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9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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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열정으로 광부의 아내가 된 모렐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교양도 있고 나름 재산을 갖고 있는 성실한 여인이었다. 단지 그녀의 안목이 그다지 성숙하지 않았을 때 모렐을 만났고, 그의 허풍을 분별할 시간도 갖지 않고 그와 결혼했다는 것이 그녀의 일생일대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내 그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 평생을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는 그의 애정을 받으며 행복해했고, 그를 닮은 아이들을 기르며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부부란 늘 애정으로만 뭉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어머니의 애정은 남편에게서 자식들에게로 옮아가는 것도 그다지 기이한 현상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 부부의 애정이 화목한 가정의 그것과 약간 다를 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부부에게서보다는 모렐부인과 자식들의 관계에서 보다 더 많이 생겨난다. 첫째아들 윌리엄의 성장은 모든 어머니들의 맏아들이 그렇듯이 뿌듯하고 가슴벅찬 것이었다. 윌리엄은 아버지의 성정을 닮았지만 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한 애정을 모렐부인에게 쏟아주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녀는 큰아들에게서 남편에게 얻지 못했던 사랑을 받으며 행복에 겨웠다. 아들을 뒤에서 지원하면서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그때부터 서서히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매우 박정함을 보이기 시작한다. 윌리엄의 약혼녀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교양있었지만, 그녀의 심정은 내내 약혼녀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 박정함은 윌리엄이 죽고 난 후 마음을 쏟게 되는 둘째아들 폴의 연인에게 훨씬 더 심해진다. 2권에서 미리엄이 이 냉정한 어머니를 어찌 견뎌낼지 걱정될 뿐이다. 

아주 불행하지는 않지만 아주 행복하지도 않은. 때로는 화목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보통보다 약간 가난한 살림의 가정을 엿보는 느낌이다. 교양있는 어머니와 그녀를 사랑하는 자녀들. 그리고 그녀 안에 자리잡은 고통과 슬픔. 때문에 보상받고 싶은 삶에의 열망. 이런것들이 뒤얽혀서 한 권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읽는 중에 때로는 갑갑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며 때로는 즐거울 수 있었다. 다른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소설읽기의 한 목적이라면 이 소설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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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연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0
D.H. 로렌스 지음, 정상준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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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이야기 중 전반부는 모렐 부부와 큰 아들 윌리엄에게 맞춰져 있었고, 후반부는 폴의 성장과 더불어 모렐부인과 폴의 유대관계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제 2권에서는 폴의 직장과 연애, 그리고 어머니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1권보다 2권은 폴의 감정선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도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을 느끼기 보다는 사건의 흐름에 치우친 독서습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번역본을 읽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혹은 번역상의 문제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감정의 흐름이 굉장히 과격하게 변했기 때문에도 그들의 감정변화에 익숙해지기 힘들기도 했다.

폴의 연인 중 미리엄이 그의 정신적인 부분을 담당했다면 클라라는 그의 육체적인 부분에 속했다. 미리엄은 그에게 좀 더 고상하고 높은 정신을 추구하기를 원했고. 클라라는 그의 전부가 자신에게 속하기를 원했다. 폴은 그 어느것도 그들에게 채워줄 수 없었다. 그의 진정한 연인은 바로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폴에게 그토록 절대적이었던 모렐부인의 역할은 그가 성인이 되고 연인들을 만나면서 축소되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삶을 끊임없이 지배해 온 그녀의 존재는 그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였다. 미리엄이 그를 설명하면서 그가 스스로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타당하다. 그는 그 자신을 온전히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미리엄에게도 클라라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가 알고 있었든 모르고 있었든 말이다. 

모렐 부인의 참혹한 모습을 그가 견딜 수 없어한 것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이는 남자의 행동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건강이 좀 더 좋았을 때에도 그는 어머니가 젊지 않은 것을, 그와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힘이 부족한 것을 통한해 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어머니가 빨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그녀의 죽음은 그에게 해방이었을까. 아니면 그 다음장의 제목처럼 버려짐 같았을까. 

모든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고,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면서 완성된다. 아들의 첫 연인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끈질긴 연인 아들. 그 두 사람의 끈질긴 관계는 어떻게도 간단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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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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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만큼이나 유명하다는 글의 서두부분은 시작부터 하얀 눈밭과 기차의 흔들림 그리고 차창에 비치는 여인의 깨끗한 이미지와 불켜진 전등의 환하고 눈부시며 설레기까지한 감각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미지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몽환적인 소설의 줄거와 어울리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밭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 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여자의 한쪽 눈이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페이지 : 10쪽  


고마코를 만나러 두번째로 기차를 탔던 처음 장면에서 만난 요코는 눈 속에서 붉은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고마코와는 다르게 흐린 듯 하지만 청명한 그야말로 눈 그 자체의 이미지를 가진 여인이다. 그녀는 시마무라에게 육체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소리로, 분위기로 느껴진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지지미를 만들며 실을 잣던 여인들의 노랫소리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늘 그에게 현실 너머에 있다. 그리고 마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마지막을 불빛과 함께 마감한다. 창문으로 보는 것처럼 가까이 있어도 먼데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녀 그녀의 허무함은 고마코의 그것보다 더 크다.

