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적 글쓰기 아우름 37
박민영 지음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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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글 쓰는 방법과 요령이 몸에 배지 않는다. 내 노력이 너무 부족한걸까. 아니면 나는 아예 재능이란게 없는걸까.

사실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발견하고 싶다라기 보다는,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는 용도가 더 큰거 같다. 

자기 경험을 글로 쓸 때는 냉철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찰이 없으면 자칫 유치해지기 쉽습니다. 경험의 역사적,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탐구해야 읽을 만한 글이 됩니다.

사회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보편적 위치와 진리란 없습니다.

글을 쓰려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글의 주제를 찾는 ‘발견의 훈련‘, 그것을 자기만의 주제로 구성해 나가는 ‘창의력 훈련‘, 삶과 지식 그리고 생각을 이어 붙이는 ‘연결의 훈련‘이 수반됩니다.

글쓰다의 독일어는 schreiben입니다. schreiben은 라틴어 scribere에서 유래했는데 ‘~에 틈(금)을 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어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글쓰다‘는 graphein인데, 거기에는 ‘새기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쓰기란 본래 쐐기처럼 뾰족한 연장으로 무언가를 새겨 넣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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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크리틱 2
김은실 외 지음, 김은실 엮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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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여자'니까 당연히 페미니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라서 불평등하게 대우 받는게 너무 많으니까. 나의 지금 처지와 막막한 앞길, 그로인한 불안과 우울이 굳이 페미니즘을 깊게 공부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당연히 '여성의 몸'으로 페미니즘을 체득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여자가 더 승진을 많이 했으면 좋겠고, 여자가 동일 임금을 넘어서 남자보다 더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 여자가 남자 없이도 잘먹고 잘살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고, 나는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페미니즘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된다. 성차별이 없어져야 하고 가부장제가 타파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 여성의 성차별만 크게 부각시키고 다른 차별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여성이 안전'을 위한 수사로 포장된다면 이것이 과연 맞는가 싶은 것이다. 코로나로 더이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경고를 받은 지구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자장안에서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하는가? 나는 여전히 내가 빨리 능력 키워서 뭐라도 돈벌이를 해야하는데 이 생각을 놓치 못하고 있지만, 여성의 세력화가 1퍼센트를 위한 여성만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아무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존재로 사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세상은 온통 위험한 것으로만 가득 차 있다는 두려움만 계속해서 증폭된다.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나 샌드라 하딩은 생물학 또한 특정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 상황적으로 위치된 지식체계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자연, 물질세계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는 생물학은 이미 특정 필요와 관점에 따라 관찰되고 해석된 자연, 즉 상징-언어적으로 물질화된 담론이다.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말도 ‘여성/성‘이 특정 권력 구조에 의해 구성된 것임을 설명하기 위한 기호학적 대당對當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 여성‘들‘이 역량 강화와 연대를 기획하는 토대가 ‘피해자 정체성‘이라면, 이것은 그동안 여대와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진화시킨 여성의 시민권과 인권의 역사를 퇴보시키는 것이다.

생물학적 본질주의와 배타적인 여성 범주에 기대어 누군가를 배척하는 운동은 여성을 차별과 위험에서 해방해 평등하고 안전한 세계로 이끌지 않는다. 그건 여성을 성기로만 축소해온 가부장제의 낡은 세계관을 답습함으로써 여성을 피해자의 자리에 고착시키고 또다시 가부장제의 테두리 안에 가두는 결과를 불러오기 쉽다.

정체성 정치의 힘은 정체성을 본질로 만드는 사회의 관습 자체를 질문하면서 그 경계를 열어 다른 정체성과 적극적으로 연결될 때 더 넓어지고 강해진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침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물신화하지 않으면서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일종의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

코로나 19가 드러낸 인간의 취약성과 ‘나만 건강한‘것이 불가능한 근원적 연결성은 지금 우리가 함께 토론해야 할 거대한 질문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해주자‘라거나 ‘여성도 이겨보자‘는 것이 아니라, 승패를 넘어서는 완전히 다른 사회, 약한 사람이 아무것도 ‘극복‘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삶을 상상하자는 제안이라는 것을 기억하는게 그래서 중요하다.

