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달력을 펼쳐보며 해가 가리워진 창밖너머에 잠시 시선을 돌린다. 1월 1일..병술년의 첫날..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구름 위에서 언제나 빛나고 있는 태양이건만 이렇게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나라는 개체의 한계는 어쩔 수 없이 절망과 슬픔의 더께 너머로 항상 굴절되고 왜곡되게 태양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뭔가 새로운 것들이 일어날 거란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처음 대면을 하는 거울 속 내 얼굴마져도 밝아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밝은 표정이 새해를 새롭게 만들어갔던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란 생각이 든다.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었던 나날이었지만.
2. 어제 '왕의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문제적 인간 '연산'이라는 연극을 예전에 접한 적이 있었는데, 폭군 연산이라는 이미지에서 인간 연산으로 그를 다시 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 영화도 원작은 연극 이(爾)이고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더욱 극적인 인물들인 장생과 공길이라는 광대를 내세워 한 판 놀이와도 같은 우리네 삶을 표현하고 있다. 절대권력자 연산은 아버지 성종의 그늘과 정치적인 이유로 어미가 죽임을 당한 과거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이고 녹수는 그런 왕의 모성결핍을 이용하여 천출 기생의 신분에서 왕의 여자로 -오히려 왕을 치맛폭에서 희롱하는 인물- 그려진다. 권력구조의 비합리성과 그 구조를 받히고 있는 신하들의 부정부패를 '풍자와 해학'으로 조롱하며 당당하게 궁에 입성하는 장생과 공길은 궁이라 불리는 절대권력의 핵심조차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사의 한부분임을 통찰하게 된다. 그러나, 권력자의 손에 쥐어진 힘이 원칙과 합의없이 무작위로 휘둘리게 되었을 때 그 영향력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은 가장 힘없는 이들임을 알게 된 그들은 연산과 녹수가 그 힘의 정점에서 무너지는 그 때(아래에서 연산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우고자 하는 기운이 열매를 맺고 마침내 궁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그 때) 죽어서도 왕도, 양반도 아닌 광대로 태어나 신나게 한 생을 자유롭게 놀아보겠다고 하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은 생을 비유한 공중 줄타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솟구침'의 재주를 부린다. (이 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름답게 본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그들의 생의 마지막을 잡아준 감독과 연출의 센스는 탁월한 것이었다.자신의 삶을 있는 그 자리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
3. 간만에 때목욕도 했고, 오늘은 집정리 정돈과 청소를 하고 새로 사들인 다이어리에다 첫 말을 남길 것이다.
현재를 즐기자. 한 판 놀이와도 같은 세상이라면 신나게 놀다라도 가야하지 않겠는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