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하루 일과를 기록해보자면

8시 반 전후로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귀찮으므로 머리는 감지 않는다. 2~3일 주로 3일 마다 감는다.
수술 전후로 60시간의 공복과 8일만에 머리 감기, 11일 만에 샤워를 한 경험은
청결에 대한 철학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오전에는 책상에 앉아서 이런 저런 잡무(비서가 있었다면 전부 비서에게 시켰을 일)와 일기쓰기(생각 정리를 위한)
오후 1시 전후로 점심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3시 전후로 산책을 한다.
산책은 5키로 남짓, 1시간 30~2시간이 소요된다.
반환점에서 얼마나 쉬느냐가 관건.
저녁을 먹고 잠자기 전까지 시간에는
영화 1편을 보고 난 후 드라마 2~3회를 본다. 
그리고 잠이 올 때 잔다. 
주로 0시가 지난 시각이다.

요약하자면 하루 24시간 동안
충분한 잠, 하루 3끼 식사(장보기와 요리는 외주, 밥상 차리기와 설거지만 내가 한다)
산책, 집안일(청소, 정리정돈, 빨래), 1일 1영화, 드라마 보기, 책 읽기, 일기쓰기.
이것 외에는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어떤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외출도 하지 않고 있고, 약속도 없다.

이런 생활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사람과의 접촉 및 의사소통이 없는 지금 내 생활이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국 그 자체' 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사람은 영화나 소설 속의 캐릭터로만 존재하는 유희거리 정도가 딱 좋다. 내가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책을 덮은 후에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닭가슴살을 요리를 먹는 것과 같은 이치로...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내가 특별히 인간에게 더 연민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으로 사는 방식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공장식 축산을 외면했다면 공평하게 인간도 외면해야 하는 게 인간된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덴마트에서 밍크 1000만마리를 생매장 했다고 하는 뉴스를 봤다. 밍크에게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겨되었다는 이유로. 

점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핑계하에 인간끼리 개싸움하고 다른 동물을 학대하는 그 전쟁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해진다. 스펙을 쌓고, 경력을 쌓고, 요령껏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 교육에 목숨 걸고, 나보다 못 가진 자를 노력이 부족한 인간이라고 깎아내리고, 반려 동물을 사랑함과 동시에 공장식 축산을 당하는 가축에게는 무심한 그래서 꽃등심 같은 걸 거리낌 없이 먹는 그런 인간들은 가급적 멀리하고 싶다. 당신들은 그런 삶이 좋을지 몰라도 나는 싫고, 그렇게까지 이기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사느니 지금처럼 혼로 조용히 적게 소비하면서 살다 죽고 싶다. 그게 가난과 함께한 고독사이든 비관적인 안락사이든, 적어도 내 기준에선 이게 훨씬 평화적이고 우아하다. 

위에서 언급한 저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밥을 먹고 하는 거 자체가 나에게는 지옥이었음을 그 지옥에서 벗어나 혼자 조용히 집에서 요양하면서 격하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내뿜는 아우라가 나에게 정말 좋지 않았다는 것을...

진단서에 적힌 요양 기간이 끝나간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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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재미있는 소설이었을텐데...찔끔찔끔 읽는 바람에 재미가 반감되어 재미 단계의 온도에 이르지 못하여 2/3 정도 읽다 포기하고 반납한 소설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소설책 1권 재미있게 읽을 시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삶이 내가 바라던 자립한 어른의 삶인가?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찔끔찔끔 보는 드라마는 찔끔찔끔 읽는 책보다 더더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몰아서 보면 정말 재미있다. 토일 주말동안 회차의 절반씩 몰아서 본다. 16부작이면 하루에 8화씩. 20부작이면 10화씩. 그렇게 이틀 동안 현실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가상의 세계에 몰입해서 주인공과 함께 고난을 겪고나면 스케일링 후의 입안처럼 정신도 개운해진다. 

퇴원을 한 직후에는 누웠다가 혼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술 부위의 통증은 자주 찾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3알 이상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 진통제를 1시간마다 입 안에 털어넣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 못 일어나기에 아침에 엄마가 와서 누운 나를 안아 일으켜 줄 때까지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일단 일어난 후에는 다시는 침대에 눕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울 때도 혼자 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있는 낮 동안에는 운동 삼아 집안을 어슬렁 거리면서 돌아다니거나 허리에 쿠션을 잘 받치고 쇼파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가만히 쇼파에 앉아서 TV를 보는 것 말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정말 힘들고 힘들 때 보려고 아끼고 있던 드라마 <비밀의 숲2>을 보기로 했다. 넷플릭스를 열 때마다 새 회차 업데이트 화면이 떴었는데 그걸 참고 외면하는 건 얼마나 힘들었는지...

훌륭한 드라마는 효자효녀보다 낫다. 하루 3알의 진통제와 <비밀의 숲2> 여덟 편이 나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틀만에 비밀의 숲을 다 봤다. 그 드라마를 보는 이틀 동안은 모든 것을 망각할 수 있었다. <비밀의 숲2>을 다 본 다음 날은 약간의 공허감과 통증이 비밀의 숲 자리에 들어왔다. 

