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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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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는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구시가에서는 다양한 인종들이 비교적 원만하게 교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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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1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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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의 '극락'이라는 거리의 2층짜리 건물에서 모든 사건은 일어난다. 남부의 귀족적 생활을 즐기던 블랑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녀의 동생 스텔라와 군인출신의 영업사원 스탠리는 나름의 행복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스텔라는 귀족적이었던 하얀 기둥이 자리한 저택을 떠나왔지만 그에 대한 향수 대신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풍족했다. 그러나 블랑시의 등장은 그녀의 현실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극락'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비교적 원만하게 교류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블랑시는 이에 원만하게 결합하지 못한다. 그녀는 도착하는 그순간부터 이곳이 극락일리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으며 그곳의 거친 남자들을 보자마자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그녀를 매우 불편해하며 조롱했다. 이는 아마도 남부출신 윌리엄스가 도시 빈민가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겪었던 이질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곳이 '극락'이 아니라면
블랑시는 오자마자 스텔라의 물음에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자신 혼자서 가족들의 죽음을 겪게 하고 자신은 남편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이는 동생에 대한 미움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들의 저택 '벨리브'를 잃었다고 고백한다. 그녀가 저당을 잡혀서 잃었든, 그녀의 주장대로 이미 잃을 예정이었던 것이든 상관없이 이 고백의 순간에 그녀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음을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토록 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떠날 수 없었던 곳에서 밀려나왔다면, 그리고 그녀의 높은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잃었다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녀 스스로 밝혔듯이 마음속으로는 진심을 말했을 것이다. 이제 갈 곳이 없다고. 그러니 이 마지막 장소가 그녀에게 '극락'이 아니라면 그녀의 결말은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극락'에 사는 여인 스텔라
블랑시와 달리 스텔라는 삶에 만족한다. 그러나 그 만족스러운 삶이란 그녀의 육체적 '욕망'과 그에 따른 정서적 '안정'에만 기초해 있다. 남편 스탠리는 그정도만 만족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인물은 아니다. 단지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뿐이다.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오면 친구들이 누가 네가 성공할 거라고 하느냐는 뼈아픈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버는 돈을 아내에게 넘겨주지도 않는다. 스텔라는 이것이 그가 자기 스스로 돈을 쓰고 싶어하며,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하며 합리화시킨다. 게다가 그는 임신한 스텔라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취해서 한 행동이고 스스로 뉘우쳤다는 것으로 또 스텔라는 순순히 용서하고 화합한다. 그녀의 '극락'은 상당부분 그녀의 지나칠정도로 친절한 '합리화'에 기초하고 있다. 남편이 언니 블랑시를 겁탈했다는 사실에도 그녀는 아이때문에라도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말로는 언니가 말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면 스탠리와 살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언니를 보내고 스탠리 곁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녀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이 될 뻔한 남자 미치
미치는 블랑시의 눈에 다른 '극락'남자들과 달라보였다. 노동자의 모습이 아니라 신사의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도 힘들지만 그녀에게 신사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꽤 진지한 대화도 통했다. 그리고 블랑시는 그의 앞에서 숙녀로 행동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한번도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밝은 불빛 아래에서 비춰보인 적이 없다. 나이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 그것을 여인이 지닌 약간의 모호한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랬기에 미치는 스탠리가 폭로하는 블랑시의 과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신병에 마음을 쓰며, 사랑했던 옛 여인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감성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이미 어머니에게 상당부분 묶여있다. 그런데 어머니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과거의 여인. 자신에게는 그토록 숙녀처럼 굴었지만 누구든 가질 수 있었던 여인이라는 데 그는 분노했을 것이다. 비록 마음이 그를 배신했을지라도, 그래서 그의 행동은 그의 마음과는 달리 그녀의 구원을 이루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절망한 상태의 미치가 블랑시에게 보인 태도-그동안 못했던 것을 해보겠다-는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스탠리의 세상. 그에게 진정 극락일까.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는 인물은 스탠리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자신의 속성을 버리지 못한다. 다행히도 스텔라는 그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현명한 아내다. 그런 아내와 둘만의 세계를 꾸리는 것이 그의 이상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카드게임을 즐기는 것.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런데 그 힘이라는 것은 교양이나 인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힘과 매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데에 비극이 있다. 그의 극락은 블랑시의 퇴장으로 완전히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들 사이의 사건이 완전히 없었던 것이 될 수 있을까. 스텔라는 전처럼 현명하고 순종적인 여인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