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일은 저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저는 단지 바가지 긁는 여자일 뿐 마님 소리는 못 듣는 것일까요?" 당연하다. 마님과 마님 아닌 사람의 경계선에는 그것이 외화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다.
첫 회에 나는 내가 어느 날 부터 마님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정말이다. 마님 소리는 내가 먼저 한 것이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더라? -_-a
아무튼, 경험상 마님의 지위는 이 지배관계가 가정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을 때부터 본격화된다. 삼돌이란 불쌍한 존재다. 자기는 결혼 전의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면 피지배계급이 되어 있다. 삼돌이도 인간인데 스트레스가 쌓인다. 깽판도 간혹 부린다. (주) 삼돌이가 깽판을 부리는 이 상황을 망이 모드, 혹은 민란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님의 지위가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이 민란을 성공적으로 제압해야 한다. 우리집 예쁜 삼돌이라고 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내 작업실 방문에는 삼돌이가 최근 망이가 되었던 때의 흔적 - 발로 문을 꽝 차서 문짝이 우그러진 상태 그대로가 남아 있다.
어떻게 하면 민란을 제압할 수 있는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제 3국의 개입을 요청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혹은 시누이, 혹은 믿을만한 가까운 친구가 부부싸움에 중재자로 나서는 경우들이 있다. 먼 옛날 명성황후는 동학혁명을 제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제 3국 개입 요청은 때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견해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내 나라 내 땅에서 타국이 전쟁을 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 가정이 식민지화되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다.
둘째, 전투에서 결코 패배해서는 안된다. 마님의 지위는 불패의 신화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옳아야 한다. 당신이 틀린 소리를 하면 이미 마님이 아니다. 마님의 말씀은 항상 옳은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당신은 늘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늘 옳게 생각하고, 옳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셋째, 실패한 전투는 역사에서 지워야 한다. 마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간혹, 특히 미숙한 마님 시절에는 실수하는 전투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님의 사서에 패배한 역사가 기록됨은 수치다. 사관을 협박하고 기억을 조작하여 패배한 전투는 그 존재 자체를 시간 속에서 말소시켜야만 한다.
쉽게 말해서.. 싸우면 이겨야 하고, 혹시 지면 그 싸움이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_-;; 딱 감이 오지 않는가? 마님은 뻔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뻔뻔함의 갑옷이란 의외로 약해서 쉽게 부식된다. 고로 나는 여러분이 뻔뻔함 이전에 옳음을 먼저 습득하기를 권한다. 정당한 논리로 중심을 잡고 그 위에 뻔뻔함의 갑옷을 두르면 이것이야말로 무적 치트키다. 그러나 중심이 없는 상태에서 뻔뻔하기만 하면 대내외의 비난으로 일찌감치 몰락한다.
자고로 인자무적이라 했다. 삼돌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삼돌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를 생각하라. 나는 주로 삼돌이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준다. 마님이라고 맨날 누워서 뒹굴거리는 줄 아는가? -_-;; 천만의 말씀. 로마에도 빵과 서커스가 필요했다. 삼돌이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때때로 온갖 여흥을 준비하고 연구한다. 마감에 시달리는 삼돌이를 위해 남들한테는 절대 안 보여주는 춤도 춰주고 노래도 불러준다. 그 밖에 또 뭘 해주느냐고? -_-;; 그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래! (버럭)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늘 덕으로 다스렸음에도 불구하고 (... 덕이 어디 있었지?) 민란은 때때로 발생한다. 민란을 제압할 때의 태도란 어때야 하는가? 우선,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1. 싸울 때 목소리 큰 쪽이 진다.
목소리 크면 장땡일 것 같지만 의외로 안 그렇다. 평소에는 기차화통이 되더라도 이때는 냉정해야 한다.
2. 그렇다고 숨죽여 질질 짜면 진다.
상대가 버럭버럭 화내는데 말대꾸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잉잉 울면 진다. 울지 마라. 울더라도 뜨거운 눈물이 아닌 차가운 눈물을 흘려야 한다.
3. 항상 냉정해야 한다.
전투에 입각해 냉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끗발이라도 냉정한쪽이 이긴다. 상대가 열기를 다 내뿜을 때까지 기다려라. 뜨거운 기운은 쉽게 폭발하고 쉽게 흩어진다. 삼돌이가 평소 쌓아두었던 원한을 다 내뿜을때까지 기다려라. 그조차 못하게 하면 울화병이 생겨서 고장난 삼돌이가 된다. 삼돌이가 원한을 내뿜는 동안 머리 속으로 조용히 생각하라. 이 사태의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가? 물론 대부분의 경우 마님에게 잘못이 있다. ^_^;; 백성의 소요는 본시 통치자의 부덕함에서 오는 것이다. 반성은 속으로 하라. 그리고 당신의 부덕함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삼돌이의 잘못을 증거할 요소가 있는지를 따져보라. 있다면 열기가 가라앉은 뒤 차분하게 제기하라. 아무리 따져보아도 삼돌이가 잘못한 것이 없는가? 그럼 재빨리 빌어라. -_-;;;
비는 것이 마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통치자도 세불리할 때는 토낄 줄 알아야 한다. 무턱대고 억누르려고 하다가는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가 되는 수가 있다. (*주* 러시아의 마지막 짜르 부부)
억누를 때는 태산처럼 억누르되 빌 때는 열라 불쌍하게 빌어야 한다. T_T. 삼돌이로 하여금 '헉 좀 과한 사과인걸' 싶을 정도로 빌어도 괜찮다. 문제는 빈 다음이다. 빌고 나서 재빨리 뭔가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앞에서도 말하지 않았는가? 패배한 싸움은 잊혀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맛있는걸 해주든, 삼돌이가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걸 사주든, 아무튼 삼돌이로 하여금 좀 전에 뭔가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3일 이내로 삼돌이가 실수할 수 있는 상황을 유도하라. -_-;; 준비된 싸움에서는 패배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싸움의 기억을 며칠 전의 패배한 싸움 위에 엎어 씌워라. 덮어서 저장한 파일은 죽어도 되살리지 못한다.
오버 세이브 까지 성공했다고 거기서 그치면 당신은 2급 마님이다. 진정한 마님은 민란 제압 후에 홀로 수루에 앉아 큰 칼 옆에차고 반성을 해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부덕했길래 삼돌이가 민란을 다 일으키는가? 반성 또 반성하여 다시는 같은 이유로 민란이 발생하지 않게끔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나 또한 깨진 문짝을 수리하지 않고 냅두고 있다. 그리고 그걸 볼때마다 반성하고 있다. 조만간 철문으로 해달아야 다시는 성질 부릴 때 방문을 걷어차지 못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