코로나19 이후를 다르게 만드는 힘은 ‘각자 강해지는 것‘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약함을 돌보고 책임지는 것에서 나온다.

여덟 시간 노동은 돌봄을 면제받은 근대 남성의 기준이며 자본의 기준이다.

성폭력이 안전의 문제로 축소되고 안전에 대한 책임이 보안상품을 매개로 한 개인의 책임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구조의 책임과 실패를 개인의 책임과 실패로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사회구조적 피해를 개인의 안전 문제와 보안상품, 그리고 확률의 문제로 축소시키며 체제 유지를 위한 장치로써 배치하기 시작했다.

불법촬영과 N번방을 규탄할 때 이들은 ‘우리 여성‘을 위해 가부장 체제를 뒤흔드는 나쁜 페미니스트 같지만, 여성의 생존과 노동자, 이민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등 다른 소수자의 생존을 대립시킨 채 후자를 적극적으로 배제할 때는 과연 ‘우리 여성‘을 위한 새로운 체제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여성의 상황은 천차만별인데, ‘신자유주의적 여성주의‘는 단일한 여성을 상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이 ‘신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지지하고, 그것이 ‘원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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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김영옥 외 지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 / 봄날의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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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처음으로 엄마 병수발을 들게 되었다.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나는 너무 힘에 부쳤다. 나는 너무 나약해서 아픈 사람 앞에서 힘든 티를 다 냈다.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하고 미웠다. 

건강했던 엄마의 한 쪽 다리가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간호할 사람이 딸인 내가 되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엄마가 나를 키워준 만큼, 나도 엄마의 노후를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예행 연습 시간이 예고도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왔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람을 돌보는 일,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할 것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력은 떨어질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돌봄이란 것은 상호작용이고 매뉴얼대로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더 사회적으로 발화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돌봄 노동은 여성이 주로 하는 젠더 기반의 직업이 되어있다. 여성의 노동이 가치절하 되어있는 부분 중 이 돌봄 노동도 들어간다. (하긴, 여성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 받는게 뭐가 있겠느냐만... 출산정도일까?)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야 하고, 그 분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돌봄의 노동을 남성들에게도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개인들 사이의 돌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돌봄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개인은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취약함, 삶의 우연성, 육체의 유한성,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개념은 결국 젊고 건강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 될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개념은 언젠가 젊고 건강한 이들 또한 반드시 배신할 것이다.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무엇보다 인간의 취약함을 사유하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용변 처리를 할 수 없는 몸 상황을 ‘차라리 죽는 게 나은‘비참함으로 경험하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규범이 강제한 ‘해석된 경험‘이며,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할 경험‘이다.

약함을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우며 경멸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다치거나 아프거나 늙는 일은 단순한 불편이나 손상 이상의 두려움이 된다. 물론 아무리 다치고 아프고 늙어가는 일이 모든 인간의 존재조건이라 해도, 그것이 구체적인 나의 일, 내 몸이 겪는 일이 될 때 두려워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여겨져왔던 건강한 몸, 독립적 개인, 개인의 소유물로서의 권리라는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되짚어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리라고 전제하는 사회보다, 모든 사람이 취약함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는 사회가 더 ‘현실적‘이다.

‘몸이 없기를 요구하는 경제‘에서 병자, 노인, 장애인은 ‘비용‘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짐일 뿐이다.

독립과 의존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배체제를 지속시키는 허구적 프레임인 것이다.

권리를 박탈당하고 자원이 없는 이들이 독립에 도달하지 못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의존과 돌봄 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해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

우리는 흔히 권리를 소유물처럼 말하곤 한다.("10대에게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 하지만 권리는 소유하는 것이라기보다 발휘되는 것이다. 관건은 권리가 발휘될 수 있는 관계의 맥락과 사회문화적 조건이 존재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책임이다.

