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매뉴얼의 코어판을 출판해보라는 각계의 성원이 답지하고 있다. 기쁘다. 그러나 정작 출판사에서는 전화가 안온다. 슬프다. 정녕 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인가? (... 내 고향이 출판사였던가? -_-)
아무튼, 진도를 나가자. 사람들은 흔히 마님과 삼돌이의 관계를 악처와 공처가의 관계로 오인하곤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 두 관계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악처 밑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나와도 마님 밑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마님과 삼돌이의 관계가 폭력으로 성립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마님은 주먹을 (혹은 발을) 써서 삼돌이를 지배하는가? 아니다. 솔직히 귀여운 삼돌이 때릴 데가 어디 있다구 주먹을 대겠는가? -_-;; 잘못 때렸다가 다리몽둥이라도 분질러지면 장작은 누가 패고 물은 누가 길어오는가? 매를 아껴야 한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폭력이 강위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임을 삼돌이가 깨닫게 해서는 안된다. 왜냐? 원래 아랫것들이 주먹이 쫌 세다. -_-;; 맞장 뜨면 불리하다. 폭력으로 대화하는 법을 잊게 만들어야 한다. 폭력이 대화의 한 방식, 그것도 매우 강위력한 방식임을 우리의 삼돌이들이 깨닫게 되면 형국은 마님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간다. 그러니 우리들은 마님 계급이 사실은 맷집이 좋다는 비밀을 삼돌이 계급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잘못 맞으면 사망이라는 유언비어를 끊임없이 사회에 유포시켜야 한다. 시시때때로 팔다리 허리가 아파야 하며, 무거운 걸 들면 낯빛이 창백해져야 한다.
깨달았는가? 연약한 척 하는 것은 연애할 때 써먹을 일이 아니다 -_-++ 연약한 척은 아줌마 되고 나서 써먹어야 한다. 물론, 1vs1 에서 삼돌이를 십초 이내에 제압할 무력이 당신에게 있다면 구태여 연약한 척 할 필요 없다. 단지 그것 뿐인가? 아니다! 때로 마님은 호랑이처럼 사납고 표범처럼 날쌜 수 있다는 사실도 주지시켜야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시골로 이사온 첫무렵, 만삭의 배를 안고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 시골길에 산보를 나갔다. 시골에서는 송아지만한 개들을 풀어놓고 키운다. 개들은 영역 다툼에 민감하다. 괴상하게 생긴 이계의 개들(요크셔 테리어, 슈나우저 등등)이 자기 영역에 침범한 것을 깨달은 한 똥개가 우리 강아지를 향해 돌진했다. 그 커다란 앞발로 요크셔 테리어를 쓰러뜨린 뒤 짓밟고 목을 물려는 순간 (이때 우리 요크셔는 싸움이라고는 해본적이 없어서 그냥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삼돌이는 저 뒤에서 담배를 물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_-;; 남산 만한 배를 안고 개와 격투를 벌였다 (...) 물론 내가 이겼다 -_- V 그 뒤 나를 바라보는 삼돌이의 시선에 존경과 경외감이 깃들이게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 아니라고 하지 말라구 -_-++)
만약 당신의 행동 패턴이 삼돌이에게 예측가능한 어떤 것으로 파악이 되어버린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도무지 마님이 어떤 인간인지 짐작도 할 수 없어야 당신은 성공할 수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 뻔뻔하기야 하겠어?'라고 할 때 그렇게까지 뻔뻔해야 하며, '이건 마님이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을거야'라고 할 때 용서해 줄 줄 알아야 한다. 게임과 마찬가지다. 게임의 규칙이나 보이지 않는 수치가 다 파악이 되어버리면 이미 그 게임은 재미없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계속해서 파악되지 않는 랜덤 수치가 흘러나와준다면 아직 파볼 가치가 있는 게임이 된다. 여러분은 영원히 파악되지 않는 게임으로 남아야 한다.
