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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내가 가지고 온 책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물질적 삶>이다.


솔직히 가방에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만원 지하철 안에서 책을 펴기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남부터미널에서 역삼까지는 마의 구간이라 정말로 앞사람과의 거리가 코 앞일 경우가 많다.


게다가 최근 노안이 시작되려는지 책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쉽사리 초점이 잡히질 않는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보다 갈아 타는 시간이 더 많은 짧은 거리도 문제다.


그러한 연유로 주로 전자책을 보거나 부피가 작은 단편 소설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이 책 안에는 <M.D의 제복>이라는 짧은 글이 등장하는데, 옷을 입는다는 것에 대한 뒤라스의 개인적인 생각이 쓰여 있다.


'뒤라스 룩'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늘 같은 방식으로 옷을 입는 뒤라스의 스타일을 보고 어느 패션 디자이너가 그 이름으로 옷을 발표해서 '뒤라스 룩'이 생겨났다고 한다.


나도 올해 들어 매일 출근을 하며 옷을 다르게 바꿔 입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여러번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 터라, 만약 내가 입기 편하고 나한테 어울리며, 어떤 이미지까지 부여해 주는 적확한 옷차림이 있다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뒤라스 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검색해 보았는데. 나오는 사진들은 이런것들.



뭔가. 최화정을 연상시키는 룩이랄까. 


나는 개인적으로 치마를 잘 안 입기에 도전해볼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매일 비슷한 옷을 입는다는 것에 대한 편안함과 안정감에 대해 공감하며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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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를 이유없이 사랑하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이유없이 싫어하는 것도,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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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시절 동창의 소식을 들었다.


- 어쩌면 죽었는지도 몰라.


무의식 중에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유난히 유난스러운 일의 중심에 잘 서 있었던 그 아이를 떠올리면, 아직도 이상한 죄책감과 함께 불편한 기분이 든다. 

뭔가 내가 좀더 참아줘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떠남으로 해서 그 아이에게는 정말 아무도 남지 않게된 것은 아닐까.


유독 혼자서는 제대로 잘 서 있지 못했던 아이.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기대있던 아이.

자신의 행복은 상대방에게 달려있다는 듯한 방관자적인 태도.

현실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던 아이.


나를 마지막으로 모두와 연락을 끊고, 이름도 바꾼 채 상관없는 사람으로 살아가던 그 아이의 소식은 생각지도 않은 의외의 곳에서 들려왔다.


- 새아빠는 돌아가셨고, 치매에 걸린 엄마와 둘이 살고 있대.


이 나이쯤 되면 들을 법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조금 충격이었다.

그런데, 충격이라고 느껴진 포인트가 이상했다.

새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것도 아니고,

엄마랑 둘.이.살.고.있.대.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의붓 오빠를 제외하면 외동딸이니 당연히 본인이 모실 법한 일이지만 시설에 모시지 않고, 본인이 혼자 치매 엄마를 모시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있다고.


왜 그 아이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을까.


물론,

사람들도 만나고, 대학원도 다니고(사회복지과의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 나이에..), 남자도 만나겠지만, 치매에 걸린 엄마와 둘이서 산다니.


학창시절,

의붓 아빠의 폭행으로 부터 보호해 주지 않은 엄마.

의붓 아빠와 그 자식(국제 변호사)에게 딸을 부끄러워 했던 엄마.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손목을 그은 딸을 대학 때 사귀던 예전 남친에게 맡긴 엄마.


누구보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치매에 걸린 엄마와 단둘이서 함께 사는 그 아이의 마음은 무엇일까. 지금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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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오는 아침이다.

아!

가게 데크에 눈이 쌓이면 곧 얼테고, 그러면 손님들이 미끄러우실테고,

그렇기 때문에 미리 쓸어야 하고, 쓸어도 쓸어도 눈은 계속 내리니까

그러면 하루종일 눈을 쓸어야 하겠구나.

오늘은 늦게 가게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

몸을 겨우 추스르고 나와 새로운 핫초콜렛을 끓인다.

이거 바닥에 눌러붙지 않도록 계속계속 저어 주어야 하는데,

다른 날은 즐겁고, 달콤했던 일들이 오늘 아침에는 왜이렇게 하기 싫을까.

아!

어제 에스프레소를 너무 많이 내려서 어깨도 아프다.

진짜 아프다.ㅠㅠ

 

-

길도 미끄러운데 우체국 택배 아저씨가 오시네.

내꺼다. 내꺼.!! @.@

모르는 사람(나만 그쪽을 아는 사람)에게서 받는 책 선물이라.

이거 묘하게 가슴이 녹녹해진다.

엄청 재미없었다며 건네는 책 또한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보통은 '이거 읽어봤는데 엄청 재미없었어. 그러니까 너 가져!'이러면 기분 나빠야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가지런한 발들이 찍혀있는, 심지어는 모던클래식이라니.

빠진 이 하나 채워넣고, 아싸!

아무튼 기분이 갑자기 엄청 좋다.

 

-

여기에 그동안 못구해서 안달이었던

레몽장의 <오페라 택시>와 <카페 여주인>도 구했다.

그것도 같은 날!