조금씩 혼자 거동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쓸데없는 짓따위를 하면서 시간을 난도질하여 낭비해버렸다. 책을 좀 읽은 거 같기도 하고 영화를 몇 편 보기도 했고 산책도 했다. 산책을 하면서 깨달았다, 살면서 한 번도 이런 가을날 한가로이 단풍 구경을 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산책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주말에는 뭘하든 월요일 출근에 대한 불편함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기에 느긋한 마음일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의사는 여러 가지 상황(코로나 상황까지도)을 고려해서 최대한으로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을 시간을 명시한 진단서를 작성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물리적으로 넉넉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몸은 만신창이일지라도 마음만은 평안하다. 사람들은 건강이 최고야! 라고 하지만 아파본 지금에서야 알겠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헛소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건강한 인간들은 대체로 그 건강한 몸뚱이로 일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일일일, 돈돈돈 할 뿐이다. 자신의 건강을 자만하면서 성실하게 자본주의의 룰을 따를 뿐이다. 그렇기에 건강하다는 것은 한 인간이 어떤 정신 상태에 놓여져 있는지, 골룸적인 욕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엄마는 안 아프고 일하는 게 낫지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아파서 요양 중인 지금이 더 좋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내가 더 집중해햐 하는 것이 돈인지 시간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골룸적인 욕망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포르쉐 살 돈은 벌지 않기로 했다. 그 돈을 포기하면 시간이 생긴다. 느긋한 마음으로 산책할 시간이, 소설의 재미에 나를 충분히 담글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나에겐 충분한 시간이 돈 보다 절실하다. 


최근에 <비밀의 숲2>를 본 탓일까 어제 은행연합회장 김광수 기사를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골룸골룸. 동생 왈 "일단 행시를 합격해야 해.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마음만으로는 부족해. 그게 보이스 피싱과의 차이야." 라고 했다. 세상에 비리, 살인, 치정, 마약, 섹스가 있어서 좋은 점은 그것을 소재로한 스릴러 영화, 드라마, 소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없다. 나는 넉넉한 시간을 확보한 후 범죄를 감상한다.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것 보다는 그 이야기를 감상하는 게 백 배 낫지. 마치 신처럼!!! 


자립한 인간은 물리적으로 넉넉한 시간을 확보한 후 인간군상의 삶을 신처럼 내려다보는 방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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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고 낡고 병들어 가고 있다. 내가 고기를 목적으로 사육당하고 있는 어린 닭이나 어린 돼지였다면 진작에 관리자로부터 도태당했을 것이다. 닭이였다면 목뼈가 270도로 비틀려지면서 꺾이는 방식으로 도태당했을 것이고 돼지였다면 한 번 바닥에 패대기쳐짐 당한 후 코와 입에서는 피를 쏟아내고 여기 저기 탈골된 상태로 분뇨 구덩이에 버려지는 방법으로 도태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국민건강보험금을 원천징수 당하는 어엿한 인간인지라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높고 좁고 불편한 응급실 침상에서 여러 가지 처지를 받으면서(항생제에 흠뻑 절여짐 당한 고기와 뼈) 응급수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고 낡고 병든 또 하나의 짐승이었을 뿐이었다. 


기온은 봄같고 강풍을 동반한 폭우는 여름비같다. 스타벅스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나는 토피 넛 팝콘 트리 프라프치노를 먹고 있다. 늙고 낡고 병든 내 몸 상태를 고려해서 우유는 저지방으로 선택. 


만사가 형통하다. 아픈 것만 빼면, 내가 늙고 낡고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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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서 먹는 전복죽이니 밥과 국이니 하는 건 전부 엄마가 만들어 준 거다. 엄마는 거의 매일 내가 먹을 음식을 해 나르더니 이번 연휴에는 급기야 내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엄마가 심심할까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골라서 보여줬다. 그 드라마는 <동백꽃 필 무렵>이다. 무려 20부작. 그리고 지금 엄마는 19화를 보는 중이다. 이쯤되니 이건 뭐 나한테 밥을 주러 온건지 드라마를 보러 온 건지 헷갈린다.

엄마가 거실 쇼파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다. 잠시 본다는 것이 나도 죽치고 앉아서 같이 보게 된다. 나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필구를 낳은 동백이를 욕하고, 엄마는 덕순(고두심)에게 공감한다. 엄마는 내 아들이 동백이 같이 애 있는 여자 만나면 나도 속이 터진다 터져 하면서 보고 있다. 그리고 노규태가 나오면 저 모자란 놈, 모자란 놈 하면서 쯧쯧거린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엄마, 대다수의 한국 남자는 다 노규태야. 멀리 갈 것도 없어. 엄마 남편도 노규태 같은 짓 하잖아. 존경받을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대접 받으려고 하는 인간들은 다 노규태야 노규태."