또한, 삼돌이의 취미생활을 격려 고무 시켜줘라. 통치는 무력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참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에 유달리 집착하기도 하고 그걸 신주단지 모시듯 하기도 한다. 물론 돈 아깝다. 그러나 그 돈 몇푼으로 가정에 평화가 온다면 이 아니 기쁠소냐? 만화나 게임에도 YWCA 권장종목이 있듯이 이 취미에도 권장할 만한 것이 있다.
요리 취미는 적극적으로 살려줘야 한다. 가능하면 없던 요리취미라도 생기게 해주는 쪽이 좋다. 사실 남자들이 여자보다 요리 잘한다. 중국에서는 '냄비 돌리려면 손목 힘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남자가 요리장이 많다고 하고, 일본에서는 '회 뜨려먼 손이 따뜻하면 안되는데 여자들이 체온이 높아서'라는 이유로 남자 요리장이 많다고 하는 믿을 수 없는 설이 있다. 아무튼 뭐 그런데서 남녀평등 따지지 말자. 남녀는 원래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달과 6펜스 사이에 평등 따져서 뭣하랴? -_-;; (어느 쪽이 달이냐고는 묻지 마시고..)
사회적으로는 평등을 따지는 것이 유리하지만 개인관계에서는 명분보다 실리다. 전문 요리사에 남자가 많다는 것을 늘 화제에 올려라. 라면도 제대로 못끓이는 우리 삼돌이가 알고 보면 놀라운 요리 재능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게 하라. 그리고 만화책을 사다줘라!
나는 원래 만화 사는 취미가 없던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은 만화 사는 취미가 있다. 처음에는 깽깽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놔둔다. 서가에 만화책이 수천권 꽂혔다. 집구석이 대여점화 되어간다. 그래도 참는다. 다 그게 남는 거다. 요리만화에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물론 필독서는 <아빠는 요리사>다. (.. 전권 다 있다)
자백은 (.. 우리집에서의 별명이다) 처음에는 정말 요리 못했다. 김치찌개라고 끓여오는데 왜 이렇게 맛이 없는지 (우우우욱) 아니, 어떻게 설탕을 넣지도 않는데 찌개가 달착지근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당신이 요리기능이 첨가된 삼돌이를 얻고 싶다면 삼돌이가 해오는 첫번째 요리가 아무리 맛이 없어도 절대로 그 티를 내서는 안된다. 나는 눈물과 함께 첫 찌개를 먹었다. 그리고 찬사를 보냈다. 칭찬해주면 정말 잘하는 줄 알고 자꾸 한다. 물론 한동안 괴롭다. 밤마다 고통당하는 위장을 안고 울며 지새운 밤이 여러 날이다. 출판사에서 뽀려온 요리책 부록을 책상 옆에 슬그머니 놔두기도 하고, 여러 종의 요리 만화책도 사다 줬다. 그 성과로, 오늘 날은 그럭저럭 인간이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어낼 줄 알게 되었다. (..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도 내가 한 음식보다는 자백이 한 쪽이 맛있단다... )
칭찬도 매일 똑같이 하면 곤란하다. 여기 그 단계별 노하우를 공개한다.
1단계: 아빠는 요리사 급 -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외친다. "오오, 이거 맛있는걸? 아무리 배가 불러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 -> 요리 취미 초급 단계에서 쓸만하다.
2단계: 맛의 달인 급 - 음식을 입에 넣고 잠시 침묵해야 한다. 재빨리 머리 속에서 미리 준비한 대사를 확인한 다음 내뱉는다. "우웃, 이 된장찌개의 맛은, 마치 추운 겨울의 얼음을 뚫고 막 돋아나기 시작한 풋풋한 새싹의..." 물론, 그 뒤에는 재료에 대한 언급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호박은 **마트의 떨이상품으로 가격대 성능비가 탁월한 그것...! 당신 정말 짱이야.' 잘만 하면 삼돌이는 요리 뿐 아니라 장보기에까지 프로 정신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3단계: 중화요리급 - 요리의 각 분야에서 프로정신을 발휘하게 된 삼돌이는 어느날 좀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릴 것이다. 그때쯤 이 중화요리급 칭찬이 나와줘야 한다. 요령은 다음과 같다. 요리를 입에 넣는 순간 허공에 <好> 자를 크게 그린다. 눈알을 3cm쯤 앞으로 돌출시키고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감탄한다. 당신의 삼돌이는 자신의 요리 실력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기뻐할 것이다.
