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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샘 메서 그림,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1. 어린 시절에 나는 집에 있는 모든 인형들과 물건에다가 이름을 붙여주고는 밤에 잘 때는 그 녀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며 '잘 자' 라고 말하곤 했었다. 밤마다 연례행사처럼 진행되었던 '이름 부르기' 밤 인사는 울 엄니를 긴장시켰나 보다.
"얘야~ 자꾸 그러면 귀신 나온다~ 하지마라~"
귀신...
어린 시절 얼마나 무서운 단어였던가?
실체를 알지 못해서 더욱 무서운 단어!!! (오들오들!!!)
엄니의 한 마디 때문에 '이름 부르기 밤인사'는 더이상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 녀석들이
귀신 때문에 잠들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더랬다.
모든 사물에 생명이 있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에서 이만큼 떨어져 나왔다..
참 메마른 하루하루..
그러다 우연히 집어들게 된 책 "폴 오스터의 [타자기의 치켜세움]" 은 신선한 자극으로
나에게 와닿았다.
#2. 그래서 나는 내 고물 타자기를 고수했고, 그러는 사이 1980년대는 1990년대가 되었다. 내 친구들은 하나씩 차례로, 모두 매킨토시와 IBM으로 옮아갔다. 나는 발전의 적, 디지털 전향자들의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비전향자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내 친구들은 새로운 방식에 저항하는 나를 놀려 댔다. 나를 노랑이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반동분자, 옹고집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내게도 좋은 법이라고는 없는데, 무슨 이유로 내기 있는 그대로도 완전히 행복할 때 변화를 해야할까?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내 타자기에 특별한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내가 일을 하도록 해준 도구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멸종 위기에 있는 종, 20세기 호모 스크립노루스homo scriptorus의 마지막 가공품들 중 하나가 되었으므로 나는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좋건 싫건, 나는 그 타자기와 나의 과거가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미래 또한 같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3. [타자기를 치켜세움](2002)은 오스터가 1974년 이후로 그의 모든 작업을 했던 수동식 올림피아 타자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샘 메서라는 화가 친구가 그의 수동 타자기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가 작업하던 수동 타자기의 모습이 '또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놓은 글이다.
샘 메서가 그린 타자기 그림이 책 내용 속에 빼곡이 들어차 있고, 이 책의 글자체 또한 '보도니 서체'라고 불리는 타자체로 쓰여져 있다. 책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수동 타자기가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림 속의 타자기는 이빨을 잔뜩 들어낸 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하는 또다른 존재로 그려진다. 마치 만화속 주인공들이 머리 위로 전구 불빛을 반짝거리며 아이디어를 내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종이위에 뱉아내는 독특한 전달방식을 가진 생물체와도 같은 수동 타자기...
이 생물체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전화를 하고, 간간히 이 존재 위에다 두 손을 올려놓고 대화를 하는 폴 오스터의 작업 광경은 마치 마술을 하는 듯 샘 메서의 그림을 통해 표현이 되어 있다.
이처럼 친구 샘 메서를 통해 '수동 타자기'의 존재는 새롭게 인식되어서 ' 타자기와 자신의 과거가 같으며, 미래 또한 같을 것'이라고 폴 오스터가 말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마치 장인의 손에서 빚어진 물건들이 장인의 생명을 나누어 가지게 되어 나중에는 스스로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처럼...
#4. 모든 사물에는 생명이 있다는 '애니미즘'을 미국 작가인 폴 오스터의 '타자기를 치켜세움'을 통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