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난자기증 운동'에 동의할 수 없다

[주장] 약자와 소수의 인권유린 부를 수 있어

 

출처: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94612

 

먼저 난자 기증을 결심한 많은 기증서원자들과 난자기증재단 설립을 주도한 이수영씨와 설립에 참여한 모든 분들의 숭고한 뜻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 분들의 숭고한 뜻이 자칫 본의 아니게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이것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째, 이번 황우석 박사 연구팀 사태에서 드러났듯 배아줄기세포 연구에는 많은 난자가 사용된다. 난자가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여성계는 종교계의 생명윤리 차원을 넘어 여성의 인권이 유린될 수 있음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여성계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활성화될 경우, 호르몬 주입을 통한 과배란 유도가 성행하게 되므로 여성의 몸에 심각한 인권침해가 조장될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난자 제공에 착수하려면 해당 여성은 다음 생리일까지 각종 검사를 받으며 기다려야 한다. 생리일이 다가오면 호르몬제 등의 주사를 맞아야 하며 12일에서 14일 동안 채혈 마취 등을 병행하면서 난자를 키워야 한다. 이 호르몬 자극이 성공적일 경우, 주사 바늘을 공여자의 질벽을 통과하여 난자를 추출하게 된다. 이 경우 호르몬의 과대 자극, 주사 바늘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손상, 자궁암의 위험 그리고 이 시술로 인한 잠재적 유해성이 있는 장기적 결과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둘째, 어쨌거나 난자는 기증하는 과정에서 한 달여간 호르몬 주사를 맞고 그 후유증이 심각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 식으로 난자 기증이 국익을 위한 애국 행위요 난치병 환자를 위한 박애 행위로 이야기된다면, 난자를 기증하지 않는 불치병 환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고통받는 가족이나 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는 연구원 난자 제공 문제를 자체 조사하였는데, 조사 결과 한 IRB 관계자는 "2003년 연구 초기 실험실 연구원들이 난자가 모자라자 난자 기증을 자처하고 나섰다"며 "황 교수가 '너희가 그러면 되느냐'고 말렸지만, 이들이 난자 기증을 강행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들의 입장이 충분히 상상이 된다.

연구는 이제 뭔가 큰 성과를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난자가 부족해 연구가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난자를 제공할 능력이 있는 여자 연구원들은 당연히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설사 남자 연구원들은 그런 마음이 없는데도 괜히 남자 연구원들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뭐해, 자진해서 기증하지 않고…'라고 하는 것 같이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래서 연구자가 아무리 자진해서 기증하겠다 해도, 연구자의 기증 난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자 연구원이 난자 기증에 대한 무형의 압박을 받을 수 있듯이 난자기증운동이 국민운동이 되면 난치병 환자의 친지들은 '다른 사람들도 난자를 기증한다는데 불치병을 앓는 남편과 식구를 위해 당신은 당연히 해야지'라는 무형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사고로 척수가 손상되어 20년동안 남의 도움으로 소대변을 처리해야 하고 항상 욕창에 시달리며 10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심지어 혼자서는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는 전신마비의 여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배아줄기세포연구가 이 손상된 신경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해도 아내나, 딸, 누이들에게 난자를 기증하라고 말할 수 없다. 도리어 난자를 기증하지 않으면 비정한 사람으로 치부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난자를 기부하겠다고 나서도록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내 장애가 다시 한 번 원망스럽게 생각될 것이다.

셋째, 난자기증재단 설립에 참여한 분들이 자발적으로 재단을 구성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공교롭게도 < PD수첩 >이 황우석 교수팀 연구의 문제점을 방영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내자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이 급급하게 변명성 기자회견을 하는 시점에 이 재단 설립이 발표되었다. 차라리 이 사태가 좀 진정된 후 조용히 출범식을 갖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난자 기증을 활성화해서 국내의 줄기세포연구를 지원하고 난치병 치료를 앞당겨 많은 불치병 환자를 구원하며 미래 한국을 먹여살릴 산업을 창출한다는 대의는 좋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확실하지 않은 대의를 위해 약자와 소수의 인권이 유린되거나 윤리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난자를 기증하고자 하는 분들의 숭고한 뜻도 물론 존경하지만, 그것을 대의로 내세워 강조하는 이런 운동은 자칫 새로운 인권유린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배아줄기세포연구가 신경재생이나 난치병 치료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성인줄기세포의 효율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최근 네덜란드의 한 회사에서 개발한 골수성인줄기세포치료법은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고 있어 전세계의 집중을 받고 있다. 성장인자주입술, 대식세포이식술, 레이저치료법 등 다양한 치료법이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윤리적인 부담을 떨칠 수 없는 배아줄기세포만이 대안이라고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일로 혹자가 < PD수첩 >의 제작자를 '반역자'라고 몰아붙이는데, 동료 장애인들이 나에게는 '배신자'라고 할지 모르겠다. 필자는 줄기세포연구로 큰 혜택을 입을 수도 있는 척수손상인이다. 그리고 신경재생의 염원을 가슴에 품고 지난 10년간 신경재생연구자료를 국내 척수장애인들에게 제공해온 수레바퀴정보통신센터 신경재생포럼(www.wheel.or.kr)의 운영자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줄기세포연구를 지지하고 미국 척수손상인들의 포럼(www.carecure.org)에서 이번 사태에 대하여 황 박사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들을 계속 실어왔다. 한국 과학자를 보호하려고 애를 쓰는 조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인권과 윤리문제를 무시하고 무조건 난자를 기증하자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분명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는 오마이뉴스. 저자는 김종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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