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들이 기고, 걷기 시작하면서 만질 것이 많은 서재방은 반 잠금상태다.
문을 열고 조금만 방심하면 이것들이 들어와 <바자> 과월호를 갉아먹고,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찢어 놓고, 오규원의 시집 위에 앉아 있다.
보통 비싼 유희가 아니다.
다행인 것은 서가의 제일 아랫단은 두꺼운 사전류와 무거운 잡지들이 꽂혀 있기 때문에 녀석들이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꺼내기 어려운 책들.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등단을 해보겠다던 우리 삼촌의 글방에 몰래 들어가, 쌓여있는 책들 위에 앉아 원고지 귀퉁이를 찢어 먹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우리 삼촌이 등단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한쪽 귀퉁이가 모조리 쏠려있는 원고지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무튼,
집에 있는 서재는 기능을 상실하여 유명무실한 상태이고, 책이 택배로 도착하면 책꽂이에 꽂히기 보다 그냥 얹혀 있는 것이 더 많은 완전 그로기한 상태.
이쯤 되니 생각나는 책이 있어 한번 찾으려면, 폴오스터 옆에 온다리쿠가 있고, 주제 사라마구와 토니 모리슨이 섞여 있으며, 김연수와 줌파 라히리가 한데 어우려져 이렇게 화목할 수가 없다.
다행인것은 이럴때 가게를 오픈하게 되어 인테리어의 명목으로 집안의 책을 가게로 하나 둘씩 옮길 수 있었고, 제 2의 서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치만 이것이 또 고민.
본래 여행 계획 중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부분이 '가는 동안 읽을 책', '가서 읽을 책', '오는 동안 읽을 책' 선정인 나로서는 '가게에 옮겨 가면 좋을 책'과 '가게에 옮겨 가야 하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너무 편향적이고, 가네시로 가즈키는 너무 가볍고, 김훈은 너무 크고, 온다 리쿠는 내꺼다. ㅠㅠ
결국 이언 매큐언이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의 추리소설 등 서평 쓰면서 받았던 책들과 가벼운 킬링타임용 소설을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민음사 고전들과 모던 클래식까지 더해 겨우 하나의 서가를 만들었다.
나는 이 서가를 만들면서
육아에 지친 아기 엄마들이 언제고 하루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체실비치에서> 같은 소설들로 위안을 얻길 바랐고, 수업이 없는 평일 오후 친구들과 술약속 나가기 전 <템테이션>같은 소설을 읽으며 낄낄 거리길 바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들이 전혀 아주 완전히 책을 꺼내보지 않는다.
그저 책등만 훑다가 가끔, 그것도 모두 똑같이, 어쩌면 한결같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꺼내고, <제주 올레 여행>을 팔락거리고, 인테리어 책만 꺼낸다.
어쩌면 한번 들춰보는 사람이 없을까.
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이 찬밥 신세일까.
아마도 내 취향이 특이하거나
아마도 그들의 취향이 특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리 가게가 책 읽기에는 의외로 불편하거나겠지.
모쪼록 같이 읽고, 같이 흥분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히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