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에서 먹는 전복죽이니 밥과 국이니 하는 건 전부 엄마가 만들어 준 거다. 엄마는 거의 매일 내가 먹을 음식을 해 나르더니 이번 연휴에는 급기야 내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엄마가 심심할까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골라서 보여줬다. 그 드라마는 <동백꽃 필 무렵>이다. 무려 20부작. 그리고 지금 엄마는 19화를 보는 중이다. 이쯤되니 이건 뭐 나한테 밥을 주러 온건지 드라마를 보러 온 건지 헷갈린다.

엄마가 거실 쇼파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다. 잠시 본다는 것이 나도 죽치고 앉아서 같이 보게 된다. 나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필구를 낳은 동백이를 욕하고, 엄마는 덕순(고두심)에게 공감한다. 엄마는 내 아들이 동백이 같이 애 있는 여자 만나면 나도 속이 터진다 터져 하면서 보고 있다. 그리고 노규태가 나오면 저 모자란 놈, 모자란 놈 하면서 쯧쯧거린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엄마, 대다수의 한국 남자는 다 노규태야. 멀리 갈 것도 없어. 엄마 남편도 노규태 같은 짓 하잖아. 존경받을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대접 받으려고 하는 인간들은 다 노규태야 노규태."

엄마가 내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된장국을 끓이고 조기를 굽고 있다. 내 주방은 주인을 잘못만나서 요리라기 보단 조리에 가까운 데우는 행위만을 하고 지냈는데 이제야 제 쓸모를 다 하고 있다. 내 식탁에는 해피밀을 먹는 아이처럼 작은 레고인형이 놓여져 있다. 

-애도 아니고 식탁 위에 이 장난감은 뭐야"

라는 질문에 나는

-코펜하겐 레고 본점에서 사온 거야. 현실은 비루하니까 나에겐 환상이 필요하다구. 그 환상을 가장 저렴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여행 기념품이지. 

라고 답한다. 그리고 작은 화병에는 꽃도 있다. 화병 모양이 특이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유명한 화병이야. 화병 자체만으로 아름답지." 라고 말하곤 한다. 테이블 웨어는 코로나로 인해서 뭔가 꽉 막혔던 기분이 들었던 올 봄에 기분전환으로 구입한 2020 마리메꼬 시리즈 중 하나다. 이런 얄팍하고 허세스러운 식탁에 갓 구운 조기가 놓여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식탁에는 밥과 된장국과 깻잎김치와 해초무침과 갓 구운 조기가 놓여졌다. 


-엄마, 조기 살 발라서 내 밥에 올려줘야지. 동백이 못봤어? 용식이 엄마는 용식이한테 그래 주던데.

라고 했더니 엄마는

-니는 아빠도 있고 첫짼데, 용식이랑은 다르지. 

-엄마, 동백이는 엄마밥 먹어서 살이 쪘데. 동네 아줌마들이 말하는 장면 기억나지? 근데 나는 엄마밥 먹는데 살이 안쪄?

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래서 내가 지금 니 밥 해주고 있는 거 아니가.

하면서 조기살을 잔뜩 발라 주었다. 엄마가 발라 놓은 조기 살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도 못했다.


<동백꽃 피 무렵> 마지막화에서 정숙(이정은)은 동백에게 "아끼지 말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엄마 들었지? 나 포르쉐 사게 돈 좀 보태줘. 아니 아예 사 줘. 엄마가 늘 말하잖아. 자식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라며?" 했더니 엄마는 "법륜스님이 20살 넘은 자식은 돕는 거 아니랬어."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 


엄마랑 같이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서 도대체 왜 사람은 자식을 낳아서 서로 힘들게 사는가를 혼자 또 곱씹는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자식을 낳는, 자식을 가지고자 하는, 번식욕을...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살이 찔 정도로 식욕이 있는 사람의 마음 조차도 모른다. 엄마가 갓 구워서 발라준 조기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내가 평균적 인간의 식욕과 번식욕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20살 넘은 자식에게 조기는 발라줘도 되고 포르쉐 찬조는 해주면 안된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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