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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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클라우드 그 10번째 책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었다. 아직 읽지 못했던 <설국>을 허연 시인의 여행과 해설로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일본 근현대 소설을 읽어가던 허연 시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느끼게 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된다.

013~014p.

1968년 노벨상 시상식 장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였다. 장신의 백인들 틈에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서 있던 백발의 노인. 그는 무림의 고수 같았다. 사진 속 그에게는 주변 백인들을 모두 장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우라가 있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그는 <설국>이라는 그의 작품과 책에는 지명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에치고유자와, 그가 살아왔던 삶을 좇는 여행을 시작한다.

생에 대한 기억은 이미지로 남는다.

035p.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설국>7쪽

이 문장에는 주어가 없다. 독자들은 이 문장을 읽으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흡사 자기가 터널을 지나 설국을 마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기차에 타고 있는 듯한 착각. 이것이 소설의 시작 부분이 지닌 묘한 매력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읽는 소설’이 아니라 사색하고 깨달아야 하는 소설이며 ‘이미지를 감상하듯 읽어야 하는 소설’ 인지 알 것 만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들을 열거해놓고 보면 그를 움직인 가장 큰 동인은 콤플렉스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귀족, 죽음, 고아, 왜소함, 패배한 일본 콤플렉스.... 이러한 콤플렉스들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이라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작품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 그의 문학은 유쾌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부분은 다가오는 겨울 읽어보고 다시 리뷰를..) <설국>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다. 가까운 듯 멀게 느껴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 책을 읽기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가까이할 수 없는 먼 작가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허연 시인이 이야기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 그리고 그의 인생을 깊고도 다정한 문장과 사진으로 읽어가다 보면 호감을 갖고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작가와 작품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살을 빼고 수영을 시작해야지.. 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뛰어들어 체험하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0인을 기획으로 시작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난 이 인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데, 관심은 있지만 어렵다고 생각되는 인물인데.. 등등의 이유로 멀리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이전 시리즈 도서인 아리스토텔레스가 개인적으론 어렵게 느껴지는 인물이었는데 생각보다 한층 가깝게 느껴졌고 #클래식클라우드010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책장을 덮으며 ‘이 시리즈들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 권 한 권, 잘 읽고 조카들, 동생과 부모님까지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보고 싶은 시리즈가 되었다.

062p.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이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다. 시마무리가 살고 있는 도쿄라는 현실 세계가 아닌 터널 밖의 세계, 즉 에치고유자와라는 이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도입부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082~084p.

사실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이다. 읽으면서 소설 전체의 인과관계를 찾거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나열된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어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 어떤 ‘종합’에 이르게 된다.

138p.

‘체념’이라는 단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내내 나를 따라다닌 ‘화두’였다. 체념한다는 것, 그리고 그 체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체념에는 체념이 주는 힘이 있다. 깊은 체념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안다. 체념이 힘이 된다는 것을.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내가 원고의 첫 행을 쓰는 것은 절체절명의 체념을 하고 난 다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희망보다 체념을 먼저 배운 자는 잔치가 끝난 다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안다.

211p.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소설은 하나의 이미지다. 양적 결과물이 아닌 질적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의 수려한 문장에서 ‘허무’를 만난다. 그것이 승자도 패자도, 옳고 그른 것도 없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미학이다.

278~280p.

줄거리 진행을 기준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이게 뭐지’ 하는 의문에 빠지기 쉽다. 그의 소설에는 환희와 분노도, 선과 악도, 적과 동지도 없다. 이런 것들을 일부러 거세한 듯 그의 소설은 무한을 향해 갈 뿐이다. 그의 소설에는 궁극이 있다. 궁극의 욕망, 궁극의 삶, 궁극의 관계, 궁극을 찾아간 그의 귀착지는 허무다.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인간의 인생은 허무한 것이므로.... (중략)...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은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경전 같다. 그의 문학에는 숨겨놓은 장치가 너무나 많다. 드러난 언어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숨은 언어가 너무나 많다. 안타까운 건 그의 이 ‘숨은 언어’들을 번역을 통해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명하면서 목적지에 가닿지 않았다. 그는 생략하면서 목적에 가닿는 작가다.

우리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오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그를 모른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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