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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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백 그램의 빵이 수용소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페이지 : 75쪽  

수용소의 하루는 길다. 슈호프는 그마저도 일하면서 짧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루하루는 짧은데 형기는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생활. 인간으로서 의.식.주 에 지배당하는 생활. 그것이 바로 수용소의 생활이다.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소련에서 체포되어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8년이나 했고. 이 작품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지만 또 그 때문에 소련문단에서 제명되었으며, 나라에서 추방되기까지 했음에도 다시 되돌아와 러시아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그의 이력을 떠올리면 이 작품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다.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노동뿐인 수용소 생활에서 슈호프가 살아가는 방식은 8년차 죄수답게 영리하다. 그는 노련하게 자신이 쓸 숟가락을 만들어 가지고 있으며 침대 속에 내일 먹을 빵을 저장하는 교묘한 방법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막사에 금지된 물건을 가지고 들어오거나, 밥그릇 수를 속여 자기 반을 위한 여분의 음식을 빼돌리는 배짱도 있다. 그러나 모든 면에 앞서 그의 인간적인 면에 긍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주변 죄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그 뿐만 아니라 반장인 추린에게도, 부반장인 파블로에게도, 부유한 죄수 체자리에게도 있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게 마련이긴 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그의 하루는 하루치고는 매우 운이 좋은 하루다. 하지만 운이 좋다고 해도 수용소 안에서의 생활인지라 수용소밖의 자유와는 비교할 바가 못된다. 그의 기쁨은 이백그램의 빵이 더 생기는 것. 피울 담배를 살 수 있게 된 것. 저녁이며 점심을 두그릇씩 먹은 것. 등이다. 스스로도 과거에는 전혀 생각 못했던 기쁨이라고 말할 정도로 소박한 것들. 그러나 그가 무슨 비난을 하거나 체제혁명을 부르짖는것은 아니다. 그저 살아낸다. 왜 죄수들은 한데 힘을 뭉치지 않는 것일까 라며 머릿속으로 생각할 뿐. 그리고 간수나 경호병들 마저도 죄수와 다름없이 그들의 일을 힘겹게 해내고 있음을 이해하면서 살아갈 뿐.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은 그 부조리함에 경악하게 된다. 죄목도 없는 죄수생활. 보람도 없는 직업생활. 다를 것이 없는 두 무리가 엉겨 살아가는 공간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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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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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페이지 : 303쪽  

전쟁 중 안전한 곳으로 후송되는 소년 일행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그 비행동체가 떨어진 섬의 흉터자국에서 처음 묘사되는 인물인 랠프는 그야말로 천진하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 그대로다. 그는 어른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섬에서의 자유로운 삶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그의 곁에 서서 자신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인물은 오히려 유약하지만 똑똑한 '돼지'이다. 그는 천식을 앓고 있는데다 굼뜨고 말끝마자 자기 아줌마를 들먹이지만 그 섬에 있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비극은 이러한 현실적인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소년들 중 누구하나 이런 판단력이 자신들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소라와 창칼
 
랠프는 봉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봉화는 그들의 구조가능성이나 마찬가지다. 봉화가 없다면 그들의 구조가능성은 제로다. 누구도 그 섬에 쉬러 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잭은 다르다. 그는 봉화를 꺼트려서 구조의 기회를 놓쳐버린 후에도 자신들에게는 고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구조가 필요없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한 점의 멧돼지 고기가 떠나온 문명사회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단순하게는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냥을 통해서 자기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랠프의 소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소라는 조리 있는 연설과 합리적인 설득을 통한 지도력이었다. 그는 모두가 이성을 지니고 있을 때에 자연스럽게 선출되었다. 그는 지도자로 정해져 있었다. 소라가 그에게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이듯. 잭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가 소라를 들고 랠프에게서 지도력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소년들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는 창칼이 있었고, 멧돼지의 고기가 있었다. 그가 만든 권력은 처음부터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둘을 가지고 비논리적이지만 공포와 폭력으로 구성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절대로 소년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고기와 멀리 있는 봉화
 
그러나 점점 수세는 잭에게 유리해져갔다. 봉화를 올리고 오두막을 짓는 데 힘을 써야 하는 랠프의 패보다는 얼굴에 칠을 하고 사냥을 하고 돌아다니며 밤이 되면 불을 피워 멧돼지 고기를 즐길수 있는 잭의패가 소년들에게는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느껴지는가? 생각해보면 우리역시 얼마나 가까운 이익 때문에 먼 미래의 계획을 모르는 척 하는가. 봉화를 올려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따분한 일 대신. 자그마한 모닥불로 돼지를 구워먹는 즐거움. 그래서 도덕적이고 현명한 지도자 대신 비도덕적이고 억압적이지만 잘 먹게 해주는 지도자를 원했던 소년들처럼 우리역시 잘 살게 해주는 지도자라면 도덕성도 관계없다고 우리 역시 외치지 않았던가.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의 힘
 