 

-

이것이야말로 이 책들과 만날 운명이지 않아요? 다락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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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16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우체국 택배는 정말이지 엄청 빠르네요. 어제 픽업해 가셨는데 벌써 배달이라뇨! 우체국 만세 ㅠㅠ

가지런한 발들이 찍힌 표지가 무척 예쁘죠? 제가 재미없게 읽었다 해도 아무쪼록 관찰자님께는 재미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선물한 자의 보람, 같은게 느껴지니까요. 하하하핫. 물론, 재미를 강제할 순 없겠지만요.


갑자기 엄청 좋아진 기분을 오래오래 유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흣 :)

관찰자 2013-01-18 19:4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페이퍼 보고 오기가미 나오코 님의 첫 소설집을 사서 읽었어요.
본래도 그녀의 영화들을 좋아해서 다 가지고 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오글거렸다면, 제 감수성이 이젠 늙은걸까요.ㅠ

영화로 볼때는 담백하던 그녀의 감각이
인쇄되어진 글로 보니 너무 낯간지럽더라구요.
그래서 첫번째 단편만 읽고 두번째는 넣어두었어요.


다락방 2013-01-19 10:06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책 끝까지 다 읽긴 했는데 완전 별로였어요. 아, 이 감독은 그냥 영화만 보자, 라고 결심했답니다. 킁킁.
 

쌍둥이들이 기고, 걷기 시작하면서 만질 것이 많은 서재방은 반 잠금상태다.

문을 열고 조금만 방심하면 이것들이 들어와 <바자> 과월호를 갉아먹고,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찢어 놓고, 오규원의 시집 위에 앉아 있다.

보통 비싼 유희가 아니다.

다행인 것은 서가의 제일 아랫단은 두꺼운 사전류와 무거운 잡지들이 꽂혀 있기 때문에 녀석들이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꺼내기 어려운 책들.

 

생각해보면 나도 어렸을 때 등단을 해보겠다던 우리 삼촌의 글방에 몰래 들어가, 쌓여있는 책들 위에 앉아 원고지 귀퉁이를 찢어 먹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우리 삼촌이 등단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한쪽 귀퉁이가 모조리 쏠려있는 원고지 때문일 지도 모른다.

 

아무튼,

집에 있는 서재는 기능을 상실하여 유명무실한 상태이고, 책이 택배로 도착하면 책꽂이에 꽂히기 보다 그냥 얹혀 있는 것이 더 많은 완전 그로기한 상태.

이쯤 되니 생각나는 책이 있어 한번 찾으려면, 폴오스터 옆에 온다리쿠가 있고, 주제 사라마구와 토니 모리슨이 섞여 있으며, 김연수와 줌파 라히리가 한데 어우려져 이렇게 화목할 수가 없다.

 

다행인것은 이럴때 가게를 오픈하게 되어 인테리어의 명목으로 집안의 책을 가게로 하나 둘씩 옮길 수 있었고, 제 2의 서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치만 이것이 또 고민.

 

본래 여행 계획 중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부분이 '가는 동안 읽을 책', '가서 읽을 책', '오는 동안 읽을 책' 선정인 나로서는 '가게에 옮겨 가면 좋을 책'과 '가게에 옮겨 가야 하는 책'을 선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너무 편향적이고, 가네시로 가즈키는 너무 가볍고, 김훈은 너무 크고, 온다 리쿠는 내꺼다. ㅠㅠ

결국 이언 매큐언이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의 추리소설 등 서평 쓰면서 받았던 책들과 가벼운 킬링타임용 소설을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민음사 고전들과 모던 클래식까지 더해 겨우 하나의 서가를 만들었다.

 

 

나는 이 서가를 만들면서

육아에 지친 아기 엄마들이 언제고 하루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체실비치에서> 같은 소설들로 위안을 얻길 바랐고, 수업이 없는 평일 오후 친구들과 술약속 나가기 전 <템테이션>같은 소설을 읽으며 낄낄 거리길 바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람들이 전혀 아주 완전히 책을 꺼내보지 않는다.

 

그저 책등만 훑다가 가끔, 그것도 모두 똑같이, 어쩌면 한결같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꺼내고, <제주 올레 여행>을 팔락거리고, 인테리어 책만 꺼낸다.

어쩌면 한번 들춰보는 사람이 없을까.

어쩌면 저렇게 한결같이 찬밥 신세일까.

 

아마도 내 취향이 특이하거나

아마도 그들의 취향이 특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우리 가게가 책 읽기에는 의외로 불편하거나겠지.

 

모쪼록 같이 읽고, 같이 흥분할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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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1-05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곳이 어딘지 관찰자님의 카페에 가고 싶네요~~^^
저는 무조건 책이 있는 곳이라면 그냥, 다 기쁘고 좋아요^^
저같으면 책꽂이의 책들을 모두 펼쳐 볼텐데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관찰자 2013-01-06 21:34   좋아요 1 | URL
오늘 어떤 임산부께서 모처럼 제 책들에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어찌나 말 걸고 싶던지, 푼수 아줌마가 다 되었어요.
커피와 함께 책장을 팔랑팔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그래도 추운 겨울 지낼만 하네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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