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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ㅣ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평점 :

책 읽어주기와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이 책의 초반부(1부)는 일반적인 애정소설과 다를 점이 없지만, 차이점은 바로 "책 읽어주기"에 있다. 가끔 조카들이 책 읽어달라고 조를 때, 책 읽어주는 것이 생각보다 귀찮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런 점은 연인 사이에서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주인공은 한나의 강력한 부탁으로 사랑 행위 이전에 반드시 "책"을 한나에게 읽어주었다. 이러한 "책 읽어주기"는 2부 막바지에 이르러 그 의미를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부인은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 - 첫 번째 부인
한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은 화자의 생일을 한나가 잊어버리고 그 때문에 화자와 한나 사이에 말타툼 결과 화자가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싹싹 빌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 이후 화자는 "한나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마치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과 유사한 에피소드이다. 결국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은 돌이켜보면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고, 수영장에서 친구와 놀다가 한나를 발견한 순간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지 아니함으로써 한나를 첫 번째로 부인한 것이고 그녀를 배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의로 자신을 망치고 있어. 그런데 네가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입장이야. 그러면 넌 그 사람을 구하겠니? - 두 번째 부인
한나가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숨기고자 했던 "문맹"을 화자는 결국 2부에서 깨닫게 된다. 문맹이란 점이 밝혀지면 한나는 종신형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나 평생을 숨기고자 했던 치부인 "문맹"이 드러나게 된다. 화자는 결국 침묵하는 선택을 하였지만 나는 화자의 아버지의 말이 정론이라고 생각한다. 즉, 직접 한나와 이야기해서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화자는 다시 침묵함으로써 한나를 다시 한 번 배반한다.
"네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이 좋은 건지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너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그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주어야 해. 물론 최종 결정은 본인한테 맡겨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 사람과 직접 말이야. 그 사람 등 뒤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단다."
당신은 왜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 세 번째 부인
미하엘은 10년간 문학 작품을 녹음해서 한나에게 보내면서도 한 번도 한나를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또한 녹음테이프에 문학 작품 이외에는 아무런 사신도 담지 않는다. 이것은 옮긴이가 지적했 듯 "그녀에 대한 부인이요 배반이라고 할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편지라고 함은 즉 "글"이다. 미하엘이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함은 "글"을 쓰지 않은 것이고 그 말은 여전히 한나는 글을 알지 못한다, 즉 "문맹"이라는 것, 더 나아나가 문맹이었던 시점의 과거의 한나를 사랑하고 기억할 뿐,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한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점을 함축한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3번 부인했어도 결국 베드로를 용서했지만, 초월자가 아닌 일반인인 한나는 미하엘이 자신을 3번 부인(배반)한 결과 그 끝은 결국 출소 당일 새벽 자살이라는 마무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수영장에서 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면 그녀는 떠나지 않지 않았을까? 법정에서 한나를 직접 만나 도와주었다면 그녀가 종신형을 받아서 교도소에서 18년간 복역했을까? 한나에게 한 번이라도 편지를 썼다면 그녀가 출소하는 날 자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