애초에 섬에 불시착 한 소년들 사이에서 반점이 있는 꼬마가 말했다. ‘짐승이 있다’고 그‘짐승’은 그들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사이먼은 말했다. 물론 이 중요한 발언들은 모두 묵살되었다. 그래서 ‘짐승’은 그에게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짐승’이 모두를 죽일 것이라고도 말한다. 사이먼은 그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하지만 - 물론 겉으로는 그들이 두려워한 짐승이라는 것은 사실 시체일 뿐이라는 것이었지만 - 이미 야만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그를 멧돼지 잡듯이 잡아버린다. 이 사냥꾼 집단이 애초에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하는 성가단원들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너무나도 두려운 변화가 아닌가. 이들이 최초의 사냥을 성공하던 암퇘지를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평화로운 암퇘지와 새끼들을 소년들이 침략하고 잔인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몰이꾼들의 즐거움은 이후에 랠프를 사냥하는 데 까지 나아가 야만이 문명을 파괴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인간의 순수성이라고 하는 것. 소년들의 우정이라고 하는 것이 이토록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가슴 아프게 인식시키고 있다.
 
<파리대왕>을 읽으면 소년들의 집단적 타락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읽으면 읽어갈 수록 실제의 소년들의 이야기로 읽혀지기 보다는 우리 안의 어린 영혼이 삭막한 현실에서 어떤 선택으로 기울어지는가를 읽는 것 같았다. 무인도라고 하는 공간에서의 상상력은 자꾸만 한 인간의 내면에서 영감이 사라지고 이성이 사라지고 결국 잔인한 본성만이 남아서 본래 가졌던 양심의 울음을 울리는 결말을 보는. 우리 영혼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래 있던 곳. 구원받아 가야할 곳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세상에 급급해있는 영혼들의 울음소리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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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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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연인'이라는 제목이 있다. 아직 어렸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영화의 제목이었다. 당시에는 매우 호기심이 생겼던 영화였으나 나중에 법적으로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어른이 되어서는 호기심이랄 것이 사라진 뒤여서 오히려 볼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사랑이야기가 읽고 싶어지면. 아마도 찾게 되는 제목일텐데. 아쉽게도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사랑을 읽었다기보다는 우울을 읽었다는 표현을 해야 맞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식민지에서 너무 빨리 늙어버린 어린 프랑스 소녀의 우울을 말이다.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녀는 나룻배 위에서 한 중국 남성을 만나게 된다. 소녀에게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었고, 그는 그 매력에 빠져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첫날부터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고, 반면 소녀는 그와 정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미래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결과는 예고되었다. 게다가 소녀는 그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채로 사랑의 행위만 시작된다. 열다섯 나이의 소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남성과의 섹스에 머물도록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그녀 안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우울의 원천은 무엇일까. 

소녀의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어머니의 행동은 소녀에 의해서 종종 '광기'라고 표현될 만큼 과장되고 우울했다. 어머니가 집안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 것에서부터 소녀의 우울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큰 오빠의 독재와 폭력. 그때문에 언제나 숨죽여야 했던 둘째 오빠를 향한 안타까움이 소녀 안에서 우울을 키웠다. 어머니가 소녀에게서 그 매력을 이용해 돈을 벌어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소녀가 중국인 남자에게 머무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때로 어머니가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질타하곤 했을지라도 말이다. 이는 소녀가 중국인 남자를 가족들에게 데려가 그가 가족들 사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지갑역할만을 하는데도 전혀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던 그녀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소녀는 그것이 그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랑보다 우울에 대해 생각했다. 소녀의 불안정한 정신에 대해. 삶을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응집해 놓은 듯한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모두들 죽었다. 소녀의 서술 속에서 그들은 죽기 한참 이전에도 죽었고, 죽은 후에도 죽었으며, 여전히 살아있음에도 죽었다. 소녀는 모두가 죽은 후에 글을 쓴 것처럼. 그리고 모두가 무덤에 들어간 후에야 모든 감정들을 비로소 깨달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게. 또는 대담하게. 사랑이 우울에 가려져서 절망만이 보였다. 소녀는 중국인 남자의 미래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을 그려넣어보이며 글을 끝낸다. 아마도 그것은 그에게는 소녀 아닌 다른 위로가 있었으면하는 그녀의 마지막 배려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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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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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고골이 시골에서 관료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도시로 상경해 겪었던 경험담이 담겨 있다.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작가에게서 이토록 현대적인 서사를 발견해 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도록 만들어주는 단편들의 연속이었다.
 
‘코’는 본래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꿈이라고 생각하고 읽지 않아도 좋다. 주인공 꼬발료프는 어느 날 아침 그의 코가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코가 자기보다 더 높은 급수의 관료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아무런 설명도 없는 채로 코 없는 인물이 된 그는 자신이 이제 어느 여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으리라는 사실 때문에 절망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의심스러울만큼 그의 걱정은 여인들의 시선에만 매달려 있다. 그리고 꿈처럼 다시 코는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꼬발료프는 이전보다 자신있게 자신의 코를 보이며 평온한 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코가 상징하는 것은 그 자신의 남성성일수도 있다. 혹은 관료가 되었지만 오로지 보이는 것은 ‘코’뿐인 무능력일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경찰에게 잡힌 ‘코’의 모습처럼 초라한 당시의 관직일 수도 있겠다.
 
