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오는 아침이다.

아!

가게 데크에 눈이 쌓이면 곧 얼테고, 그러면 손님들이 미끄러우실테고,

그렇기 때문에 미리 쓸어야 하고, 쓸어도 쓸어도 눈은 계속 내리니까

그러면 하루종일 눈을 쓸어야 하겠구나.

오늘은 늦게 가게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

몸을 겨우 추스르고 나와 새로운 핫초콜렛을 끓인다.

이거 바닥에 눌러붙지 않도록 계속계속 저어 주어야 하는데,

다른 날은 즐겁고, 달콤했던 일들이 오늘 아침에는 왜이렇게 하기 싫을까.

아!

어제 에스프레소를 너무 많이 내려서 어깨도 아프다.

진짜 아프다.ㅠㅠ

 

-

길도 미끄러운데 우체국 택배 아저씨가 오시네.

내꺼다. 내꺼.!! @.@

모르는 사람(나만 그쪽을 아는 사람)에게서 받는 책 선물이라.

이거 묘하게 가슴이 녹녹해진다.

엄청 재미없었다며 건네는 책 또한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보통은 '이거 읽어봤는데 엄청 재미없었어. 그러니까 너 가져!'이러면 기분 나빠야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가지런한 발들이 찍혀있는, 심지어는 모던클래식이라니.

빠진 이 하나 채워넣고, 아싸!

아무튼 기분이 갑자기 엄청 좋다.

 

-

여기에 그동안 못구해서 안달이었던

레몽장의 <오페라 택시>와 <카페 여주인>도 구했다.

그것도 같은 날!

 

-

이것이야말로 이 책들과 만날 운명이지 않아요? 다락방님!^^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3-01-1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우체국 택배는 정말이지 엄청 빠르네요. 어제 픽업해 가셨는데 벌써 배달이라뇨! 우체국 만세 ㅠㅠ

가지런한 발들이 찍힌 표지가 무척 예쁘죠? 제가 재미없게 읽었다 해도 아무쪼록 관찰자님께는 재미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선물한 자의 보람, 같은게 느껴지니까요. 하하하핫. 물론, 재미를 강제할 순 없겠지만요.


갑자기 엄청 좋아진 기분을 오래오래 유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흣 :)

관찰자 2013-01-18 19:4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페이퍼 보고 오기가미 나오코 님의 첫 소설집을 사서 읽었어요.
본래도 그녀의 영화들을 좋아해서 다 가지고 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오글거렸다면, 제 감수성이 이젠 늙은걸까요.ㅠ

영화로 볼때는 담백하던 그녀의 감각이
인쇄되어진 글로 보니 너무 낯간지럽더라구요.
그래서 첫번째 단편만 읽고 두번째는 넣어두었어요.


다락방 2013-01-19 10:06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책 끝까지 다 읽긴 했는데 완전 별로였어요. 아, 이 감독은 그냥 영화만 보자, 라고 결심했답니다. 킁킁.
 

가게에 달라진 풍경 하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유모차를 가지고 삼삼오오 몰려 나오던 애기 엄마들이 안 보이면서,

역시 삼삼오오 몰려 다니며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 한잔씩을 앞에 두고, 그 보다 2배, 3배는 되는 따뜻한 물을 리필로 요청하며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이 늘었다.

내가 동경하는 40대.

아이는 이제 엄마의 손이 세세하게 필요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남편의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져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나이.

보통 이 시기에 갱년기도 사추기도 우울증도 많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이 나이가 기다려진다.

 

아무튼,

가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소리들이

마치 꿈결처럼 내용은 파악되지 않은 채 고저만 있는 노래소리같이 들려온다.

 

"우리 시어머니가..."

"우리 남편은..."

"우리 아이는.."

"박근혜가.."

"그래서 결론은 살을 빼야.."

 

20평 남짓한 가게는 갑자기 드라마의 무대가 되었다가 치열한 법정이 되었다가 소우주가 된다.

 

40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나이.

살아온 세월이 보이기 시작하고, 앞으로 살아갈 세월도 그려지는 나이.

 

자신의 이야기는 쏙 뺀 채,

부모와 남편과 자식과 나아가 사회 걱정 뿐인 아줌마들의 대화를 들으며,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40대의 모습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기다림의 유형학

-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은 지금 이 강의가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이어서 여러분들은 학생 식당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먹는 동안에는 다음 강의가 시작하기를, 그리고 그 강의 시간 동안에는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립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그동안 주말을 내내 기다리고, 더 나아가 방학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학생 여러분, 수없이 많은 층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통틀어서 말하자면, 여러분은 학사 학위를 받고, 학업을 마치고, 일자리를 찾기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은 더 나은 날씨, 행복한 시간, 위대한 사랑을 기다립니다. 모든 단계의 기다리는 시간을 우리는 온갖 볼일들로 보냅니다. 뭔가를 알아챘나요?(의도적으로 길게 늘인, 긴 사이 시간.) 인생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기다림을 사람들은 인생이라고 부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