주인공 시마무라가 눈으로 유명한 고장으로 여행을 와서 만난 여인 고마코는 그와 애초부터 안면이 있었던 것도 그가 특별하게 잘 해준것도 아니지만 그를 그녀의 모든 정열을 바쳐 사랑한다. 이미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는 그이지만 그녀의 열정은 그로 하여금 매해 그녀가 있는 마을. 그 여관으로 찾아들게 만든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허무하다. 아무 이득될 것도 없고,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도 없는 그들사이의 관계는 그에게 단 한 마디로 정의된다. '헛수고'라고. 그러나 그 '헛수고'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녀의 열정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목적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일까. 

고마코나 요코 모두 그가 매 해 만나게 될 때마다 묘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지지미가 매번 눈 위에서 바래지듯이. 바래지고나면 하나의 천이 완성되겠지만 그 천이 느끼게 해주는 감촉과 감동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먼 데의 누군가가 가지게 될 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지지미천이 주는 감동보다 더 짧은 기간 그녀를 추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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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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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는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구시가에서는 다양한 인종들이 비교적 원만하게 교류한다.
 
페이지 : 10쪽  

뉴올리언스의 '극락'이라는 거리의 2층짜리 건물에서 모든 사건은 일어난다. 남부의 귀족적 생활을 즐기던 블랑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녀의 동생 스텔라와 군인출신의 영업사원 스탠리는 나름의 행복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스텔라는 귀족적이었던 하얀 기둥이 자리한 저택을 떠나왔지만 그에 대한 향수 대신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풍족했다. 그러나 블랑시의 등장은 그녀의 현실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극락'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비교적 원만하게 교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블랑시는 이에 원만하게 결합하지 못한다. 그녀는 도착하는 그순간부터 이곳이 극락일리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그곳의 거친 남자들을 보자마자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그녀를 매우 불편해하며 조롱했다. 이는 아마도 남부출신 윌리엄스가 도시 빈민가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겪었던 이질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곳이 '극락'이 아니라면

블랑시는 오자마자 스텔라의 물음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자신 혼자서 가족들의 죽음을 겪게 하고 자신은 남편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이는 동생에 대한 미움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들의 저택 '벨리브'를 잃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저당을 잡혀서 잃었든, 그녀의 주장대로 이미 잃을 예정이었던 것이든 상관없이 이 고백의 순간에 그녀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음을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토록 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떠날 수 없었던 곳에서 밀려나왔다면, 그리고 그녀의 높은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잃었다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녀 스스로 밝혔듯이 마음속으로는 진심을 말했을 것이다. 이제 갈 곳이 없다고. 그러니 이 마지막 장소가 그녀에게 '극락'이 아니라면 그녀의 결말은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극락'에 사는 여인 스텔라

블랑시와 달리 스텔라는 삶에 만족한다. 그러나 그 만족스러운 삶이란 그녀의 육체적 '욕망'과 그에 따른 정서적 '안정'에만 기초해 있다. 남편 스탠리는 그정도만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인물은 아니다. 단지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뿐이다.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오면 친구들이 누가 네가 성공할 거라고 하느냐는 뼈아픈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버는 돈을 아내에게 넘겨주지도 않는다. 스텔라는 이것이 그가 자기 스스로 돈을 쓰고 싶어하며,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하며 합리화시킨다. 게다가 그는 임신한 스텔라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취해서 한 행동이고 스스로 뉘우쳤다는 것으로 또 스텔라는 순순히 용서하고 화합한다. 그녀의 '극락'은 상당부분 그녀의 지나칠정도로 친절한 '합리화'에 기초하고 있다. 남편이 언니 블랑시를 겁탈했다는 사실에도 그녀는 아이때문에라도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말로는 언니가 말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면 스탠리와 살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언니를 보내고 스탠리 곁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녀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이 될 뻔한 남자 미치

