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지만 - 우울한 엄마여행자의 위로를 찾는 여행
진명주 지음 / 와일드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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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며칠 떠나는 짐을 싸는데도 꽤 무거운 캐리어, 아이와 배낭여행이라니 일주일도 아니고 두 달이라니!!

딱 10년 전,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오소의 작가님의 글은 책을 함께 읽는 지인들 사이에서도 인기였다. 그 당시엔 유행처럼 읽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힘들겠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 귀여운 꼬마였던 중빈 군은 국제적인 소년으로 성장 중이다.) 가끔 블로그나 SNS의 유명 여행작가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가 성장하면서부터 여행 친구로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와 자녀가 여행을 다니는 게 조금은 대중화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비난하는 여행을 떠났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엄마와 함께 여행하면서 아이도 함께 성장해갔다. 때론 엄마를 다독이기도 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엄마와 대립하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여서 두 달의 여행이 가능했던 건 아닐까? 때론 나의 욕심으로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은 그런 걱정과 두려움을 충분히 상쇄시킨다.

이 글은 7년 전 진명주 작가가 아이와 여행하며 썼던 글이고, 7년이 지나 세상에 출간된 글이다. 엄마와 함께 여행하던 꼬마는 사춘기 소년이 되었지만, 그 시절 엄마를 다독이며 여행하던 꼬마친구는 자라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춘기 소년으로 자랐다.

아이는 함께 낳았는데 왜 양육에 대한 부담은 모두 엄마가 해야 하는지, 남편은 개인적인 커리어도 사회적인 능력도 쌓아갈 때,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했고 가정을 지켰던 여자의 삶은 누가 인정해주는지... 꽤 오래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 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여자가 결혼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너만 참으면 문제없어!, 누가 일을 그만두라고 했어! (뭐라고?!) 그래.. 7년 전 글이야... 하며 진정 모드....

이 글은 아내, 엄마 이전에 여자도 아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지나온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울한 엄마 여행자가 위로를 찾아 아이와 떠난 2개월간의 배낭여행은 마음 한편으로 응원하면서도 답답한 쳇증 같은 감정이 가시질 않았던 글이기도 했다.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지만, 때론 그 여행이 일상을 살아나갈 이유와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017p.

“너만 참으면 아무 문제 없어.”

언젠가, 결혼생활의 부당함을 피력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만큼 남편은 내 편이 아니었다. 결혼 후 맞닥뜨린 현실의 벽만큼이나 단단한 남편의 가치관과 맞서 싸우느라 지쳤고, 어느새 나는 싸우기보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070p.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당연한 듯이 통용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도,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 말, 명절증후군이 왜 수십 년째 변함없이 명절날 메인뉴스로 등장하는 것일까? 언제쯤이면 명절 증후군에 대한 뉴스를 안 볼 수 있게 될까?

075~076p.

결혼할수록, 아빠가 될수록 사회적으로 더 지지 받는 남편과 달리, 결혼할수록, 엄마가 될수록 사회적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나는, 그 단단한 사회의 벽을 뚫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내가 계속 일을 고집하며 버틴다고 해서 내 고충이 하루아침에 줄어들 것 같지 않았다. ...(중략)...

그 즈음, 누군가 내게 말했다. 남편이 우울해 보인다고, 그러니 남편에게 신경 좀 쓰라고.

아무도 내 우울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때,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소리쳤다.

‘그럼, 나의 우울은 누가 위로해 주나요?’

결국 누군가의 위로 대신, 여행을 택했다.

나의 우울을, 나의 외로움을, 나의 슬픔을 위로해줄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했다.

234p.

부모가 된다는 건, 부단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특히, 엄마 노릇은 훨씬 더 힘들다. 꼬박꼬박 월급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일에,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직접 아이를 키워보기 전까지는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절로 모성애가 생기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모성애 역시 물도 주고 영양분도 줘야 자라나는, 자생력이 약한 화초 같은 것이었다.

266~267p.

“누가 너에게 일 그만두라고 했어?”

