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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they be two, they are two so
As stiffe twin compasses are two.
Thy soule the fixt foot, makes no show
To move, but dotth, if theother doe.

And though it in the center sit,
Yet when the other far doth rome.
It leanes, and hearkens after it,
And growes erect, as that comes home.

Such wilt thou be to mee, who must
Like thother foot, obliquely runne;
Thy firmnes makes my circle just,
And makes me end, where I begunne

우리 영혼이 둘이라면, 우리 영혼은
견고한 한 쌍의 콤파스의 다리가 둘인 것처럼 둘이다.
그대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 움직이면, 움직인다.

비록 그대의 다리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지만,
다른 다리가 멀리 떠나가면,
그것은 기울고, 그 뒤를 따라 귀를 기울이지만,
다른 다리가 돌아오면, 바로 곧게 선다.

그대는 나에게 있어 그러하다. 나는
다른 다리처럼 비스듬히 달려야 하지만,
그대의 확고함이 나의 원을 올바로 그리고 하고,
내가 시작한 곳에서 끝나게 한다.

                              John Donne, 중에서..

이별에 아파하지 말라고 노래하는 존던의 위트에는 사랑과 콤파스가 만나고 있다. 사랑과 콤파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가지 시적 상관물은 '콤파스가 그려내는 원'에서 이별의 아픔과 닿게 된다. 이 처럼 동떨어진 대상들이 외양에서가 아니라, 한층 더 깊은 의미의 영역에서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어 시로 노래한 자들을 문학사에서는 '형이상학파 시인들(Metaphisical poetry)'이라고 한다. 17세기 영문학은 형이상학적 시인들이 위트와 풍자로 가득찬 창조적 문학의 꽃을 피운 시대였다.    < 출처 : Jiva님의 블로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원은 삐뚤어지게 된다.

그대는 당신의 자리를 확고히 했던가?

그리고, 나는 당신의 손을 놓치지 않고 끌어당기고 밀면서 그대를 견뎌냈던가?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처럼 내가 그린 원은 긴타원에다 고르지 못한 굴곡을 가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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