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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어제 잠자냥님의 알라딘 서재에서 '바질이야기'에 달린 다락방님의 댓글을 읽다가 피츠제럴드의 '커트글라스보울'이라는 단편을 알게 되었다.
단편소설은 금방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끝나버리는 느낌이 들거나
뭔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더 없는 듯한 기분이 들거나
설명을 좀 해주고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대관절 이야기가 시작해 버리거나
하는 느낌이 있어서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김연수의 소설을 통해 레이먼드 카버를 만났고,
심지어는 필사하는 지경이 이르렀으며,
윌리엄 트레버를 알게됬고, 최근 클레어 키건에 이르기까지.
흠. 단편소설은 또 이런 맛이 있구먼,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피츠제럴드야 모두가 그렇듯이 '위대한 개츠비'라던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던지 '밤은 아름다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아직 그의 단편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고, 때문에 특별한 감상 역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전 앞서 말한 것처럼 '커트글라스보울'이라는 단편을 읽게 되었다.
버전은 이것.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206/pimg_7172901944594705.jpg)
이 버전으로 읽은 것 역시 어쩔 수 없이 내가 '100자평'이 아니라 '리뷰'를 작성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100자평의 상품 검색으로는 이 책이 검색되지 않는다. ㅡ.ㅡ;
아무튼.
연애는 아주 밀착된 인간관계이므로 엄청난 감정노동과 기회비용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결혼을(??) 선택한 나로서는 인생을 통털어 몇번의 연애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기에 섣불리 재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별 선물로 주는 것은 조금 로맨틱한 것들 아닌가?
얼마없는(강조!) 나의 연애사에서 이별 선물로 받은 것은 주인잃은 커플링, 2년 동안 주고 받은 교환일기장, 100일에 걸쳐 예약 전송으로 보내온 군대에서 발송된 이메일, 중고 니콘카메라, 할부가 끝나지 않은 채 이별을 해버려서 거시기 했던 에르메스 스카프 같은 것들인데,
찬장에 다 들어가지도 않아 툭 튀어나오는 글라스보울은 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것도 거의 저주에 가까운 말,
'당신처럼 딱딱하고 아름답고 속이 텅 비어 있는 물건을 선물로 보내겠어'라는 말을 먼저 보내고, 대체 뭘 보내올 건지 사람 긴장하게 만들더니 대관절 저런 것을 보내왔다면 나는 받은 즉시 누군가에게 주어 버렸거나 아니면 재수없다는 심정으로 뒷산에 올라가서(없다, 뒷산같은거) 깨버렸을 건데.
우리의 주인공은 이걸 또 계속 보관해두고 이리저리 짐짝 같은 저것을 보면서 늘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제부터 이 커트글라스보울은 마법같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먼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불륜남을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남편에게 들키도록 만들고,
장미꽃잎처럼 보호받고 반짝이던 그녀의 미모를 앗아갔으며(이건 직접적 영향은 아니지만),
소중한 딸 아이의 손목을 잘라버렸고(너무 무섭다),
목숨과 같은 아들이 전쟁터를 떠도는 영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마지막으로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주인공의 목숨까지.......
우와. 진짜.
원래 여자의 한이 오뉴월의 서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이별선물 한번 잘못 받고 오는 결과로는 정말 어마무시하다.
심지어 되려 남편 앞에서 부정당한 불륜남이 품었어야 하는 배신감이 더 크지 않나.
아마 이것이 단편이 아니라 장편소설이었다면,
필시 이것은 호러스릴러치정살인복수극이었을텐데..
피츠제럴드는 확실히 말해지지 않은 것이 더욱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공포영화도, 원래,
눈감고 소리만 들을 때 제일 무서운 법 아니겠는가.
아무튼,
100자평을 쓰려다가 상품검색에서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쓰게된 리뷰,
그리고 100자로 말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쓰게된 리뷰.
별거 아닌 이별선물 따위로 이런 글을 써내는 피츠제럴드, 너 참 부럽다 리뷰는 이것으로 끝.