미치는 블랑시의 눈에 다른 '극락'남자들과 달라보였다. 노동자의 모습이 아니라 신사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도 힘들지만 그녀에게 신사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꽤 진지한 대화도 통했다. 그리고 블랑시는 그의 앞에서 숙녀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한번도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밝은 불빛 아래에서 비춰보인 적이 없다. 나이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 그것을 여인이 지닌 약간의 모호한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랬기에 미치는 스탠리가 폭로하는 블랑시의 과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신병에 마음을 쓰며, 사랑했던 옛 여인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성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이미 어머니에게 상당부분 묶여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과거의 여인. 자신에게는 그토록 숙녀처럼 굴었지만 누구든 가질 수 있었던 여인이라는 데 그는 분노했을 것이다. 비록 마음이 그를 배신했을지라도, 그래서 그의 행동은 그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의 구원을 이루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절망한 상태의 미치가 블랑시에게 보인 태도-그동안 못했던 것을 해보겠다-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스탠리의 세상. 그에게 진정 극락일까.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는 인물은 스탠리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자신의 속성을 버리지 못한다. 다행히도 스텔라는 그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현명한 아내다. 그런 아내와 둘만의 세계를 꾸리는 것이 그의 이상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카드게임을 즐기는 것.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 힘이라는 것은 교양이나 인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힘과 매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에 비극이 있다. 그의 극락은 블랑시의 퇴장으로 완전히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들 사이의 사건이 완전히 없었던 것이 될 수 있을까. 스텔라는 전처럼 현명하고 순종적인 여인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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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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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로 잘 알려진 작가 나사니엘 호손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단편은 사건이 단일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장편보다 속도감이 있는 데다가 글의 의도 역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머리를 식히면서 읽기에 좋다. 나사니엘 호손 정도의 필력이 더해지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책장이 그야말로 휙휙 넘어가게 해준달까. ^^


장난같은 삶. 또는 처벌같은 삶

<웨이크필드>에 등장한 웨이크필드씨는 어느날 아내에게는 여행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와 옆 거리에 머물면서 아내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내는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서 그랬다고 하기에 20년은 긴 세월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는 단지 하루하루 미뤄왔을 뿐 20년을 기약한적도 결심한적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것이 삶이다. 한편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에 등장하는 두 젊은 남녀는 결혼과 동시에 향락의 도시 메리 마운트를 떠나 청교도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월의 왕과 왕비였던 순간이 끝나고 다시는 그토록 화려한 순간을 맞이하지 못하게 될 이 두 남녀의 삶은 그들에게 충분한 처벌이 되지 않겠는가. <로저 맬빈의 매장>의 주인공 로이벤의 삶 역시 처벌에 가깝다. 자신을 아버지처럼 돌봐주었더 로저 맬빈을 죽음 근처에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의 딸과 결혼하면서 그를 제대로 매장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은데 대한 죄책감으로 그는 평생을 어둡게 살게된다. 그리고 결국 로저 맬빈의 매장은 그의 아들의 시체와 그 위에 엎드러진 아내의 눈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삶의 비참한 결과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인간본성에는 죄가 있다.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 후퍼 목사는 어느날부터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독자들이 기이하게 여길만큼 이 검은 베일은 단순한 두장의 천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것은 목사의 종교적인 능력을 높이고 인간적인 능력은 없애버렸다. 사랑하거나 위로받는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용서받는 대상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후퍼 목사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그대들! 그대들의 얼굴에도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이 메세지는 <젊은 굿맨 브라운>과 <이선 브랜드>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브라운은 열심한 신도들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을 이단의 의식에서 만난다.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호하게 구성되어있지만 어느쪽이든 브라운은 죄에 대한 고뇌로 일생을 어둡게 살게 된다. 이선브랜드 역시 용서받지못할 죄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돌아온다. 그것이 비단 그의 안에만 있던가. 그것은 우리 개개인 안에 그 심장 안에 있다.

아름다움. 그 허무함.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미와 허무함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잘 보여준다. 오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노력을 쏟아부어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그리고 더 아름다운 나비를 만들어 낸다. 고도의 섬세하고도 섬세한 그 작업은 그의 예민한 감각뿐 아니라 그의 정신의 정수까지도 쏟아부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그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단지 놀라운 '장난감'에 불과했다. 한순간 힘을 쏟아부어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의 작품보다 실용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억울해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애니의 아들이 손쉽게 나비를 부숴뜨렸을 때 보이는 태도는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그리고 진정한 예술에 대해서 초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예술가는 어쩌면 허무함을 견뎌나아가야 하는 작업일지 모른다. 이같은 아름다움과 허무함은 <야망이 큰 손님>과, <라파치니의 딸>에게서도 나타난다. 더없이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에 손님으로 찾아온 야망 가득한 젊은이는, 이 소박한 가정 모두에게 각각 자신만의 야망을 꺼내놓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순간의 산사태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인간이 스스로 상상하는 미래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 라파치니의 딸 역시 그 아버지의 과학적 지식과 야망을 모두 쏟아부은 치명적이나 아름다운 '독'이었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게 된 구아스콘티까지 독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독성까지 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해독제에 의한 허무한 죽음이었다. <반점>에서도 아내를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들고자했던 남편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다는 숙명. 그것이 그토록 허무한 종말에 이르도록 하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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