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글쓰기 행위'란 무엇인가??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폴 오스터 만큼이나 이 문제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고민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이 소설 또한 실험적인 작법과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달의 궁전' 과 '타자기를 치켜세움' 이후로 세번째로 접하게 되었는데,  달의 궁전만큼 깊이 있고 아름다운 문장들과 사색은 아니어도 긴박감과 소설속의 속도감, 슬그머니  3개의 이야기가 연달아서 펼쳐지는 그의 화술에 말그대로 '얼이 빠진 채'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이야기는 너무나도 단순하게 시작된다. 시드니 오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글쟁이인 그는 와병중에 있다가 병원빚으로 4만달러 가까운 빚에 쪼들리는 인물인데, 어느날,'파란색 포르투칼제 공책'을 구입하면서 뭔가에 홀린듯 글을 써 나가게 된다. 시드니 오어라는 인물의 정보는 길고 긴 각주를 통해서 얻을 수 있고, 그가 '파란 색 포르투칼제 공책'에다 '플리트 크래프트 이야기 - 석회석 이무기 상이 11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피한 한 남자(닉 보언)의 이야기'-를 쓰게 되면서 책은 닉 보언이란 소설속 인물과 작자인 시드니 오어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좀 더 복잡해져 간다.

이 닉 보언이란 인물은 석회석 이무기 상이 자신에게 곧장 떨어지는 것을 한발차이로 우연히 피하면서 필연에 의해 죽는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삶은 좌우될 수 있음을 깨닫고 아내도 버린 채, '신탁의 밤' 이라는 미발표 소설을 쓴 작가의 손녀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날아가 버리는 인물..

그리고, 다시 끼어드는 '신탁의 밤'이란 소설 속 인물 '르미엘 플레그'의 이야기...눈이 멀어버린 대신에 미래를 예언하게 된 플레그는 자신의 미래를 살펴보고는 그 운명에 고뇌하다 자살하고 만다는 그의 이야기..

닉 보언의 이야기를 쓰고 있던 시드니 오어는 자신의 아내인 그레이스의 대부(代父)이며 유명한 작가인 존 트로즈 또한 '파란색 포르투칼제 공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전부터 그 공책에다가 작품을 써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존 트로즈와 그레이스의 이야기가 다시 끼어들게 되면서 더욱 복잡해지는 이야기..

문제는 글쓰기이다..

의식하지 않았건, 의식했건 간에 현재에 살고 있으면서 글쓰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넘어가게 되는 미래의 영역....실제로 일어나던, 일어나지 않던 간에 글쓰는 이는 그의 머리속에서 수많은 문학적인 예언과  끔찍한 결말과 접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얼마나 두렵고도 책임막중한 일이겠는가??

럼에도 불구하고 써야하는 글쟁이들은 어쩌면 신탁을 받아들고 길한 일 뿐 아니라 흉한 일도 언급해야 하는 '무당'과 같은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신내림..흐흐..

[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린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인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

푸른 포르투칼제 공책에 먼저 작품을 적었던 존 트로즈의 말이다.

절필이나 작가 활동 중 유난히 오랜 침묵의 시간을 갖고 있는 이들 또한 이와 같은 '글쓰기'의 두려움 때문은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미래'를 결정하게 만드는 말의 힘, 글의 힘에 다시한번 납작 엎드리면서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는 고백을 이자리를 빌어서 하게 되는구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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