 평소에는 감추고 있었던 또 다른 자신이 현실 속에 자신을 앞질러간다면?

이런 상상이 소설 <야행>의 밑바탕이 되었다.

301p.

글의 맛 또한 맛보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하루 종일 무미건조한 서류만 본 날에는 정열적인 연애소설이 맛있게 느껴질 테다. 또 연애소설의 뜨거운 정열이 이내 지겨워진다면, 이번에는 깔끔한 과학 에세이가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맛있게 느끼는 조합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탓이다.

그러니 좋고 나쁨을 떠나 글은 맛있게 읽지 않으면 손해다.

319p.

혹시라도 ‘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의하면 좋을 것이다.

1. 매일 쓸 것

2. 행사가 있는 날은 힘을 빼고 쓸 것

3. 특별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날일수록 제대로 쓸 것

4. 너무 많이 쓰지 말 것

5.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말 것

362p.

소설을 읽을 때도 ‘많이 읽자’혹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배우자’등 쓸데없는 것을 염두에 두면 아무리 재미난 소설도 금세 따분한 소설이 되고 만다. 소설을 읽다가 잘못 해석했거나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다시 읽으면 될 일이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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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내일 1~2 세트 - 전2권
라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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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의 말,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힘든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겨우 저것 가지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별것 아닌 일이어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살짝 스친 정도의 통증일지라도 내게는 큰 칼에 벤 듯한 통증으로 느껴질 수도 있듯이, 아픔의 무게는 주관적이니까요. 그 아픔의 크기를 또 다른 누군가가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기 웹툰 <내일>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죽은 사람의 혼을 데려가는 저승사자, 그런데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살리는 저승사자들이 있다?! 620세 구련, 196세 륭구, 그리고 임시 계약직으로 합류하게 된 27세 준웅은 위기 관리팀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

내일1권 ‘낙화’는 학생들의 왕따 문제를 다룬다. 함께 놀던 무리에서 이유도 모른 채 그들의 무리 밖으로 밀려나게 된 은비는 혜원의 괴롭힘으로 인해 반 전체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의 괴롭힘, 학교 밖에선 문자로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선생님에게도 도움을 청해봤지만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란 이야기만 듣는다. 구련의 활약 덕분에 자살은 막았지만 은비처럼 이유도 모르는 채, 이유 없이 당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문제는 더 이상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잊힐만하면 뉴스에서도 꽤 크게 다뤄지는 ‘왕따’문제는 ‘내 자식만 아니면 괜찮아’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되었다.

내일1권 230p.

죽으면 다 끝날 것 같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네가 죽는다 해도 고통은 끝나지 않아.

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넌 죽어서도 네가 느꼈던 괴로움에 직면하게 될 거야.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잖아.

괴롭힘 속에서도 잘 버텨왔던 너 자신을 스스로 포기하지 마.

내일 2권 준웅의 합류로 염라의 호출을 받고 ‘저승 탐방’을 가게 되고 ‘위기 관리팀’의 탄생 과정과 구련이 몸담았던 인도 관리팀 팀장 최중길과의 갈등도 살짝 보여주고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숲’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남궁재수의 이야기로 대입에 실패한 이후 좌절하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냥 한심해 보이는 것 외엔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라고 생각했는데, 고교시절까지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다 대입에 실패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생에 실패한 사람처럼 자꾸만 주저앉아버리는 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를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힘들다, 죽겠다 싶어 나 혼자만 끝나면 되는 인생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듯했다.

내일2권 189p.

이 생활이 끝나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나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나 혼자만...

끝나지 않는 시간의 숲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내일2권 194~195p.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다는 건, 네가 그렇게 한심한 인간은 아니라는 증거야.

자기합리화도 심하고...

사람은 기복이란 게 있을 수밖에 없어.

늘 한결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기계가 아니니까.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이상 자기 합리화는 어쩔 수 없는 거야.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며, 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절대 한 심한 사람이 아니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본 실패 때문에 지금 잠시 힘든 상태일 뿐이야.

내일2권 228~229p.

사람마다 걷는 속도는 다 다르잖아.

아빠도 아주 오랜 산 건 아니지만... 아빠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놈은...

