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견디는 것에 도움을 주는 영화 3편
또 패터슨을 보고 있다. 32인치 모니터 화면을 3:7 정도로 분할해서 3은 패터슨, 7은 알라딘이다. 유감스럽게도 <패터슨>은 넷플릭스에도 왓챠에도 아직 없어서 번번이 유튜브에 로그인을 해야 한다. 유튜브에 업데이트되자마자 거액 4000원으로 구매 결제하고 나서 아주 오지게 뽕을 뽑는 중이다.
그젠가 출근 운전을 하면서 '요즘 내 일상은 <패터슨>과 <사랑의 블랙홀> 사이 그 어딘가 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로는 <127시간>이지!!!!' 하는 생각을 하고는 피식 웃었다. <127시간>!!!!! 협곡에 갇힌 아론에게도 하루 한 번은 감미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자신의 오줌을 걸러서 마시면서도 최고급 샴페인(코카콜라였던가?)이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론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탈출을 하려면 손수 팔을 절단해야만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똑같은 날들이 반복이라는 것이고 그 반복 속에서 주인공은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낸다는 것이다.
2.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반완서 타계 10주기 기념 헌정 개정판으로 책 2권을 출판했다. 문제의 책 2권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이다. 검색을 해서 책 2권의 표지를 보는 순간 이건 소장용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나는 이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주니어 출판)를 가지고 있어서 고민 끝에 일단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만 주문했다. 모든 취미활동이 다 그렇겠지만 모든 것의 끝에는 보관 즉 부동산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안 그런 취미는 극장에서 영화보기 정도가 있겠다. 책은 주문한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내 손에 쥐어졌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오랜만에 만나는 박스, 책은 주로 1권씩 주문하는데 대체로는 뽁뽁이 비닐봉투에 담겨 왔다.)를 열었는데!!!!! 이런!!!!!!! 싱아도 사야겠다!!!!! 두 권 같이 책장에 꽂아두면 너무 근사하겠다!!!!!! 책이 장식품은 아니지만 실내 장식도 해주면 좋지!!!!!!!! 내가 가진 싱아는 쥬니어용(삽화가 정말 좋다! 아름다운 책이다!!)이니 같은 책인 건 아니잖아? 하는 합리화.
3.
2주 전에는 <미나리>를 봤다. 이번 주말에는 <더 파더>를 볼 예정이다. 이미 예매 완료. 코로나 속 망중한이랄까...나에겐 혼자만의 거실과 75인치 티비와 넷플릭스와 왓챠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극장인 것이다. 교통체증 없고 언제나 널널한 주차장이 있는 극장 시설 마저도 너무나 훌륭하고 영화값은 저렴한 예술영화상영관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이런 감정은 서울에서 주차지옥을 맛보고 난 후에는 특히 더 그렇다.
4.
내 생활은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만큼 단조로워졌다. 하루하루가 피곤해서(주로는 계속 졸린다) 체력 소모가 많은 활동은 대체로 피하는데도 계속 잠이 온다. 내가 유일하게 100% 혈기왕성할 때는 새롭고 좋은 낯선 장소에서 새롭고 좋은 물건을 쇼핑할 때뿐이다. 얼마 전에 우영미 맨메이드에서 주차 실패를 하고 주차자리를 찾아 돌고 돌고 돌다가 결국에는 압구정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우영미 맨메이드에 갔었다. 그다음 동선은 내가 사는 '시골(??????!!!!!)'에는 없는 의류매장을 구경하고 싶어서 가로수길까지 걸어갔다. 주차 자리 찾아 더 이상 헤매고 싶지도 않았고, 그 시간이나 걷는 시간이나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걸었다. 하지만 걷다 보니 신구초등학교 공영주차장을 발견, 다음에 혹시 여기 오게 되면 저기 주차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드글드글. 역시 서울은 욕망의 지옥이다. 경쟁을 싫어하는 나에게 고작 주차 성공 성취감을 욕망하게 만드는 것이 서울인 것이다.
빨리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으로 무리하게 달리기를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가서는 수술까지 하게 된 후로는 달리겠다는 생각은 접고 그저 산책 정도만으로 만족하는 중이다. 집 바로 앞에 걷기 좋은 공원이 있어서 그 공원을 두 바퀴 정도 걷는데 지겹다. 어느 정도 지겹냐면 어떤 소나무에 항상 있는 까치 커플까지도 알아볼 정도로 지겹다. 하지만 매일이 가로수길처럼 낯설 수는 없는 법이니 나는 이 익숙함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래서 영화 <패터슨>을 무한 반복 감상 중이다.
5.
내가 사는 시골의 백화점에도 지난 3월 우영미 매장도 생기고 다른 여러 해외 브랜드 매장도 입점을 했지만, 3대 명품이라는 에.루.샤. 매장도 모두 있지만, 강남 사람 오세훈이의 눈에는 한국이 강남과 비강남으로 양분되듯이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 눈에 한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분되리라. 코로나 시국이 되고서 알게 된 새로운 표준어 하나, 비수도권. 내가 비수도권이라는 단어에 비분강개할 때 서울 사는 동생은 왜 저래 하는 표정이었다. 이번에 동생 부부는 비강남에 비분강개했다. 역시 사람은 본인이 당해봐야 배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뼛속까지 서울내기인 이상의 감수성이 만들어 낸 관념의 유희일 뿐 정말은 그렇지 않다. 시골 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 건 서울내기들의 자유이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트고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박완서의 이 책을 다시 읽다가 든 의문은 '서울의 반대말이 시골인 걸까?'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시골은 문어체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시골이라라는 말 대신 촌이라고 하니까. 그리고 내가 해석하기에 서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인 시골의 더 정확한 표현은 타 시도이다.
예전에 서울 말씨를 쓰는 사람에게 어디에서 이사를 왔느냐 물었더니 광교라고 했다. 그래서 광교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수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 타 시도에서 왔네요."라고 했을 뿐이다.
'박완서가 소학교 다닐 때나 시골이지 요즘에 촌이 어딧나? 좁은 한국 땅에.' 라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빌딩 옆에 또 빌딩이 끝없이 이어져야만 도시(스울!)라고 하는 주장이 있긴 하고, 그건 그것대로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6.
익숙함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신작 영화를 찾아보고, 신간 책을 찾아 읽고, 신상 옷을 사서 입고, 낯선 길을 찾아 헤매고...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견딜 만 해 질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늘 생각한다.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또 지겹다. 하지만 지겨운 것 말고는 다른 절망은 딱히 없다. 내가 사는 이유는 죽음이라는 결말에 도달하기 직전의 알 수 없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제일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