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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근데,

이거 맞아?

아니,

이 표지가 맞느냐고?


출판사 이름도 다시 한 번 보고,

작가 이름도 다시 한 번 보고,

그랬는데도

아니, 

이게 맞느냐구요.


진짜 

너무 황당해서 

진짜 오랜만에 페이퍼에 내 이 황당한 마음을 남긴다.

아...


그러나,


주문은 했어요.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잖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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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이가 같지만, 너무나도 다른 성향의 아이 둘을 키우면서 정말 많은 것을 고민하고, 또 많은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아이가 먹고, 자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다치지 않게 안전하게 보호하고, 사랑해 주는 일만 신경쓰던 어린 시절이 손은 더 많이 갔지만 되려 더 즐거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사교육 없이 중학교 아이 둘을 키우고 있지만 얼마나 더 사교육 없이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또 사교육 없이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며 키운 것이 잘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예민하며, 걱정과 큰심이 큰 첫째 아이는, 1등을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본인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공부를 한다. 선생님한테 혼나는 두려움, 친구들에게 무시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렇다고 딱히 누구보다 잘 해야한다던지, 시험에서 몇점을 받았으면 좋겠다던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는 것 같고, 그저 시험 기간에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두려움과 걱정을 이겨내기 위해서 제 나름의 방법으로 공부를 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자꾸 간섭을 하고 싶어지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예를 들면,

시험 점수를 더 잘 받고 싶다면 좀더 공부시간을 많이 들여 외워야 한다던지, 문제를 더 많이 풀어서 익숙해져야 한다던지, 외운것을 백지에 표로 한번 정리해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 좀더 효율적일 것이라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둘째는 축구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축구 선수이지만 아직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능력이 특출나지도 않기 때문에 출전 엔트리에는 항상 있지만 3학년 형들 대신 후반에 교체로 투입되는 정도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주축 선수가 3학년이지만 같은 2학년 중에서도 주전에 뽑혀 경기에 뛰는 아이들이 있으니 아마도 우리 아이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최근 같은 학년 학부모가 우리 아이에게 '왜 개인레슨을 하고 있지 않느냐'며 공부하는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듯이 축구 역시 단체 훈련 외에 개인레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을 해 주었다고 한다.

단체 훈련을 받고, 개인레슨까지 한 아이들이 주전으로 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며, 주전으로 선발을 안 해준다고 감독님을 원망하기 이전에 개인레슨부터 열심히 받으라고 말해준 모양이다.


아이는 혼란에 빠졌다.

즐겁게 축구를 하려고 한 것인데, 주말에는 개인레슨을 따로 해야 하고 

또 개인연습을 죽도록 해야지만이 축구로 고등학교도 갈 수 있고, 대학교도 갈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좋은 축구 선수,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려면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위해서 학원을 보내고, 개인레슨을 시키고,

수학 학원을 보내고, 영어 학원을 보내고, 논술 학원을 보내고.

드리블 레슨을 시키고, 달리기 레슨을 시키고, 피지컬 레슨을 시키고, 하다 못해 줄넘기 레슨을 시켜야 가능한 걸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린 시절,

서울대 다니는 선생님께 수학 과외도 받아 보았고,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원을 안 다닌 적이 한번도 없고,

고등학교때 지독한 방황을 겪기까지는 꽤나 공부도 잘 하고, 모범생이었던 나지만

지금은 그냥 별스럽지 않고, 남들이 성공했다는 삶을 살고 있지도 않지 않은가.

그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말이다.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 있으면 마냥 즐거운 너인데.


엄마는 오늘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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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들의 공개수업을 핑계로 월차를 냈다.

유치원도 아니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무려 중학생의 수업을 공개로 진행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나처럼 생각하는 부모가 한둘은 아니었는지 참석율이 저조한 관계로 흐지부지 해지는 바람에

졸지에 하루의 휴가가 생겼다.


하여,

몇년을 미뤄온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수면 내시경도 하고, 유방암 검사도 하고(이건,, 할때마다 고통.... 온 우주의 힘을 끌어모으는 작업을 해야해서),

아무려나 하고 나니 속 시원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매콤한 것이 땡겨서 비빔국수 한그릇을 먹으며 남편에게 사진 한장을 전송했다.

그러나 되돌아오는 대답은.


"당신 제정신이야? 위 내시경 하고, 바로 매운 음식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아니니?"



그래요. 나는,

상식이 없는 여자입니다.

책을 읽으면 무엇하나요. 상식이 없는데요.;;;

그러나,

내 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갑자기 생겨버린 하루의 휴가.


길가의 장미가 유난히 빨갛다.



최근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 당췌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차근차근 착실하게 흐르고 있었다.


매운것도 먹었겠다,

카페인 수혈이 필요해서 커피숍을 찾았는데,

병원 근처는 낯선 곳이라 어디로 가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가고 싶지 않고,

사람이 많은 곳도 싫고,

밖에서 기웃기웃 거리다 들어가게된 커피숍은 3명의 젊은 남자 직원들이 지나친 싱그러움을 뽐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나갈까?

너무 부담스럽다.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원두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하고, 계속 방실방실 거리면서 웃는다.

아 부담스럽다.


겨우 커피 주문이 끝났는데,

이번에는 또 베이커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아니,

나는 빵 안좋아한다고요.


그러나 나는 어느새 빵을 주문하고 말았다.




어째 점점더 I가 되어가는 듯.


그냥 아무도 지나친 친절을 보이지 말았으면 좋겠다.ㅠㅠ 부담스럽다구요.


마시고, 먹고, 읽다가 집에 돌아왔다.


별거 없는 휴일이었다.


