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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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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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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30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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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안전한 곳으로 후송되는 소년 일행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그 비행동체가 떨어진 섬의 흉터자국에서 처음 묘사되는 인물인 랠프는 그야말로 천진하고 순수한 소년의 모습 그대로다. 그는 어른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섬에서의 자유로운 삶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그의 곁에 서서 자신들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를 냉철하게 파악하는 인물은 오히려 유약하지만 똑똑한 '돼지'이다. 그는 천식을 앓고 있는데다 굼뜨고 말끝마자 자기 아줌마를 들먹이지만 그 섬에 있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 비극은 이러한 현실적인 판단력을 갖춘 인물이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소년들 중 누구하나 이런 판단력이 자신들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소라와 창칼
랠프는 봉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봉화는 그들의 구조가능성이나 마찬가지다. 봉화가 없다면 그들의 구조가능성은 제로다. 누구도 그 섬에 쉬러 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잭은 다르다. 그는 봉화를 꺼트려서 구조의 기회를 놓쳐버린 후에도 자신들에게는 고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구조가 필요없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한 점의 멧돼지 고기가 떠나온 문명사회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단순하게는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냥을 통해서 자기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처음부터 랠프의 소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소라는 조리 있는 연설과 합리적인 설득을 통한 지도력이었다. 그는 모두가 이성을 지니고 있을 때에 자연스럽게 선출되었다. 그는 지도자로 정해져 있었다. 소라가 그에게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이듯. 잭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가 소라를 들고 랠프에게서 지도력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소년들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는 창칼이 있었고, 멧돼지의 고기가 있었다. 그가 만든 권력은 처음부터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둘을 가지고 비논리적이지만 공포와 폭력으로 구성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절대로 소년들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고기와 멀리 있는 봉화
그러나 점점 수세는 잭에게 유리해져갔다. 봉화를 올리고 오두막을 짓는 데 힘을 써야 하는 랠프의 패보다는 얼굴에 칠을 하고 사냥을 하고 돌아다니며 밤이 되면 불을 피워 멧돼지 고기를 즐길수 있는 잭의패가 소년들에게는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어리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느껴지는가? 생각해보면 우리역시 얼마나 가까운 이익 때문에 먼 미래의 계획을 모르는 척 하는가. 봉화를 올려서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따분한 일 대신. 자그마한 모닥불로 돼지를 구워먹는 즐거움. 그래서 도덕적이고 현명한 지도자 대신 비도덕적이고 억압적이지만 잘 먹게 해주는 지도자를 원했던 소년들처럼 우리역시 잘 살게 해주는 지도자라면 도덕성도 관계없다고 우리 역시 외치지 않았던가.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의 힘
애초에 섬에 불시착 한 소년들 사이에서 반점이 있는 꼬마가 말했다. ‘짐승이 있다’고 그‘짐승’은 그들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사이먼은 말했다. 물론 이 중요한 발언들은 모두 묵살되었다. 그래서 ‘짐승’은 그에게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짐승’이 모두를 죽일 것이라고도 말한다. 사이먼은 그 사실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하지만 - 물론 겉으로는 그들이 두려워한 짐승이라는 것은 사실 시체일 뿐이라는 것이었지만 - 이미 야만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은 그를 멧돼지 잡듯이 잡아버린다. 이 사냥꾼 집단이 애초에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하는 성가단원들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너무나도 두려운 변화가 아닌가. 이들이 최초의 사냥을 성공하던 암퇘지를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평화로운 암퇘지와 새끼들을 소년들이 침략하고 잔인하게 파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 몰이꾼들의 즐거움은 이후에 랠프를 사냥하는 데 까지 나아가 야만이 문명을 파괴하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인간의 순수성이라고 하는 것. 소년들의 우정이라고 하는 것이 이토록 쉽게 변질될 수 있음을 가슴 아프게 인식시키고 있다.
<파리대왕>을 읽으면 소년들의 집단적 타락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읽으면 읽어갈 수록 실제의 소년들의 이야기로 읽혀지기 보다는 우리 안의 어린 영혼이 삭막한 현실에서 어떤 선택으로 기울어지는가를 읽는 것 같았다. 무인도라고 하는 공간에서의 상상력은 자꾸만 한 인간의 내면에서 영감이 사라지고 이성이 사라지고 결국 잔인한 본성만이 남아서 본래 가졌던 양심의 울음을 울리는 결말을 보는. 우리 영혼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래 있던 곳. 구원받아 가야할 곳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세상에 급급해있는 영혼들의 울음소리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