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고골이 시골에서 관료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도시로 상경해 겪었던 경험담이 담겨 있다.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작가에게서 이토록 현대적인 서사를 발견해 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도록 만들어주는 단편들의 연속이었다. ‘코’는 본래 ‘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꿈이라고 생각하고 읽지 않아도 좋다. 주인공 꼬발료프는 어느 날 아침 그의 코가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코가 자기보다 더 높은 급수의 관료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아무런 설명도 없는 채로 코 없는 인물이 된 그는 자신이 이제 어느 여인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으리라는 사실 때문에 절망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의심스러울만큼 그의 걱정은 여인들의 시선에만 매달려 있다. 그리고 꿈처럼 다시 코는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꼬발료프는 이전보다 자신있게 자신의 코를 보이며 평온한 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코가 상징하는 것은 그 자신의 남성성일수도 있다. 혹은 관료가 되었지만 오로지 보이는 것은 ‘코’뿐인 무능력일수도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경찰에게 잡힌 ‘코’의 모습처럼 초라한 당시의 관직일 수도 있겠다. ‘외투’는 고골을 사실주의작가로 분류하게 해 준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주의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주인공 아까끼는 정서를 하는 말단관직에 있는 인물이다. 소심하고 소박한 그는 자신의 외투를 새로 구입해야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항할 다른 방법은 없는 법이라 아끼고 아껴서 새 외투를 마련한다. 그가 외투를 마련하자, 주변에서 그를 늘 조롱하던 관리들은 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거기에 참석했던 아까끼는 돌아오는 길에 외투를 강탈당한다. 상심한 그는 경찰서장이며 고급관리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한 채 열병에 걸려 죽는다. 그의 삶에 눈물이 날 정도로 안타까운 것은 그가 누린 소박한 행복의 짧음 때문이다. 짧은 행복을 잠깐 누리고나서 그는 그 행복이 사라진 절망 때문에 급한 죽음을 맞이한다. 때로는 어떤 행복이 사람에게 이길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광인일기’ , ‘초상화’ , ‘네프스끼 거리’ 등 이후 작품에서도 고골의 환상성은 드러난다. 광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기에서는 순서도 없고 어느날쯤인지도 알 수 없는 날짜들이 등장하고, 그가 착각한 것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는 개들의 대화도 등장한다. 초상화에도 역시 악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리대금업자가 등장하여 초상화 속에서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그의 삶을 이어주는 것은 초상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초상화를 지니게 된 인간들의 마음 속 추악함일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악을 품고 있을테니까. 그것이 발현된 계기가 초상화든 그 자신이든간에 말이다. ‘네프스끼 거리’는 화려하지만 비밀을 품은 거리이다. 모두 멋진 모습으로 활보하고 있지만 쫓아가보면 삶의 추악함이 드러나는. 추악함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거리. 그 거리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두 아름다운 여인을 쫓아간 두 남성의 비극적 결말은 이 비밀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있고 가치있기 때문이다. 고골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가진 긴 생명력을 떠올리게 되었다. 여전히 흥미있고 새롭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도 슬픈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그의 삶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