고통의 뿌리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런 아픈 말을 쉽게 내뱉는 남편에게서 비롯되는 걸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어리석은 선택을 한 나에게서 비롯된 것일까? 가족을 위한 배려가 결국엔 내 마음을 병들게 하고, 남편과 나의 관계를 원망과 분노로 물들게 하리라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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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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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절대 들어가선 안되는 폐광, 그곳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은 모두 미치거나 자살을 했다. 저주를 받은 것처럼.... 사춘기 아이들의 호승심이었을까? (하지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구나.)조 손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글은 그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으로 진행된다. 폐광의 입구를 찾은 크리스의 안내로 들어간 폐광에서 놀라운 것을 목격한 닉, 마리, 스티븐, 그리고 조. 그들은 찾아선 안되는 곳을 발견했고, 탄광에 함께 있던 애니는 분명 죽었다. 그런데... 48시간 후 동생이 돌아왔다.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 후, 마을을 떠나 살았지만 오래전 애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 안힐에 다시 돌아온 조. 그의 삶은 더 나아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인생에 실패한 사람처럼 보였다. 안힐을 떠났던 그가 돌아오자 그를 알던 과거 친구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하고, 조용히 떠나기를 바란다.

폐광에 무엇이 있길래, 그곳에 다녀온 아이들이 미치거나 죽음을 선택하는 걸까?

아들인 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줄리아. 이 사건은 폐광의 그 무엇과 닿아있는 것 같다.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이 그들을 선택한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 폐광에서 돌아왔던 애니의 이상한 행동들과 기묘했던 징후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며 사건은 빠르게 전개된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스티븐의 설명과 뒤로 가면 갈수록 드러나는 스티븐과 마리의 이야기는 뒤통수를 맞은 듯 띵, 한 기분이었지만 그 외 다른 인물들의 관계나 설정들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터라.. (요즘 촉이 왜 이리 좋은 거지?) 긴장감이 살짝 떨어지기도 했지만.... 폐광과 초자연적인 현상,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했다면 더 생생하게 읽었을지도...공포, 미스터리, 스릴러만이 아닌 인물들 간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글이었다.

26~27p.

희망으로 가득했던 인생. 하지만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 희망이다. 확약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우리 자리가 마련돼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예약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 자리가 경고나 환불도 없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에 상관없이 당장이라도 취소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경치를 감상할 시간조차 없이 달려왔더라도 말이다.

133p.

내 안에 일이나 친구나 애인,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었다. 어떤 날에는 내 인생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애니가 죽었을 때 현실은 끝났고 이후로 모든 게 조잡한 복사판인 것 같았다.

168p.

인생은 다정하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막판에는 그렇다. 우리 어깨에 부담을 더하고 발걸음에 무게를 더한다. 우리가 아끼는 걸 찢어발기고 영혼을 후회로 단련시킨다. 인생에 승자는 없다. 결국 잃는 게 인생이다.

219p.

그게 인생의 문제다. 절대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중요한 순간일지 모른다고 손톱만 한 단서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여유를 두고 그 순간을 흡수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다음이라야 붙잡을 만한순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407p.

세상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건 없다. 거짓말은 절대 검은색 아니면 흰색이 아니다. 전부 회색이다. 진실을 가리는 안개다. 가끔은 그 안개가 너무 짙어서 우리 자신조차 진실을 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 기억이 맞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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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게 친절한 철학 - 개념과 맥락으로 독파하는 철학 이야기
안상헌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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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 한 권 끝까지 읽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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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읽었어요. 완독했어요!!

책 두께는 친절하지 않은데, 제목은 <미치게 친절한 철학> 이란다. 읽을까 말까를 며칠 고민하다 7월 시작하며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진지한 마음으로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도전했다가 나가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철학이 너무 추상적이고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재미를 느끼지 못하며, 철학의 맥락을 잡지 못해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 딱 나였다. 알고는 싶지만, 막막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특정 인물에 대해서만 읽자니 그것조차도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글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시작글을 읽고 ‘읽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1부 고대철학 / 2부 중세철학 / 3부 근대철학 / 4부 근대철학의 붕괴

5부 현상학과 실존주의 / 6부 프랑크푸르트학파 / 7부 언어철학과 구조주의

8부 포스트구조주의

하나의 특정 사상을 강조하기 보다 철학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하며 발전하는 과정을 따라가보자는 취지로 쓰였다고 합니다. 읽다 보면 어벤저스도 등장하고 막 그래요!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읽었던 철학서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플래그잇만 붙이다가 100여 페이지 정도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 밑줄그어가며 읽었어요. 진짜! 잘 넘어가고 재미있어요!! 철학을 알고 싶지만 어렵다! 고 생각 하는 이들에게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철학은 안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206p.

절대정신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인간이 가진 보편적 이성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해 줍니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이성이 발달하는 것처럼, 이성은 성장을 거듭하며 역사를 이끌어 나가게 되는 이 이 이성이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입니다.

309p.

