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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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뛰어들게 됐지.

이젠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

우린 참 이상한 존재야. 우리 자신에게조차 말이야 

 - 데미언의  대사 중에서

아일랜드를 떠올릴 때면, 난 내 고향을 떠올리곤 한다.

 막연한 착각일 수도  있지만,

 짙은 땅, 사람의 정신을 일으켜 세우는 강한 바람까지..

 그리고, 그 땅의 노래들은 왜 이렇게 저릿저릿한가.

  
놓칠 뻔 했던 이 영화를, 오늘 운좋게 <나다>에서 보고,

 그 짙은 초록 색감과 굽힐 줄 모르는 두려움을 넘어선 강한 신념에
 
내 정신은 흔들렸다.

 
때때로 이렇듯,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할말이 없는 영화들이 있다.

 
덕분에 오늘 영화 보고 나서, 합주를 할 때는 갈대처럼 조그만 소절에도 난 꺾여 들었다.

 
모든 신념을 잃어버린 시대가 지금이 아니던가.

 무언가를 붙잡고 매달리고 싶지만,

 이미 그런 절대적인 것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안 그런 척, 유희하고, 소비하고, 고개를 돌릴 뿐이다.

 
허상이었다 할 지라도, 자신의 목숨까지 던질 수 있다는 건 명백히 또 행복한 일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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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 - Psych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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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을 떠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 대등하게 이 영화 싸이코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얘기 꺼내는 밤..

우선, 기억에 남는 다섯 신을 꼽고 얘기를 더 풀어보자.

 
하나. 그 유명한 욕조신

돈을 갖고 도망 나온 마리온이,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유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샤워를 하는 신. 어느새 화면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소리와 이 순간, 안도의 웃음을 흘리는 마리온의 표정이 지배한다. 그리고 순간, 불투명한 샤워커텐 뒤편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실루엣.

그리고 화면을 어느새 지배하는 마리온의 비명.

참고로, 마리온이 욕조에 들어가 샤워를 시작해서, 욕조 바닥에 쓰러져 죽을 때까지 몇 컷일까.

그 짧은 러닝 타임동안 40컷이 넘는 편집으로 히치콕은 이 욕조신을 처리하고 있고,

 이러한 편집 방식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두번째로, 계속 샤워기 물이 흐르는 사이로, 욕조 구멍이 뱅그르르 클로즈업되고, 마리온의 눈으로 순간 옮겨가는 편집 역시 혀를 내두르게 되는 부분이다.

 
둘. 늪에 차가 빠지는 신

검은 늪 위로, 서서히 잠겨드는 마리온의 차.

늪 안으로 느리게 차는 잠겨가고, 그만큼, 노만의 얼굴에는 소름돋는 웃음이 서서히 번져간다.

차가 늪 안으로 완전히 빠졌을 때는, 그 장면을 바라보던 나 역시, 노만의 괴이한 웃음에 잠식 당하고 말았다.

 
셋. 사립탐정과 노만의 만남

이미 이야기 진행 속에서, 관객들은 노만이 마리온의 죽음에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죽인 것으로 판단 내린 정도로)

그리고, 이후 수사 의뢰를 받고 모텔로 찾아 온 불청객 사립탐정.

탐정은, 하나하나 마리온에 대해 묻고, 노만은 태연한 척 하면서, 불안감을 동시에 내비친다.

탐정이 질문을 던질 때, 이 순간, 카메라는 노만의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비춘다.

 굳어 있는 그의 얼굴이 탐정이 볼 수 없는 시선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멋진 신.

 
넷. 과일 창고신

노만의 어머니를 찾아 동생의 행방을 물으려던 언니는, 갑자기 집으로 올라오는 노만을 발견하고, 쫓기듯, 지하 과일 창고까지 내려간다.

거기에는 의자에 뒤돌아 누군가 앉아 있다.

마리온의 언니는 의자쪽으로 다가가고, 그리고 욕조에서 최후를 맞이한 동생처럼

이어지는 언니의 비명.

이 신은, 마리온의 언니가 모텔에서 노만의 집 안으로, 다시 윗층에서 아래층까지 이동하면서, 서서히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점층적으로 키우다가 마침내 클라이막스로 터지는 부분이다.

욕조신만큼이나 이 영화의 대표적인 신.

  

다섯. 마지막, 기어다니는 파리와 노만의 웃음신

경찰서에 잡혀 온 노만은 혼자 독방에 남아 있고, 아무 말이 없는 노만의 화면과 노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중첩된다.

노만이 이중성격장애임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는, 압축적인 신.

특히 마지막에 정면 카메라를 향해 괴기스런 웃음을 던지고 있는 노만의 표정은 어떤 흉물스런 마스크보다도 호러스럽다. (마리온이 차를 타고 도망갈 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찾느라 던지는 대사들이 중첩되어 나오는 신이 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영화의 사운드와 실제 상황이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암시적 신이다.)

 *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는 '겉과 속'의 이중성이 원형의 구멍을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이 흥미로웠다.
앞서 언급한 욕조의 둥근 샤워기,  욕조의 구멍, 마리온의 증거를 간직한 변기, 박제가 된 듯 멈춰버린 마리온의 깊은 눈, 마리온을 훔쳐보던 노만의 눈과 벽의 내밀한 구멍, 미라로 부재하는 노만 어머니의 깊은 눈의 구멍까지,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그 형태들을 강조하고 있고,

이는 그 원형의 구멍 안에 존재하는 다층적인 속의 테두리를 보여주는 듯 하다.