엄마가 내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된장국을 끓이고 조기를 굽고 있다. 내 주방은 주인을 잘못만나서 요리라기 보단 조리에 가까운 데우는 행위만을 하고 지냈는데 이제야 제 쓸모를 다 하고 있다. 내 식탁에는 해피밀을 먹는 아이처럼 작은 레고인형이 놓여져 있다. 

-애도 아니고 식탁 위에 이 장난감은 뭐야"

라는 질문에 나는

-코펜하겐 레고 본점에서 사온 거야. 현실은 비루하니까 나에겐 환상이 필요하다구. 그 환상을 가장 저렴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여행 기념품이지. 

라고 답한다. 그리고 작은 화병에는 꽃도 있다. 화병 모양이 특이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유명한 화병이야. 화병 자체만으로 아름답지." 라고 말하곤 한다. 테이블 웨어는 코로나로 인해서 뭔가 꽉 막혔던 기분이 들었던 올 봄에 기분전환으로 구입한 2020 마리메꼬 시리즈 중 하나다. 이런 얄팍하고 허세스러운 식탁에 갓 구운 조기가 놓여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식탁에는 밥과 된장국과 깻잎김치와 해초무침과 갓 구운 조기가 놓여졌다. 


-엄마, 조기 살 발라서 내 밥에 올려줘야지. 동백이 못봤어? 용식이 엄마는 용식이한테 그래 주던데.

라고 했더니 엄마는

-니는 아빠도 있고 첫짼데, 용식이랑은 다르지. 

-엄마, 동백이는 엄마밥 먹어서 살이 쪘데. 동네 아줌마들이 말하는 장면 기억나지? 근데 나는 엄마밥 먹는데 살이 안쪄?

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래서 내가 지금 니 밥 해주고 있는 거 아니가.

하면서 조기살을 잔뜩 발라 주었다. 엄마가 발라 놓은 조기 살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도 못했다.


<동백꽃 피 무렵> 마지막화에서 정숙(이정은)은 동백에게 "아끼지 말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엄마 들었지? 나 포르쉐 사게 돈 좀 보태줘. 아니 아예 사 줘. 엄마가 늘 말하잖아. 자식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라며?" 했더니 엄마는 "법륜스님이 20살 넘은 자식은 돕는 거 아니랬어."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 


엄마랑 같이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서 도대체 왜 사람은 자식을 낳아서 서로 힘들게 사는가를 혼자 또 곱씹는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자식을 낳는, 자식을 가지고자 하는, 번식욕을...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살이 찔 정도로 식욕이 있는 사람의 마음 조차도 모른다. 엄마가 갓 구워서 발라준 조기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내가 평균적 인간의 식욕과 번식욕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20살 넘은 자식에게 조기는 발라줘도 되고 포르쉐 찬조는 해주면 안된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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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나날 동안 나는 끼니를 하찮게 여기며 대체로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영양과잉의 시대이므로 적당히 하루 한끼 정도만 제대로 챙겨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아픈 사람으로 만들 걸 보면. 

병원에서는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밥을 자주 많이 챙겨 주었다. 하루 3끼 먹는 건 정말 고역이었지만 병원의 지시를 따르는 내에선 아프지는 않았고 여러 가지 수치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과 국과 반찬을 먹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능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어김없이 간호사가 나타나서 협압과 체온을 잰다. 어떤 때는 채혈도 해간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든다. 7시 30분 전후로 밥이 온다. 아직 눈꼽도 떼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테이블이 놓여지고 식판이 놓여진다. 그러면 먹어야 한다. 식욕이 전혀 생기지 않지만 먹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먹어도 절반 정도는 남겼지만 나로서는 매일 매일 그렇게 성실히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다음 외래 진료를 약속하고 그 때까지 먹을 약을 처방받고 나서야 환자복을 벗을 수 있었다. 수액용 주사바늘을 뽑아낼 때 정말 행복했다. 양쪽 팔 여기 저기에는 수액 바늘의 흔적, 채혈바늘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자국은 더 생길 예정이겠지만 받아들여야 할 수 밖에. 생로병사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살면서 내가 삼시에 맞게 밥을 먹는 경우는 하루 3번 식후에 약을 먹어야 할 경우 뿐이었다. 그런 경우 더라도 정식으로 밥을 먹었다기 보다는 식후에 약을 먹으라는 건 빈 속에 먹지 말라는 의미겠지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대충 뭔가를 위 속에 집이 넣은 후에 약을 먹는 식이었다. 그렇게 끼니를 소홀히 함과 동시에 스트레스에 노출된 채로 생활한 나의 오만과 어리석음은 나를 아픈 사람, 항상 조심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의사는 커피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미세한 전기 충격에도 조건반사적으로 대처하는 실험용 쥐처럼 나는 이제 빈 속에 커피(카페인)을 들이붓는 짓은 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빈 속에 커피를 콸콸 쏟아붓는 대신 전복죽이나 밥과 국을 넣는다. 이미 죽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꼭꼭 씹은 후에 삼킨다.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나를 아프지 않게 만들어주는 특효약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렇게 나는 하루 3끼를 먹는(먹어야만 하는)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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