존재의 경이를 목도하는 또 다른 길은 하이데거가 강조하는 언어에 있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언어는 철학자나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아닙니다. 사물의 개념을 설명하는 이성적 언어들은 사물을 경계 짓고 개념을 한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언어들은 오히려 존재의 의미를 가립니다.

323p.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태어나는 이유, 존재하는 목적을 가지지 않고 이 세상에 와 있습니다. 목적보다 존재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 ‘왜 존재하는가’,’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목적이나 본질이 정해져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겠죠.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것은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자유롭지 않다면 선택은 불가능합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할 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 (중략)... 그렇다면 철학의 임무는 명확합니다. 자신의 삶을 재창조하는 것, 어제와 다른 오늘, 과거와 다른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를 경험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창조의 희열을 맛볼 수 있고 그때의 삶의 가능성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은 그 창조에 복무하는 것이고 마땅히 그러해야만 합니다.

철학은 지식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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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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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라서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던 책들의 경우 이런 편애는 조금 더 심한 편이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출간 소식에, 언젠가 겨울 제목에 이끌려 무작정 읽었던 <소란>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책이었고 문장이었다. 장석주 시인과 함께 집필했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으며 조금 더 깊이 빠져들었던 작가였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되는 대로 즐겁게

그렇게 우리는 가벼워지고 삶은 말랑하고 행복해진다.

책표지의 그림이 갸웃? 하게 도하지만 글을 읽다 보니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라는 제목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듯한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것, 좋은 것만 하고 살아도 짧은 생이다. SNS의 홍수에 보는 것이 많아지다 보니 욕심도 많아지고 ‘나’라는 사람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내 생각을 펼치기 전에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검색해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빠져들기 보다 글에 나를 맞춰가기도 했다. (이렇게 읽는 거라고 했어. 누가?) ‘나’자신의 삶을 살기보다, 누군가 보게 될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박연준 작가가 고향같은 동네 ‘면목동’에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층 팬심이 두터워짐을 느꼈다. 홍대 애정 하는 가게들은 하나같이 궁금해지고, 서울이었다면 당장 달려가보고 싶을 정도... 집 주변에 동네 서점이 있는지 마실을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꼼꼼히 읽고 싶었던 5부 믿지 않으면, 좀처럼 읽을 수 없는 책은 읽었던 책들은 정독했지만, 읽고 싶어 담아두었던 책은 살짝 넘어가기도 했다. (책을 읽은 후 다시 찾아 읽어볼 예정).

에세이, 산문집을 읽다 보면 이렇게 쓰고 싶다.라는 닮고 싶은 글이 있는데, 박연준의 책 이야기가 그러했다. 얼마나 읽고, 얼마나 생각을 하고 얼마나 글을 써봐야 이렇게 쏙쏙 읽어지는 글을 쓸 수 있지? 책장을 덮으며 마음이 풍선같이 둥실 부풀어 오른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는 상태로 그렇게 꾸준하고 소소하게 빛나는 사람이 되길, 마음이 흔들릴 때면 꺼내 읽고 싶어지는 글이다.

62p.

오늘 아침 소파에서 남편의 신간 시집을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세월이 가면 우정은 사소해진다.” 별일 없이 마음을 다치게 하네. 시는 이게 문제다. 읽다 자꾸 베인다. 다쳐도 피가 나지 않는 상처가 있다.

119p.

휴가는 행복을 더 이상 유예시키지 않아도 되며 지금 이 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다. 나의 오늘이 어제와 분명히 다름을 선언하고, 비로소 내 의지대로 주어진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휴가는 ‘인생’이란 큰 덩어리에 갈라진 틈, 어떤 ‘사이’에 도착하는 것이다. ‘사이’에서 우리는 목적에서 놓여나 자연스럽게 머물거나 스밀 수 있다. 쉬자, 주먹을 펴고, 욕심과 걱정에서 놓여나자. 나는 가벼워지고 내 삶은 더 말랑하고 행복해지리라.

145p.

책을 사는 일도 물건을 사는 일이다. 물건을 가지려는 ‘소박한 탐욕’으로 빛나는 눈과 신중한 손이 합작하는 일.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신간 몇 권을 골라든다. ...(중략)... 잠깐 들릴 수 있는 동네 책방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삶은 작고, 또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179p.