결국, 이러한 겉의 원형 테두리는 노만의 사이코적인 내면 세계가 관객들에게 충격적으로

제시되는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마지막 경찰서에서 노만의 과거사와 그의 정신 상태를 한 신으로 일축해 버리는 부분은 너무 설명적이라 아쉽다.

마지막으로, 거친 살해 장면 없이도, 관객들을 공포의 극점까지 이끌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여전한 존재이유이고,

이에 반해, 마지막에 등장하는 구구절절한 설명 방식은 현대 영화에서는 보다 장면화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당분간은 히치콕의 영화들을 좀 더 성의있게 살펴보려 한다. ^^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

마루에서였나, 이 영화를 처음 보았고,

그 후, 지금까지 마리온 자매의 찢어질 들한 비명의 공명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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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 North by Northwe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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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명석함으로 승부하는 플롯 단서들과 시구절 같은 대사들의 성찬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치밀한 플롯 속에서 인물들이 그 플롯을 위해 정신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대한 처음 좋은 느낌은 일부 퇴색된 게 사실이다. 플롯 중심과 캐릭터 중심 중에 어느 하나만을 옳다고 할 수 없고, 그 둘이 독립적이지도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만을 위해 비틀고 집어 넣어 엔딩까지 전력질주하는 느낌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주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 세 가지의 신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1. 케플란을 기다리는 로저가 벌판에서 헬리콥터에게 추격을 받는 신 
 

당시 영화들은 극적 긴장감을 유발시키기 위해 보란 듯이 긴장어린 음악으로 이를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이 신의 시작은 반대로 정적 속에 놓여 있다. 거기에다 방이 뚫려 있는 막막한 벌판(공간성) 위에 홀로 서 있는 로저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극단적인 위기감을 유발시킨다. 또한 헬리 콥더가 이동을 하면서 로저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부분들은 사운드의 강약과 함께 점층적인 긴장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렇게 수평으로 무한 비행하던 헬리콥터가 도로 트럭에 수직으로 충돌하는 부분은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 경매장의 위험 속에서 빠져 나오는 로저 캐릭터의 행동

반담 일행들에게 꼼짝없이 당할 위기에 처한 로저. 갑자기 경매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마구 불러대기 시작한다. 일부러 소란을 피우고, 마지막에는 그를 제재하던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주먹 한 방 날린다. 이를 통해 로저는 반담일행의 위기로부터 멋지게 탈출,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퇴장한다. 인물의 성격을 구축했으면, 이를 이야기 속에서 명확하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만큼, 작가가 뛰어나야함을 느끼게 해 준 신.

3. 러시모아산 암벽에서의 추격 신 
 

미국 대통령들이 새겨진 암벽. 그 차제가 거대하고 비주얼한 장소이다. 거기에 주인공들이 매달려 위험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설정은 영화 속 공간의 설정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할 수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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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 Amad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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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웃음 소리..

그리고 살리에리의 사람이 아닌 신에 대한 질투.

 
모짜르트의 웅장하고, 다채롭고 때로 밝음이 넘치는 음악들과

그 안에 영화적인 상징과 상상의 힘이 결합되다.

(가면으로 아버지를 표현, 재연하고 있는 부분, 악보를 통해 음악을 전달하고, 악상을 떠올리는 과정 역시, 실제 완성된 음악으로 전달하는 힘은, 모차르트에 대해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모차르트가 아닌 범인, 살리에리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보여주는 설정은,

천재가 아닌 범인이 가지는 일반적인 감정 (상대방에 대한 애증)을 

치열하고,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전히 모차르트의 웃음 소리가 머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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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는 내 인생 - My Life Withou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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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풀어지던 사연들을

장면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상적인 장면 속,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딸들, 남편, 엄마, 남자친구에게 남긴 혼잣말들은

왜 나에게 강한 울림으로 전이되지 못한걸까.

  

영화의 도입부에서 자신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노트에 열가지 적는 설정까지는 좋았지만,

그 다음부터, 중간에서는 그 소원들이 소품처럼 개별적으로 사용되어 버렸고,

그러다보니, 강하게 압축되는 굵은 이야기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씬은 여전 내 머리 속에 살아있다.

 
1. 비를 맞으며, 대지 위에 서 있던 앤의 모습 

- 첫 장면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와 신비로움을 불어넣어 주었다.

 
2. 마트에서 앤이 장을 볼 때, 종업원들이 음악에 맞춰 각자 춤을 추던 장면

 - 환상적이면서, 코믹하기도.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혼자 춤을 추고 있지 않던 앤의 낯선 외로움도 느끼게 해주었다.

 
3. 사랑을 고백하는 리와 헤어지며 마지막 키스를 나눌 때의 씬.

- 당신의 남편에게도 좋은 직업을 구해주고 싶고, 바퀴달린 집에서 당신이 살지 않게 해주고 싶다던 리의 말. 그리고, 당신 남편이 데리러 올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며 있겠다던 마지막 리의 대사. 이후, 울음을 참으며 이어진 그들의 마지막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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