‘외투’는 고골을 사실주의작가로 분류하게 해 준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주의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주인공 아까끼는 정서를 하는 말단관직에 있는 인물이다. 소심하고 소박한 그는 자신의 외투를 새로 구입해야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항할 다른 방법은 없는 법이라 아끼고 아껴서 새 외투를 마련한다. 그가 외투를 마련하자, 주변에서 그를 늘 조롱하던 관리들은 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거기에 참석했던 아까끼는 돌아오는 길에 외투를 강탈당한다. 상심한 그는 경찰서장이며 고급관리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한 채 열병에 걸려 죽는다. 그의 삶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운 것은 그가 누린 소박한 행복의 짧음 때문이다. 짧은 행복을 잠깐 누리고나서 그는 그 행복이 사라진 절망 때문에 급한 죽음을 맞이한다. 때로는 어떤 행복이 사람에게 이길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광인일기’ , ‘초상화’ , ‘네프스끼 거리’ 등 이후 작품에서도 고골의 환상성은 드러난다. 광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기에서는 순서도 없고 어느날쯤인지도 알 수 없는 날짜들이 등장하고, 그가 착각한 것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개들의 대화도 등장한다. 초상화에도 역시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리대금업자가 등장하여 초상화 속에서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그의 삶을 이어주는 것은 초상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초상화를 지니게 된 인간들의 마음 속 추악함일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악을 품고 있을테니까. 그것이 발현된 계기가 초상화든 그 자신이든간에 말이다. ‘네프스끼 거리’는 화려하지만 비밀을 품은 거리이다. 모두 멋진 모습으로 활보하고 있지만 쫓아가보면 삶의 추악함이 드러나는. 추악함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거리. 그 거리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두 아름다운 여인을 쫓아간 두 남성의 비극적 결말은 이 비밀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있고 가치있기 때문이다. 고골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가진 긴 생명력을 떠올리게 되었다. 여전히 흥미있고 새롭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도 슬픈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그의 삶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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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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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예술을 동경한다. 

누구나 밤이면 달빛을 받으며 꿈을 꾸는 것처럼.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찰스 스트릭랜드 외에도 소설 속에는 예술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화자인 ’나’역시 소설가이고, 스트릭랜드 부인을 소개한 로즈 워터퍼드 역시 소설가이다. 스트릭랜드 부인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가를 동경하여 그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을 즐기고, 더크 스트로브는 뛰어난 안목을 지녔지만 자신은 형편없는 그림을 그리는. 그러나 어찌되었든 예술을 해서 먹고 사는 인물이다. 그의 부인 블란치 역시 자신의 열정을 사랑에 던지는 예술적 기질을 가진 여인이며, ’나’가 타히티에서 만난 브뤼노 선장은 삶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6펜스의 세상에서 달빛을 받으며 사는. 그리고 그 때문에 얼마간은 비극적이고 얼마간은 희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찰스 스트릭랜드 역시 달빛을 받으며 꿈꾸는 세상에서 살 수 있었다. 6펜스의 세상 말이다. 그러나 그는 달빛에 홀려 달에서 살기를 원했다. 달빛만이 아니라 달 전체를 가지고 싶었다. 그는 예술이고 싶었고. 예술이 그의 전부를 가지기를 바랐다. 서머셋 몸이 고갱을 모델로 재창조해 낸 인물.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매우 단순하게 살았고, 단순하게 죽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그의 폭풍같은 내면이 단순한 삶안에 어떻게 휘몰아쳐 그를 집어 삼켰는지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천재의 그림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달과 6펜스를 예술지향과 세속지향으로 이분하는 대개의 해석도 그럴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릭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 달. 그리고 6펜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서는 6펜스, 혹은 그 이하가 있어도 좋았다. 달을 가질 수 있다면. 평범한 삶. 아니 그지없이 안정된 삶을 버리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그는 삶의 기준이 달라졌다. 이미 살아본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는만큼, 기존에 그가 가졌던 삶이 절대 행복하지 않았던만큼 그는 뻔뻔해질 수 있었다. 버려질 아내나 아이에게도, 헌신적이었던 친구와 그의 아내이면서 자기때문에 남편을 버린 여인에게도 일말의 연민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가 인간의 속성에 매우 밝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그들 모두가 자기 연민에, 또는 자기 만족에 빠져 그 일들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레이터인 ’나’에게 그는 묻는다. 당신은 그녀의 죽음에 일말의 관심이 있느냐고. 실제로 ’나’는 스트릭랜드를 따랐다가 자살을 선택하고 만 가엾은 블란치를 잊고 싶어했다. 그 모든 귀찮고도 엄청난 사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했다. 그의 비난은 단지 그 자신의 도덕률을 지켜야 한다는 그 스스로의 목적 때문에 행해졌다. ’나’역시 자기때문에 분노했던 것이다. 

몸이 고갱에게 주목하고, 그의 생애를 나름의 각색을 통해 예술에 바쳐진 인생으로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인공을 예술 그 자체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가장 천재적인 역작을 함께 태워버림으로써 그는 그렇게 예술가 스트릭랜드의 삶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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