권리는 ‘쓸모‘를 입증하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아니고, 각자가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 등가교환도 아니다. 권리는 인권과 존엄성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고, 의무는 어떻게 공유되고 분배될 때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돌봄은 희망할 만한 것, 머무를 만한 것, 마땅히 배워야 하고 깊이 경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장애는 손상에 따른 자연적 상태가 아니라, 손상을 입은 몸들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 관습과 환경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다. 동일한 맥락에서 치매 역시 인지‘손상‘이 인지‘장애‘가 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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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몬드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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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게 된건, 일본 서점이 뽑은 번역책 1위에 뽑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일본 서점에 이 책이 진짜 많이 깔려있다. 그래서 나는 읽기도 전에 한 일본 여중생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한국어 책을 사 둔지 꽤 되었다. 왜 바로 손이 안 가는지 잘 모르겠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그러다가 오늘은 무슨 삘인지 읽기 시작했다. 사실 비티에스 인더숲 시즌 1에서 랩몬이랑 슈가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고 나도 빨리 읽어봐야지 싶었다. 


내가 산 전자책에는 25쇄라고 나와있다. 엄청난데? 하지만 인기를 끄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남학생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 그리고 학교에서 겪는 일, 살인 사건을 당한 후 집주인과 어떤 학자와의 인연 등은 흥미롭긴 하지만 그다지 맘에 잘 와 닿지 않았다. 납치당한 아들과의 인연이 가장 큰 줄거리인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개연성이 부족한거 같기도 하고...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은 일본사람들은 왜 이 책에 이렇게 열광하는지다. 나는 별 재미없다고 느꼈는데, 일본 사람들은왜 이 책을 좋아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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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세 여자 1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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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추천 받아 언젠가 읽어야지 해놓고 거의 1년반이 지난것 같다. 일다에서 기타하라 미노리씨의 인터뷰를 읽다가 (https://m.ildaro.com/9199) 세여자를 번역 준비중이란 이야기를 듣고 빨리 읽고 싶어졌다.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건, 중반에 가서야 알았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몇번이고 구글에서 찾아봤다. 이 세 여성이 어떤 집안에서 뭘 하다가 공산주의 이념에 헌신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지러운 역사의 풍랑에 휩쓸려 이 세사람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주 잘 묘사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읽는 역사 소설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이거야 말로 드라마화 하면 좋을 대박 아이템이 아닌가? 조선의 식민지 역사를 여성들의 삶에서 돌아보는 책이 더 있나 찾아보고 싶어졌다. 다음 책은 체공녀 강주룡을 읽어봐야 될것 같다. 


또한 자본주의가 금방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공산주의자들에게 공감이 되면서 신자유주의에 찌들은 내 모습을 되돌아 보았다. 자본주의의 말로가 기후 위기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다시 공산주의의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스탈린과 조선 공산주의자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고려인이 왜 카자흐스탄에 있는지 등도 잘 알 수 있다. 역사적 맥락을 잘 잡으면서 여성들의 삶과 애환을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일본사 선생님이 느닷없이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일본제국의 품 안에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만세 부른 것들은 매 좀 맞아야 된다. 조선인 주제에"라는 말로 그러잖아도 일촉즉발 상태였던 격발장치를 건드려버렸다.

‘민족자결주의‘라는 것이 제국주의의 신참인 미국이 유럽 식민제국들을 해체하면서 국제정치의 새판을 짜려고 내놓은 캐치프레이즈라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에게 소련의 혁명가이자 소설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구미에 딱 맞았다.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은 국가가 떠맡아야 한다는 입장을 소비에트 정부에 관철시킨 것도 놀라웠고 자유연애와 경제자립을 주장하는 여성해방론은 지당했다.

국가보안법의 전신인 치안유지법은 일본 본국과 조선, 대만 같은 식민지에서 동시에 발효되었다. 치안유지법은 조선공산당 창립식으로부터 3주 지난 5월 12일부터 시행되었다. 총독부의 이른바 문화정치가 시효를 다해가고 있었다.

엥겔스가 메리 번즈 자매하고 평생 어떤 관계였는지 아시죠? 조선 남자들은 백 번 다시 태어나도 엥겔스 발꿈치도 못 따라갈걸요. <가족, 국가 사유재산의 기원>을 다 거꾸로 읽는다니까. 밥하고 빨래는 여자들 시키는 혁명이라면 나는 사양하겠어요.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굴러가야 할 스탈린의 소비에트에 마르크스 원전을 읽은 비판적 지식인 따위는 필요 없었다. 볼셰비키 혁명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혁명 동지도 필요 없었다. 스탈린을 유일한 지도자로 숭배하는 기본계급 출신 당원들을 위한 빈자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 그 자체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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