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순수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
2. 여(女)
사랑이란 이름의 정열이 식고 난 후엔 예전에 상대를 반하게 만들었던 특성들이 연인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든다. 마치 술에 흠뻑 취했던 어느 날 느꼈던 만족감이 그 다음날 골을 심하게 강타하는 숙취가 되어 돌아올 때처럼.
"왜...왜...왜....그랬던 걸까? 모든 것을 취소해버리고 싶어.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물밀듯 닥쳐오는 후회의 감정. delet 키를 허겁지겁 찾게 된다. '벗어나고 싶어..벗어나고 싶어..'가 머리 속을 짓누르고 있어서 그 키를 눌렀을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해선 미리 고려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delet 키를 누르게 된다.
---- 삭제 되었습니다.----
3. 남(男)
기억삭제를 당하는 밤은 사랑의 기억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떠올려야 했던 밤이었어. 사금파리처럼 빛나던 순간들도 함께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저항했지. 오~ 제발 이 기억만은 삭제하지 말아주세요. 너의 기억을 끌고 다녔던 고단한 밤에 넌 기억을 숨기는 법을 알려주었어.
"몬타우크에서 우리 다시 만나."
그리고,
----- 삭제 되었습니다.----
4. 남과 여 (男과 女)
낯선 여자와 낯선 남자가 몬타우크에서 만났다.
또다시 사랑에 빠지다.
"뭐 어때.."
"그러게,,,뭐 어때.."
5. 융..그리고, 아니마와 아니무스.
융은 인간의 내면에 대해 말하면서 남성의 경우에는 '아니마', 여성의 경우에는 '아니무스'라고 불렀는데, 아니마의 원형은 남성 정신의 여성적 측면이고 아니무스의 원형은 여성 정신의 남성적인 측면이라 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남성 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이 모두 분비된다는 생물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태도나 감정 등의 심리학적 의미에서도 각각 이성(異性)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여러 세대를 걸쳐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 이성에게 적절히 반응하고 이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남녀의 특성을 담아둔 것이다.
즉, 남성은 여성상을 유전으로 물려받아서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기준을 만들고 그에 큰 영향을 받아 특정한 여성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마의 맨 처음 투사는 항상 어머니에게 행해지고, 마찬가지로 아니무스의 최초 투사는 아버지에게 행해진다. 후에 남자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여성에게 아니마를 투사한다. 남성이 '정열적인' 매력을 느낄 경우 그 여성은 그의 아니마 여성상과 같은 성향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반대로 남성이 '혐오'를 느꼈을 영우 그 여성은 그의 무의식적 아니마 여성상과 갈등을 유발하는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성이 아니무스를 투사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융 심리학 입문>에서 발췌
6. 연애는...
서로의 영혼의 반쪽을 찾는 것일지 모른다. 내 내면의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라는 이름의 반쪽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를 들고 실재(實在)하는 이성(異性)속에서 찾는 일.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하루끼의 소설 속 100%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한 소녀와 맺어지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란 영화를 보면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이지?"라는 질문이 계속 반복되는데 인간은 성장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의 틀로 바라보던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내면의 이질감은 여태껏 통일감을 느끼던 내면에 불안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관계맺음을 위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왔음을 알려준다.
이와 같은 내면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100% 부합되는 이만 만나면 사랑이 저절로 이루어 질거라 여기는 많은 이들을 대신해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의 기억을 삭제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거치면서 '뭐 어때~'라는 말로 서로의 결점또한 인정을 하고 함께 살아가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