물론, 사실은 맛없는데 맛있는 척 하고 먹으려니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 이해한다. 가끔은 비판도 해줘야 한다. 그러나 비판도 '맛없어!' 정도로는 곤란하다. 센키에비치의 명작 쿠오바디스를 참고하라. 다음과 같은 대사가 좋을 것이다. 요리를 입에 넣고 잠시 침묵한 뒤에 삼돌이가 "왜? 맛이 없어?"라고 그럴리 없다는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물으면.
"물론 맛있어. 하지만 당신이 끓였다고는 믿을 수가 없어. 만약 이 요리가 그저 평범한 신라호텔 요리장이나 힐튼호텔 쉐프의 솜씨라면 나는 그들을 칭찬할거야. 그러나 당신 정도의 천재가 이 정도 맛 밖에 못낸다는 것은 재능의 낭비야. 당신 요리가 요즘은 어째 매너리즘에 빠진 것만 같군."
생각 있는 삼돌이라면 진지하게 반성하며 다음번에는 그나마 먹을 만한 것을 만들어내올 것이다.
어쨌거나 요리 옵션이 부착된 삼돌이와 함께 살려면 입맛에 대해서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스스로를 실험작 맛보기 마루타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원래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참고 산다. -_-;;
* 그러나 이런 나도 괴로운 것이 있다! *
자백의 외호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두부마왕'이다. 자백의 인체는 10퍼센트가 물, 50퍼센트가 술, 나머지 40퍼센트가 두부로 이루어져 있다. 두부를 너무 좋아한다. 이 인간은 세상 모든 요리에 두부가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자백을 유괴하려면 두부로 유괴하면 될 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어쩌다가임이 중요하다) 내가 찌개라도 좀 끓여줄려고 한다고 치자. 간까지 다 맞추고 마지막으로 좀 더 끓이기 위해 뚜껑을 덮어놓고 밥을 푸러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뚜껑을 열어보면, 거짓말처럼 찌개 위에 하얗게 두부가 덮여 있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두부 들어가는 것 정도는 참을 수가 있다. 천만번 양보해서 부대찌개까지도 참을 수 있다. 삼계턍을 끓여도, 갈비탕을 끓여도 고개 잠깐 돌렸다가 돌아와보면 두부가 우히히 웃고 있다. 무섭다. 나도 원래는 두부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두부가 무섭다. -_-;;
지난 번 무림향 엠티에서도 이 두부마왕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애초에 두부를 사가지 않았으니 엠티의 찌개에서는 두부가 안 들어갈 줄로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자백이 슬금슬금 민박집 바깥으로 나갔다가 5분 후 득의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다. 손에는 두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정말 무서웠다. 그 깡촌에서까지 두부를 찾아내는 본능적인 감이라니. -_-;;
게으른 우리집 부부를 위해 식료품 조달을 해주시는 어머니는 장모 사랑은 사위랍시고 두부를 샀다 하면 한 판씩 사둔다. 그거 다 처리하려면 미칠 노릇이다. 며칠째 두부를 먹어야 했던 불쌍한 아버지...... 그래도 양심은 (쪼금) 있었는지 둘만 있을 때 자백이 물었다.
"장인 어른. 두부만 드시려니 괴로우시죠?"
본래 말이 없는 우리 아버지. 딱 한 마디만 주저주저 꺼내셨다.
"... 나도 원래는 두부 안 싫어했어."
인생이란 괴로운 것이다. 요리 옵션 추가된 삼돌이를 고용하려면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미식가 여성이라면 포기해야할 노릇이다. 다행히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