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기억에 자리하고 있는 '연인'이라는 제목이 있다. 아직 어렸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영화의 제목이었다. 당시에는 매우 호기심이 생겼던 영화였으나 나중에 법적으로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어른이 되어서는 호기심이랄 것이 사라진 뒤여서 오히려 볼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사랑이야기가 읽고 싶어지면. 아마도 찾게 되는 제목일텐데. 아쉽게도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사랑을 읽었다기보다는 우울을 읽었다는 표현을 해야 맞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식민지에서 너무 빨리 늙어버린 어린 프랑스 소녀의 우울을 말이다.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녀는 나룻배 위에서 한 중국 남성을 만나게 된다. 소녀에게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었고, 그는 그 매력에 빠져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첫날부터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고, 반면 소녀는 그와 정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미래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결과는 예고되었다. 게다가 소녀는 그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채로 사랑의 행위만 시작된다. 열다섯 나이의 소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남성과의 섹스에 머물도록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그녀 안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우울의 원천은 무엇일까. 

소녀의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어머니의 행동은 소녀에 의해서 종종 '광기'라고 표현될 만큼 과장되고 우울했다. 어머니가 집안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닌 것에서부터 소녀의 우울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큰 오빠의 독재와 폭력. 그때문에 언제나 숨죽여야 했던 둘째 오빠를 향한 안타까움이 소녀 안에서 우울을 키웠다. 어머니가 소녀에게서 그 매력을 이용해 돈을 벌어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라는 추측 또한 소녀가 중국인 남자에게 머무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때로 어머니가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질타하곤 했을지라도 말이다. 이는 소녀가 중국인 남자를 가족들에게 데려가 그가 가족들 사이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지갑역할만을 하는데도 전혀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던 그녀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소녀는 그것이 그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사랑보다 우울에 대해 생각했다. 소녀의 불안정한 정신에 대해. 삶을 파괴하는 모든 것들을 응집해 놓은 듯한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 그리고 모두들 죽었다. 소녀의 서술 속에서 그들은 죽기 한참 이전에도 죽었고, 죽은 후에도 죽었으며, 여전히 살아있음에도 죽었다. 소녀는 모두가 죽은 후에 글을 쓴 것처럼. 그리고 모두가 무덤에 들어간 후에야 모든 감정들을 비로소 깨달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게. 또는 대담하게. 사랑이 우울에 가려져서 절망만이 보였다. 소녀는 중국인 남자의 미래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을 그려넣어보이며 글을 끝낸다. 아마도 그것은 그에게는 소녀 아닌 다른 위로가 있었으면하는 그녀의 마지막 배려가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