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의 열정으로 광부의 아내가 된 모렐부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는 교양도 있고 나름 재산을 갖고 있는 성실한 여인이었다. 단지 그녀의 안목이 그다지 성숙하지 않았을 때 모렐을 만났고, 그의 허풍을 분별할 시간도 갖지 않고 그와 결혼했다는 것이 그녀의 일생일대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내 그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 평생을 보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는 그의 애정을 받으며 행복해했고, 그를 닮은 아이들을 기르며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부부란 늘 애정으로만 뭉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어머니의 애정은 남편에게서 자식들에게로 옮아가는 것도 그다지 기이한 현상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 부부의 애정이 화목한 가정의 그것과 약간 다를 뿐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부부에게서보다는 모렐부인과 자식들의 관계에서 보다 더 많이 생겨난다. 첫째아들 윌리엄의 성장은 모든 어머니들의 맏아들이 그렇듯이 뿌듯하고 가슴벅찬 것이었다. 윌리엄은 아버지의 성정을 닮았지만 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한 애정을 모렐부인에게 쏟아주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녀는 큰아들에게서 남편에게 얻지 못했던 사랑을 받으며 행복에 겨웠다. 아들을 뒤에서 지원하면서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그때부터 서서히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매우 박정함을 보이기 시작한다. 윌리엄의 약혼녀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교양있었지만, 그녀의 심정은 내내 약혼녀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 박정함은 윌리엄이 죽고 난 후 마음을 쏟게 되는 둘째아들 폴의 연인에게 훨씬 더 심해진다. 2권에서 미리엄이 이 냉정한 어머니를 어찌 견뎌낼지 걱정될 뿐이다. 아주 불행하지는 않지만 아주 행복하지도 않은. 때로는 화목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보통보다 약간 가난한 살림의 가정을 엿보는 느낌이다. 교양있는 어머니와 그녀를 사랑하는 자녀들. 그리고 그녀 안에 자리잡은 고통과 슬픔. 때문에 보상받고 싶은 삶에의 열망. 이런것들이 뒤얽혀서 한 권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읽는 중에 때로는 갑갑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며 때로는 즐거울 수 있었다. 다른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소설읽기의 한 목적이라면 이 소설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