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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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병원에 간다. 그리고 거기서 의사 선생님과 대면하기 전에 긴장도 하고, 진료 방식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뭔가 제대로 진단 받지 못한것 같아 찜찜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의료 사고도 일어난다. 의사의 입장에서 본 지금의 의료 현장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 정도 돈도 못 받냐' 이런 억울함 가득한 정서의 책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사형 집행을 하는 곳에 사망 선고를 위해 나가는 의사의 윤리 의식, 의사의 적정한 보수는 얼마인가, 의료 보험 체계 문제, 인도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을 보며 느끼는 점 등, 우리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고, 각 입장을 잘 다루면서도 작가 본인이 심판자 노릇을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힌다. 

근데 왜 제목을 저렇게 번역한걸까? 마치 자기개발서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걸 오히려 노린걸까. 

에티켓에서 경제학, 분노에서 윤리학에 이르는 모든 것이 겉으로는 그저 일상적으로 보이는 진료 예약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의사와 환자의 유대는 약속과 신뢰, 그리고 희망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사적인 관계다. 바로 이 점이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게 비단 의료 행위와 통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어느 정도는 우리의 소임이 ‘언제나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의 편에서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여야 한다. 비록 무엇이 옳은 길인지 늘 명확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방대한 지식과 전문적 기술을 지닌 의사라도 결과가 그저 그럴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적극성과 성실함, 새로운 사고와 같은, 어찌 보면 모호한 요소일지 모른다.

기계를 들여놓는 것이 치료인가? 특정한 각 문제에 맞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세부 사항을 알아내는 것이 치료다.

유효한 해법을 찾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느리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직접 보았다. 천재성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도덕적 투명성이다. 새로운 사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꺼이 시도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없이 분노에 찬 외침이라 할지라도 글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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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바늘땀 - 여섯 살 소년의 인생 스케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스몰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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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의사였던 걸로 봐서는 꽤 유복한 가정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어머니는 "너가 항상 돈을 다 잡아 먹는다, 우리 집에 그런 돈 없다" 이러면서 어린 아이를 괴롭힌다. 어머니의 애정과 아버지의 보살핌이 전혀 없는 집에서 형제는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려고 발버둥을 친다. 형은 지하실에서 매일 드럼을 치다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갔고, 저자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받으며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오열을 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의 삶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한가지씩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중에서도 이 작가가 겪은 일은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의 중심에는 사랑의 결핍이 주 원인이었다.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마음이 없는 가정에서 제정신으로 자라나기 위한 소년의 분투가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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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이길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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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을 보았다. 베트남 전쟁의 가해국인 한국의 반응을 이렇게 정리해서 본 것은 처음이라 생소하기도 했다.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역사라고 생각했다. 

이 분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자금을 대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한 일, 네덜란드 대학에 유학을 하기 위해서 한 일, 또 네덜란드에서 겪은 일을 중심으로 쓰인 에세이다. 코다의 정체성을 소중히 하면서 작업을 해 나가는 이 여성 작가의 앞날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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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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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 부성, 모성 사랑의 어지러운 형태를 정교한 언어로 직조한 소설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형제 안에서 서로 비교하고 비교 당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고 아주 가까웠던 형제가 점점 커가면서 성격 차이와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 인도의 복잡했던 역사의 단면을 조금 있다. 형의 미국 유학으로 형제는 더욱 멀어지게 되는데, 형의 미국 생활은 이주민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며, 꼬여가는 삶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형과 같이 이민 인도 여성의 모험, 그리고 여성과 아이의 관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나오고,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문학 나무랄데 없이 좋은 책이다!

인도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 소련의 정책, 인도의 반동 정부, 이 모든 게 다 똑같다. 미국의 눈치만 보는 것들이지. 이것들이 우리가 타도해야 할 네 개의 산이다.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의 목적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야. 이를 위해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역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려면 의회정치의 실내유희는 끝나야 해.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게 돼

수바시는 우다얀을 따라간 자신에게 화가 났다. 아직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화가 났다. 자신의 내부에서 늘 피어오르는 두려움에 넌더리가 났다. 자신이 존재감 없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자신이 우다얀의 뜻을 거스른다면 둘은 형제가 아닌 관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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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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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엄청난 책이다. 정말로... 조지 오웰의 한국 버전이다. 이 분이 직접 경험한 노동 현장을 기술한 건데, 마지막에는 격정적이 되지만 쭉 이 부조리한 사태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도 외국인 차별을 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반성은, 우리들이 얼마나 인종차별에 물들어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으로 인해 사람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고 미치게 되는지 모든 장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가혹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인권 침해 현장을 우리가 더이상 모른척 할 수 있을것인가. 이 책을 써주신 작가님에게 감사드리고, 이런 부조리를 바꿔나가야 한다... 