잠깐 멈출 때도 있고, 달릴 때도 있고,

천천히 걸을 때도 있는 것.

남들보다 앞서가 보기도, 뒤처져 보기도 하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거든.

그러니, 고작 시험 하나 때문에

네 인생이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지 마.

남들하고 널 비교할 필요 없어.

치칠 땐 잠깐 쉬어도 되고, 천천히 걸어도 돼.

힘들면 아빠가 손잡고 함께 걸어줄 테니까,

걷는 걸 포기하지만 마.

죽으려는 자를 살리려는 저승사자들의 이야기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드라마화도 된다니 어떻게 만들어 질지도 궁금해지고, '내일'이 두려운 이들을 위로하는 저승사자들. 죽음을 주제로 한 조금은 무겁게 느껴질수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웃음코드도 놓치지 않고 있어 읽다가 빵빵 터지기도 했다.

핫 한 저승사자들의 쿨한 위로. 앞으로 출간될 시리즈들도 기다려지게 된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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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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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끼는 구두를 신고 길을 떠나고 언니, 오빠가 떠나고 함께 있어주었던 조디 오빠마저 떠나갔다. 아빠와 자신만 남겨두고....

가족에게 무심했던 아빠의 관심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아빠마저 떠났을 때,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끌려 학교를 가보았지만 단 하루를 버티고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늪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가족 이외에 마음을 연 첫 상대,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해 준 테이트. 늪과 생태계에 대한 관심사가 같아 미래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테이트는 가까이 있을 때 보지 못했던 카야의 모습을 보고 홀로, 그녀에게 안녕을 고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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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 이별을 겪으며 소녀에서 여인이 된 카야. 다시 혼자가 된 그녀가 마음이 아닌 이성의 호기심으로 만나기 시작한 체이스는 그녀에게 늪지 밖의 삶과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거짓임을 알게 되고 다시 혼자가 된 카야.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테이트는 카야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테이트를 사랑했던 만큼 미움도 컸던 카야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떠나지 않겠다고 했잖아.’ 카야의 성장과정과 러브스토리의 과정을 지나 이야기는 살인 법정 미스터리 소설로 접어든다. 망루에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 체이스. 어떤 흔적도 없지만 살인자로 지목된 이는 카야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확실하다. 법정 공방도 흥미진진해서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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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면서 러브스토리이고 살해 미스터리 법정소설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특별한 기교는 없지만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었던 글이었다. 카야에게 삶이란 기다림, 외로움, 체념이었다. 테이트에게 배웠던 글이 없었더라면, 늪지와 갈매기들이 없었더라면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빠가 떠나고 혼자 남아 살아가야 했을 때, 점핑이 그녀의 홍합을 구입해주지 않았더라면, 메이블이 아이에서 소녀로 여자로 성장하는 동안 살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 잔잔하지만 뛰어난 몰입도에 멈출 수 없는 글이기도 했다.

60p.

“나를 어떻게 알아?” 카야는 재빨리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 조디하고 가끔 낚시한 적 있어. 너도 두세 번 봤어. 작은 꼬마였는데. 너 카야지. 응?”

그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다니. 카야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에 닻을 내린 느낌, 무언가로부터 풀려난 느낌.

101p.

소년에게서 강렬한 이끌림과 강렬한 밀어냄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람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갔다.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소년을 볼 때마다 그랬다. 왜가리들 바라보듯 보기만 했다.

138~139p.

“점핑 아저씨가 그러는데 사회복지사들이 나를 찾고 있대. 송어처럼 끌려가서 어디 위탁되거나 그럴까 봐 무서워.”

“그래.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리고 가서 키워야 되는 사람들 참 안 됐다.”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142p.

“첫 문장 읽었을 때 기억나? 몇 단어가 너무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고 했잖아.”

“응. 기억나, 왜?”

“어, 특히 시가 그래. 시의 단어들은 단순한 말이 아니거든. 감정을 휘저어놓지. 심지어 웃음이 터지게 하기도 해.”

189p.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 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외로움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카야는 그 다음날에도 그 바닷가로 돌아가 체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247p.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264p.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340p.