덧. 건강검진 결과 뇌혈관지수는 내 나이보다 무려 4살이나 어리게 나온데다가 체질량 지수 역시 과체중이 아닌 정상이 나왔다. 에헤라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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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6-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체중이 아닌 정상이라니, 대단하십니다! 저도 다음주에 건강검진 있는데 말입니다....(깊은 한숨)

결국 빵을 주문하셨다 하셔서 웃었습니다. 저는 소주 마시러 가야겠어요!

관찰자 2025-06-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놀랍지 않아요?? 과체중이 아니라니.... 체질량지수가 관대해진듯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혈관지수도 쌩쌩한 김에 술이나 더 마시러 가야겠습니다. 다락방님도, 일단은 퇴사 라이프를 건강하게 잘 즐기십시요~!
 

최근 너도나도 지브리 풍 일러스트 만들기 열풍이다.



라고 시작되는 기사도 이미 너무 많이 읽었다. 끙.ㅡ.ㅡ


본래 신문물에 대한 관심보다 의심이 앞서는 타입이라 '챗GPT? 흥 그게 뭔데!' 하며 무시했지만,

너도나도 지브리 프사를 올려대는 통해 나도 그만...... 

접속해보았다.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흑백의 글씨와 대화창 하나가 덜렁 등장한다.


이건 약간, 문화적 차이인가?

로고 하나도 어떻게든 아기자기 하게 꾸며야 직성이 풀리고, '무슨무슨 날'을 기념해서 계속 새롭게 바뀌는 네이버 홈페이지와 비교해보면 너무 간단한 것 아닌가 싶다. 



하긴..


검색할 것이 있어 네이버에 접속했다가 딴 길로 빠지는 바람에 허비된 시간과

알고 싶지 않은 일이 자꾸만 메인 화면에 기사로 뜨는 바람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알고 싶고, 찾아야 할 내용을 직접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저런 디자인이

오히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생각해보니 구글도 그런 디자인이구만.

흠. 그래. 이쪽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아무튼,

내가 '챗GPT'에게 


'지브리풍과 슬램덩크풍으로 그려줘'라는 명령어를 넣고 그림을 부탁한 결과

지브리에서도 슬램덩크에서도 나는 주인공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브리에서는 

주인공 여자아이가 고민이 생겼을 때, 

옆에서 깨방정 떨며 조언해주는 이모나 옆집 아줌마 같고




슬램덩크에서는

뭔가... 흠... 적절한 비유가 잘 생각나지 않지만

뭔가. 브로커나 탐정...스파이... 뭐 그런거. 역시 주연은 아닌. 실마리를 주고 일찍 죽는..




같은 사진을 넣었는데,

화풍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구요? >.<


암튼.


한번은 해보니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올려진 내 원본 사진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를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질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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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아직 '폭싹 속았수다'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드라마가 다 끝난 후에 몰아서 보는 습관때문에 이 드라마가 끝나기를 기다렸고,

그 다음에는 우리 회사 사장님이 하도 '보라고, 보라고' 권하셔서 보기가 싫었다.


그런데, 아마도 이 드라마가 이슈이긴 한가보다.


오늘 <한겨레21>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이런 제목의 글을 보았다.

클릭도 하기 전에 겁부터 났다. '이거 제목 괜찮은거야?'


요새는 어디에 가서 '페미니스트'인 것을 말하기가 무섭다.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아 근데, 그 교수, 이름이 김조OO 아니었어?"

누군가 물었다.

"아 맞을걸요?"라고 내가 대답함과 동시에 27살이 된 남자 직원이 "당연 꼴페미겠네?"라고 말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모두 다 웃고 지나가고 있어 나는 혼자만 몰카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상대와 논리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없을 때, 비난과 경멸만을 주고 받아야 할 때,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아진다.


직전에 그 경험 있었기 때문에, 저와 같은 제목으로 쓰여진 글에 달린 댓글이 벌써 부터 두려웠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지만,

글쓴이가 말하고 있는  "엄마의 사랑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무거워서 그랬다. 그 사랑은 나를 살게 했지만, 살면서 두고두고 갚아야 하는 부채이기도 했다. 내 인생이 부모의 희생 값이라 생각하면 나는 온전히 ‘나’로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모 사랑의 깊이와 자식 마음에 얹힌 부채감은 비례하는 법이다. 결국 자식의 인생 일부는 그 부채를 갚기 위한 담보가 될 수밖에 없다." 는 이 말에 깊게 공감했다. 때문에 나역시 부모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매일 주문처럼 외는 것은 아이들이 가뿐한 마음으로 가볍게 제 둥지를 떠나는 날까지 서로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댓글은 이렇다.


"어이구 원하는 페미 사상이 안들어가서 실망하셨어요? 아니면 원하는 여성우월주의가 안들어가서 화가 나셨어요? "


이글 쓴 사람 부모는 그러질 못 한것 같네요.부모가 앵벌이 시키던가요?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란건 확실히 잘 알겠네요


엄마 없어 이런 글 쓰나보다.. 다들 이해 좀 해쥬라...


이로써 페미니즘은 부모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반인륜적 범죄자들의 사상임을 다시 입증하네요ㅋㅋㅋ 가족주의가 그렇게 엿같으신가봐


더 심한 것들 천지이지만 몇 개 옮겨 본 것이 저 정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다.

때문에 글쓴이가 쓴 내용 중 유난히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저 텍스트만을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 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것이 비록 부모 자식의 관계라 할지라도 올바르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사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채일수도, 더 나아가서 폭력일 수 있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한마디 더 덧붙여, 왜 그것이 항상 엄마여야 하며, 여자여야만 하는지 정말로 이 불합리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며,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랑받지 못한 사람,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 남자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님을 언제까지 말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나는 아직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지점으로 읽을 수도 있는 드라마라면, 끝까지 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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