내가 다시 바다를 낭만과 신비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더 이상 하루에 열두 시간씩 통발을 쌓지 않아도 된 후였다.

항구에서 모든 사람들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 있엇다. 모두가 헌 추리닝을 입고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위험하고 힘들게 일했다. 볼품없는 외모를 주눅 들게 만드는 예쁜 여자도 없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거기엔 실패를 받아들인 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선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무 문제없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사실 중 하나는 그렇게 정 많고 친절한 아저씨들이 정작 자기 배 막내의 고충 앞에서는 냉담했다는 거다. 어째서 사람들은 가장 나약한 부류에게 가장 힘든 일을 떠넘기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난해진다는 것은 신병 훈련소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도 도무지 불만을 터뜨릴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고시 식당에서 일요일 아침에만 나오는 계란 프라이는 전날 미리 만들어뒀는지 차갑게 식어 마우스 패드로 써도 될 만큼 뻣뻣했다. 국에는 드물지 않게 쇠 수세미 조각들이 빠져 있었다. 고시원장은 전기요금과 화재 위험을 이유로 들어 전열기구를 사용하는 것도 막았지만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돈사의 불결함은 돼지의 성장과 비례했다. 비육사는 자돈사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 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내게 명령을 내린다는 걸 깨닿는 순간 몸이 먼저 화를 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만 밝히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피하는 일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꺼릴 만한 일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는 최악의 생활 환경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 방식 말이다.

최저임금제가 노동자를 위한 제도라는 생각이야말로 지독한 환상이다. 최저임금은 궁극적으로 고용주들이 이 말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봐라! 뭐가 문제냔 말이냐? 나는 법대로 지불했단 말이다!" 그의 말 뒤에 생략된 문장은 ‘그 돈으로 먹고살건 말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이다. 최저임금제란 정부가 고용주에게 발급해주는 연말 정산용 면죄부일 뿐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최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은 입버릇처럼 "그래도 힘들 땐 한국 사람밖에 없어"하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바로 그 힘든 시기, 즉 낮은 보수, 긴 작업 시간, 위험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편리하게 잊어버렸다.

한 달도 안 되어 나는 공장일의 단순함에 질려버렸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정신에 모욕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이 일을 견디기 위해선 계획도 버리고 생각도 버리고 정신적 무소유의 경지에 다다라야 했다. 이런 작업 뒤에야말로 창조적인 문화 생활이 절실했지만, 앞서 밝혔듯이 근방에서 문명의 흔적은 도로와 논뿐이었다. 덕분에 이곳 사람들의 여가 생활 역시 술 아니면 TV였다.

젊은 사람들은 힘들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들은 너문도 쉽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걸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탁현 아저씨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했기 때문에 해고의 문턱까지 갔지만 재길 아저씨는 자신의 광기를 굽히지 않은 덕분에 한자리 꿰찰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야. 반사회주의 국가지. 뭐든지 오너 편에 서라고. 그래야 살아남아." 살아오면서 숱한 충고를 들어왔지만 ‘더 강하게 죄 지으라‘ 이것 말고는 쓸 말한 충고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남자들은 어린 세대의 존경이라는 열차에 무임승차를 해 왔는데 이제 그들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 당연한 권리 행사라도 하듯 식구를 때리고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후임병을 군홧발로 걷어찬 대가를. 피부 빛이 검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한 대가를.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ㅇ로 새 아파트를 사고 자식들을 유학 보낸 대가를. 한 달에 이틀 휴일을 ‘허락‘해주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믿은 대가를. 일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청소를 하고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동안 소파에 드러누워 스포츠 채널이나 뒤적거린 대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은 대가를, 자기의 잘난 애새끼들이 아빠 흉내를 내기 시작했을 때 바로잡지 않은 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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