수컷이 생식기로 암컷의 알을 수정시키려 이리저리 찌르는 사이 암컷은 길고 우아한 목을 돌려 수컷의 머리를 물어뜯어 버렸다. 쑤시고 박느라 바빠서 수컷은 눈치채지 못했다. 수컷이 제 볼일을 보는 사이 머리가 뜯겨지고 목만 남은 자리가 흔들렸고, 암컷은 수컷의 흉부를 갉아먹더니 날개까지 씹어먹어 버렸다. 마침내 수컷의 마지막 앞다리가 암컷의 입안에서 툭 튀어나왔을 때도 머리 없고 심장 없는 하체는 완벽하게 리듬에 맞춰 교미했다.

암컷 반딧불은 허위 신호를 보내 낯선 수컷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를 잡아먹는다. 암컷 곤충들은 연인을 다루는 법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354p.

사람들은 그녀 혼자 자기 몸을 방어하며 살라고 저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여기 있게 된 거다.

434p.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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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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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클라우드 그 10번째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었다. 아직 읽지 못했던 <설국>을 허연 시인의 여행과 해설로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일본 근현대 소설을 읽어가던 허연 시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느끼게 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013~014p.

1968년 노벨상 시상식 장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였다. 장신의 백인들 틈에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서 있던 백발의 노인. 그는 무림의 고수 같았다. 사진 속 그에게는 주변 백인들을 모두 장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우라가 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그는 <설국>이라는 그의 작품과 책에는 지명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에치고유자와, 그가 살아왔던 삶을 좇는 여행을 시작한다.

생에 대한 기억은 이미지로 남는다.

035p.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설국>7쪽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흡사 자기가 터널을 지나 설국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기차에 타고 있는 듯한 착각. 이것이 소설의 시작 부분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색하고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며 ‘이미지를 감상하듯 읽어야 하는 소설’ 인지 알 것 만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들을 열거해놓고 보면 그를 움직인 가장 큰 동인은 콤플렉스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귀족, 죽음, 고아, 왜소함, 패배한 일본 콤플렉스.... 이러한 콤플렉스들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이라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작품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 그의 문학은 유쾌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은 다가오는 겨울 읽어보고 다시 리뷰를..) <설국>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책을 읽기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가까이할 수 없는 먼 작가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허연 시인이 이야기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그리고 그의 인생을 깊고도 다정한 문장과 사진으로 읽어가다 보면 호감을 갖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작가와 작품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살을 빼고 수영을 시작해야지.. 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뛰어들어 체험하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0인을 기획으로 시작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난 이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데, 관심은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되는 인물인데.. 등등의 이유로 멀리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이전 시리즈 도서인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인적으론 어렵게 느껴지는 인물이었는데 생각보다 한층 가깝게 느껴졌고 #클래식클라우드010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책장을 덮으며 ‘이 시리즈들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권 한 권, 잘 읽고 조카들, 동생과 부모님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보고 싶은 시리즈가 되었다.

062p.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리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082~084p.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읽으면서 소설 전체의 인과관계를 찾거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나열된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 어떤 ‘종합’에 이르게 된다.

138p.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자는 잔치가 끝난 다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안다.

211p.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소설은 하나의 이미지다. 양적 결과물이 아닌 질적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의 수려한 문장에서 ‘허무’를 만난다. 그것이 승자도 패자도, 옳고 그른 것도 없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미학이다.

278~280p.

줄거리 진행을 기준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이게 뭐지’ 하는 의문에 빠지기 쉽다. 그의 소설에는 환희와 분노도, 선과 악도, 적과 동지도 없다. 이런 것들을 일부러 거세한 듯 그의 소설은 무한을 향해 갈 뿐이다. 그의 소설에는 궁극이 있다. 궁극의 욕망, 궁극의 삶, 궁극의 관계, 궁극을 찾아간 그의 귀착지는 허무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간의 인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중략)...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은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경전 같다. 그의 문학에는 숨겨놓은 장치가 너무나 많다. 드러난 언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숨은 언어가 너무나 많다. 안타까운 건 그의 이 ‘숨은 언어’들을 번역을 통해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명하면서 목적지에 가닿지 않았다. 그는 생략하면서 목적에 가닿는 작가다.

우리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오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그를 모른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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