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3-4 [류시화]  

3

하이쿠는 기본적으로 서정시이다. 그러나 하이쿠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이쿠가 의미를 배제하는 무의미의 시라는 평은 옳지 않다. 오히려 하이쿠는 바하의 음악처럼 의미를 목표로 한다. 모든 존재의 참본질은 그 스스로 시적이다. 하이쿠가 목표로 하는 것이 바로 모든 존재의 참본질에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이다.
바쇼, 이싸와 더불어 하이쿠의 3대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부손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비 한 마리 절의 종에 내려앉아 졸고 있다.

봄날 오후, 햇살이 나른하게 내리비치는 절의 법종에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아 졸고 있다.... 이 시를 단순한 풍경 묘사로 여기고 끝나서는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풍경과 정황을 묘사하지만 하이쿠는 더불어 독자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고요한 산사, 커다란 종각에 날아와 앉은 작은 나비 한 마리, 그 나비는 지금 졸음에 빠져들어 있다. 그러나 잠시 후, 절의 승려가 마당을 걸어와 꽝!하고 종을 칠 것이다... 졸음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비가 놀라는 순간, 그 순간 세계 전체가 놀란다. 존재 전체가 놀란다.
그러나 만일 이 모든 것을 시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면, 그 효과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참본질에 다가가려면 설명이 아니라 직관과 느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는 다 떨들어대지 않는다. 큰 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에머슨은 말하고 있다.


"당신이 너무 크게 말하면 난 당신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

시는 사물들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한다. 시인이 사물을 제치고 너무 크게 떠들면 독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시인이 할 일은 그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따라서 시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큰 소리로 말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 자신이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에머슨은 또다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존재가 이미 많은 것을 내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입으로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벌레와 귀뚜라미와 벼룩 같은 작은 생명체들에 놀랄 만큼 관심을 가졌던 이싸는 이렇게 썼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 위에서
아직도 벌레가 노래를 하네

물이 불어 쏜살같이 흘러가는 가을강 한복판, 잎사귀 몇개를 매단 나뭇가지 하나가 떠내려가고 있다. 나뭇가지는 머지않아 급류에 휘말려 물 속에 잠기거나 뒤집힐 거이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 위에서 풀벌레 한 마리가 그런 사정도 모른채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하이쿠의 시인들은 이러한 정황을 자주 묘사한다. 생의 유한함,어쩔 수 없는 허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4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이쿠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손짓, 반쯤 열린 문, 깨끗이 닦인 거울이다. 그것은 자연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이다.
여기 바쇼의 시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시인은 추운 겨울, 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가 좌판에 놓인 도미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렇게 썼다.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도미 잇몸이
시러 보인다


이 순간, 우리 자신의 잇몸이 시리다. 생선 가게 좌판에 놓인 그 도미는 나 자신이고 나의 동료 인간들이다. 바쇼의 이 시를 통해, 아니 이 반쯤 열린 문 또는 거울을 통해 우리는 어떤 정지된 삶과 그것이 일깨우는 생의 고독한 의미를 흘낏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 만남이나 이별 같은 생의 불가사의한 일들은 왜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하이쿠 시인들은 그 생의 여행 도중에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들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전한다. 인생은 유한하고 덧없는 것이라고, 우리는 벌레들처럼 노래하다가 또는 노래하지 않다가 떠나는 것이라고....... 이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벌레들조차도
어떤 놈은 노래할 줄 알고
어떤 놈은 노래할 줄 모른다


말의 유희에 불과했던 초기의 하이쿠를 인생과 자연의 뛰어난 문학 형태로 발전시킨 시인 바쇼는 애벌레 한 마리를 보면서 자기 자신과 세상 사람 모두를 향해 이렇게 읊조린다.

가을이 깊었는데
이 애벌레는
아직도 나비가 못 되었구나


늦은 가을녘, 아직 나비가 못 된 것은 이 애벌레만이 아니다. 생의 가을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애벌레 상태로 남아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여기에 있다. 시인은 또 '장마가 길어지자/누에벌레는 뽕나무밭에서/ 시름시름 병이 들었다'고 적고 있다. 누에벌레는 때가 되면 고치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얼마 후 날것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런데 여름 장마비가 길어져 이 누에벌레는 여전히 애벌레 상태로 남은 채 시름시름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본 출처: http://www.haiku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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