누가 누구를 더 잘 아는 것(그것도 불가능하지만 안다고 치고), 그게 권력이 될 수 있는가? 아는 게 권력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굳이 능력을 논하자면 사람을 아는 게 권력이 아니라 끌어안는 게 권력이다. 그 사람을 끌어안고, 품고, 아끼는 것. 그때야 그 사람에 대한 지분이 생기고, 무언가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184p.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는 바보가 되고 있다. 남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 자극적으로 편집된 텍스트와 이미지에 노출된 덕에 읽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긴 글을 읽지 못하고 남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구별하지 못한다. 진득하게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한다. 일찍 스마트폰에 노출된 어린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226~227p.

시는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가짜’를 다 버리고 ‘진짜’만을 벼르고 별러 쓰는 게 시라면, 불편하더라도, 시를 시 자체로 견디어줄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여성들이 모르고, 혹은 알아도 어금니를 깨물고 그 무수한 총알 세례를 견디었듯이. 그러나 시를 견디는 것은 능사가 아닐지 모른다. 견디기보다는 그대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255p.

좋은 문장은 독자를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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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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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식구의 대가족, 한창 클 땐 나도 밥을 대접으로 두 공기씩을 먹었으니 반찬 걱정도 꽤 됐을 식비. 가격 대비 가성비가 좋은 먹거리는 역시 제철 음식이었을 것이다.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제철 음식은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어 맛도 있거니와 가격도 적당했을 테니까.. 사실 예전에야 그 계절이 되어야 즐길 수 있는 음식이었지, 요즘 계절 가리는 음식이 있던가?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다 있다. 하지만 ‘제철의 맛’ 은 그 계절에만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식재료들의 이야기들은 박찬일 셰프가 <중앙일보>와 <하버스 바자>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낸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계절의 음식을, 추억이 돋는 음식의 식재료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팁도 알려준다.

이 계절에 먹지 않으면 몸살을 앓는 음식이 있든

이 계절에 필요한 위로가 있다.

봄이면 상에 자주 올랐던 오징어볶음과 각종 산나물, 여름엔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던 가지. 보라색 가지는 색은 예쁜데 어릴 땐 맛도 없이 흐물흐물한 가지를 왜 그리 자주 해주셨던지 정말 싫었는데 최근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요리는 가지볶음이다. 가지, 양파, 간 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소금,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먹는 가지 요리가 왜 그리 맛있던지, 최근 두반장으로 볶아내니 두반장 특유의 살짝 매콤함과 가지의 식감이 너무 잘 어울려서 상에 올렸던 반찬이 순식간에 없어지기도 했다. 가을이면 포도, 겨울이면 굴과 꼬막 등 요즘은 시장보다 빠르게 대중매체에서 맛집 소개나 제철 음식을 조금 빠르게 소개하면서 계절을 반 박자 정도 앞서가는 느낌도 든다. 계절마다 찾게 되는 맛있는 ‘제철’의 맛은 다르고 특별하다. 제철에 맛있게 즐기자. 때를 놓치면 계절이 한 바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니까. 다양한 식재료에 대한 역사와 조리법들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배꼽시계가 요동을 친다. 어제도 가지볶음을 했는데, 오늘은 가지와 호박을 볶아볼까?

027p.

멍게 비빔국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매운 비빔국수에 멍게를 추가하여 버무리는 것이다. 썩 좋다. 내 친구는 '팔도비빔면'을 삶아서 멍게를 얹어 비비기도 한다. 초고속 멍게 요리다. 멍게가 남으면, 밀봉하여 얼리거나 젓을 담그는 게 좋다.

036~037p.

우리가 먹는 안초비는 전량 수입된다. 700그램짜리 한 병에 수만 원 한다. 비싸다. 봄에 올라오는 멸치로 직접 담그면 엄청나게 싸게 안초비를 담글 수 있다. 10킬로그램 한 박스에 1만 원 언저리다.

053p.

산나물 소비가 가장 많은 철은 흥미롭게도 봄이 아니다. 겨울 자락인 대보름 무렵이다.

093p.

민어가 비싸서 서러운 분들, 그냥 우럭을 사서 회 뜨고 찌개 끓여드시라, 그 맛은 보증한다.

120p.

국내 포도 종은 모두 150여 종이나 된다. 세계적으로는 350여 종이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딱 3종이 전부다. 캠벨 얼리, 거봉, 그리고 머루포도로 알려져 있는 ‘새단’이다. 매일 먹는 벼도 우리는 품종을 모르고 사고판다. 과일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199p.

딸기는 대부분 농약을 적게 치고, 치더라도 햇빛 받으면 다 증발합니다. 그래서 딸기는 씻지 않고 먹는 게 최고지요. 씻으면 수용성 비타민이 유실됩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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